캐논 내부에서는 줄곧 ‘후지오 호황’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 미타라이 후지오(Mitarai Fujio)가 회사를 이끌면 캐논에 다시 호황이 찾아올 거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미타라이 후지오가 두 번에 걸쳐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캐논이 존재할 수 있었다.
1995년 미타라이 후지오는 캐논의 6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대출 의존도가 35%에 달하는 회사였다. 그는 재빠르게 혼란을 수습했다. ‘손실은 죄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적자 부서를 과감하게 도려냈다. 또 복사기, 인쇄기, 카메라, 광학 장비의 4개 핵심 부서를 통합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기술부에 더 가볍고 얇은 렌즈와 배터리 개발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인 디지털 익서스(Digital IXUS)가 공개되면서 캐논 제국의 찬란한 막이 열렸다. 또한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캐논의 렌즈 교체형 디지털카메라는 18년 연속 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캐논은 큰 타격을 받았고, 미타라이 후지오는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그는 과학 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으로 새로운 성장 곡선을 모색했다. 2013년부터 캐논의 매출과 수익이 회복세로 돌아섰다. 2016년 거액으로 도시바의 의료 부문을 인수하면서 순이익이 하락했지만, 이듬해에는 60.6%나 증가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미 81세였던 미타라이 후지오는 은퇴 후 가족과 노후를 즐기려 했다. 그가 다시 위기에 빠진 캐논을 이끌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0년은 모든 디지털카메라 회사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기업에도 치명적이었다. 85세였던 미타라이 후지오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비슷한 나이대의 기업가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새로운 세계의 충격에 맞서야 했다.
그 해 캐논은 의료 사업을 재편하고 의료기기 시장에 주력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려고 했다.
세계 일류 수준의 의료장비 제조회사인 도시바의 사업부를 인수한 후, 미타라이 후지오가 의료 분야에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은 예상 밖의 결정이 아니다. 캐논은 뛰어난 사진 기술을 이용해 CT, MRI 촬영 및 영상 품질을 높여 이 둘의 조합으로 더욱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역시 ‘후지오 호황’ 효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캐논 그룹 매출액은 전년대비 11.2% 증가한 3조 5,133억 엔(약 34조 8천억원)이며, 순이익은 157.7%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의료 사업 매출액은 전년대비 10.2% 증가한 4,804억 엔을 달성했다.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캐논이 일본 정부의 의료기관 지원이라는 비즈니스 기회를 적시에 포착했고, 북미 시장 수요 회복과 함께 CT 장비 및 초음파 진단 장비의 판매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캐논은 세계 4위의 의료장비 제조업체로 성장했으며, 향후 의료사업 매출액은 그룹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방사선이든 초음파 진단 장비이든, 캐논이 현재 1군 기업의 수준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빅3 브랜드 지멘스, 필립스, GM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캐논이 이 분야에 진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캐논의 의료사업이 어떻게 될지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캐논이 내부 혁신과 도시바의 유산에만 의존해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미타라이 후지오의 꿈은 우주항공 분야에도 걸쳐 있다. 그의 청사진 한 켠에는 높은 해상도로 정확성을 자랑하는 저궤도 위성을 띄우는 꿈이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하이퍼포토그래피 기술로 만든 저궤도 위성은 2017년에 발사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미타라이 후지오가 무대에 복귀한 그해, 캐논의 두 번째 저궤도 위성을 탑재한 로켓은 발사에 실패했다. 로켓이 2차 점화 과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캐논 CE-SAT-1B를 비롯한 총 7개 위성이 소실됐다. 그 뒤로 캐논의 우주 사업은 더 큰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어쩌면 더 좋은 시기를 위해 놀라운 것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10년에 한 번씩 변한다’라는 말은 미타라이 후지오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새로 탄생하는 모든 조각은 변화의 서곡이 될 수 있다. 캐논은 여전히 교차로에 서서 방향을 결정할 또 다른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를 대신해 캐논에 영광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리더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