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2. 01. 12
1999년 상하이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던 29세 영국 청년 루퍼트 후지워프 (Rupert Hoogewerf)는 직업적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문과 잡지, 상장기업 보고서를 뒤져서 중국 대륙 부자 50인의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자신의 중국 이름 후룬(胡潤)을 붙여 후룬 리포트라고 명명했다. 중국 최초의 부자 순위였다.
이 순위가 발표되자, 로이터통신은 즉각 중국의 ‘선부론’(先富論: 우선 먼저 부자가 되고 그다음의 일은 그때 생각하자는 주장)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었다고 논평했다. 그 후 20년 동안, 중국 최고 부자는 계속 바뀌고 있다. 새로운 부자의 출현과 함께 후룬의 중국 부자 순위도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다. 부자 리스트와 생애를 이야기로 한데 모으면, 제조업·부동산· 인터넷산업의 흥망성쇠가 뒤얽힌 중국 경제 발전의 역사가 될 것이다.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것은 중국의 제조업이었다. 1980년대 신시왕(新希望: 사료 기업)의 류융하오(劉永好), 레노버의 류촨즈(柳傳志), 하이얼의 장루이민(張瑞敏), 와하하의 중칭허우(宗慶後), 정타이(正泰 : 저압변압기 제조)의 난춘후이(南存輝)부터 90년대 타이캉보험(泰康人壽保險)의 천둥성(陳東昇), 쑤닝(蘇寧: 가전제품 판매회사)의 장진둥(張近東), 소호차이나(부동산 개발사)의 판스이(潘石屹)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중국 1세대의 부자 신화를 만들었다.
2008년 이후 중국은 경제 엔진을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고, 서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주거 여건을 개선하려는 수요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이와 함께 완다그룹의 왕젠린(王健林), 헝다그룹의 쉬자인(許家印) 등 부동산 개발기업 창업주가 번갈아 중국 부호 1위에 올랐다. 부동산업계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제조업은 이전의 빛을 잃고 점점 뒷자리로 밀려났다.
새 천 년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인터넷업계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애플의 아이폰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고, 모바일 인터넷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아마존은 킨들(kindle)을 출시해 기존의 독서 방식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SNS는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고 소통하는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었고, 대표 기업 페이스북은 세계 3대 사이트로 등극했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중국에서도 넷이즈(網易), 시나닷컴(新浪, sina), 소후닷컴(搜狐, sohu), 알리바바, 바이두와 같은 인터넷 기업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이후 중국 최고 부자는 인터넷 재벌과 부동산 재벌이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4년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이 처음으로 중국 부호 1위에 올랐을 때, 그의 자산은 1,500억 위안(약 27조원)이었다.
같은 해, 알리바바 그룹은 미국에서 상장했는데 첫날 38.7% 폭등하면서 한순간에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두 번째로 큰 인터넷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마윈과 그 일가의 자산은 4천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성기 때,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시가 총액은 각각 3조 위안을 넘었다. 이와 동시에, 부동산 부호들의 영광은 급속히 쇠락하고 있었다. 인터넷은 부동산을 가볍게 눌렀고, 제조업은 일찌감치 뒤쳐졌다.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후룬의 부호 차트는 점점 더 길어졌는데, 1999년 50명에서 2020년에는 2,389명으로 증가했다. 이 부자 순위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상위 10대 부자 중 절반이 제조업 출신이었지만, 2009년에는 부동산이 절반, 다시 2020년에는 인터넷업계 출신이 40%를 차지했다. 인터넷업계는 시대적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잔치도 언젠간 끝이 날 것이다.
아무리 강한 자도 쇠락의 시기를 맞이하게 마련이다. 트래픽 증가의 한계, 거시 경제의 구조조정, 플랫폼의 반독점 문제, 이 세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면서 인터넷의 황금시대가 저물고 있다. 인터넷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근본적인 재조정 요구를 받고 있다. 인터넷 기업은 한때 시대의 총아로 떠받들어졌지만, 제조업과 부동산업계와 같이 쇠락의 길을 걷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시대는 언제나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며, 신들의 황혼은 또 다른 신기원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