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2. 11. 23
한중 수교 30주년,
앞으로의 한중 관계는?
The Sage Inve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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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오후 9시.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 台) 국빈관에 있는 팡페이위안(芳菲園)은 중국 안팎에서 몰려든 수많은 기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한국의 이상옥 외교부장관과 중국의 첸치천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공동 성명서에 조인하고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수립된 것이다. 당시 한국은 노태우 정권 말기였고 중국은 장쩌민 정권 시절로, 최고 실세인 덩샤오핑도 아직 건재를 과시하던 때였다.

당초 한국은 베이징 대사관을 궈마오(國貿)라고 불리는 시내 동부 국제무역센터 5층에 두었다. 대사관에 들어서면, 입구에 마치 은행의 대형금고 같은 튼튼한 문이 설치돼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 외교관에게 물었더니 “북한의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궈마오는 1990년 완공된 베이징 최초의 오피스 빌딩으로 39층 건물이다. 다른 나라 대사관은 시 북동부의 싼리툰(三里屯)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모여 있었는데, 당시 중국 외교부 외교관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측이 어떻게 해서든지 노태우 정권이 끝나기 전에 수교하기 위해 서둘렀기 때문에 부지를 마련해 대사관을 지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베이징에 있는 유일한 오피스 빌딩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한 것이다.” 이때 그 외교관은 또 다른 수교 비화도 흘렸다.
“중국 측과 한국 측이 다소 갈등을 빚은 것은 한중 수교 이후 대만의 취급 문제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국에 대만과의 단교, 대만과의 조약 파기, 대사관 철거라는 3종 세트를 요구했는데, 결국 3차례의 회담(베이징-베이징-서울)을 거쳐 관철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우리와 혈맹관계에 있는 북한에 수교 사실을 어떻게 알리느냐였다. 어쩔 수 없이 남측과 모든 비밀협의를 마친 뒤 1992년 7월 말 첸치천 외무상이 평양으로 날아갔다. 그때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냉정한 처사는 중국 외교부에서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라고 하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 중국과의 수교만큼 후에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없었다. 한국 관세청 기준, 수교가 이뤄진 1992년 한중 교역액은 64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후 2005년에 1천억 달러 돌파, 수교 30여년이 지난 2021년에는 3,015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무려 47배! 물론 한국 에서 보면 중국은 압도적인 최대의 무역국으로 ‘부동의 1위’이다.

올해 8월 24일에는 한중 수교 30주년, 9월 29일에는 중일 수교 50주년을 맞이한다. 둘 다 중요한 행사지만 중국의 본심을 보자면 더욱 화려하게 기념하고 싶은 것은 한국과의 30주년일 것이다. 일본은 9월 27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을 도쿄 무도관에서 치를 예정이다. 중국은 왕제츠 국가부주석을 파견한다는 계획이다. 아마 일본과의 50주년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할 것이다.
‘이경납한’(以經拉韓)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베이징에서는 올해 하반기에 제20차 중국 공산당대회가 열리는데, 시진핑 총서기가 이례적으로 총서기 3기를 맡을 예정이다. 원래는 은퇴해야 하지만 중국공산당 관계자에 의하면 유임의 이유가 “아직 대만을 통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3기에 접어든 시진핑 체제는 대만에 대해 지금보다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다.

대만은 당연히 미국을 끌어들여 대만 방위를 꾀하고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을 끌어들여 중국에 맞서려 한다. 이때 미국이 만든 국제협의체인 4자 안보 회담(QUAD, 이하 쿼드)에 참여한 일본, 호주, 인도는 미국 편에 선다. 인도는 태도가 모호할지 모르지만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일본과 호주는 절대적으로 미국 편이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한국의 미국 의존도는 일본만큼 높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정말 높았다면 애초부터 쿼드는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의 틀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정부는 동맹보다 민족을 중시(미국보다 북한 중시)하는 태도가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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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권은 아직까지 미국, 일본과의 관계 중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내에는 ‘일본 중시’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아 조만간 이 간판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미국 중시’라는 간판도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중국은 이를 겨냥해 ‘이경납한’(以經拉韓) 전술에 나설 것이다. 경제로 한국을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지난 5월부터 흥미로운 데이터가 베이징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1994년 이래 일관된 상식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부터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한중 무역 관계에서 주로 한국 기업이 거대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형태였다면, 앞으로는 중국 기업이 점차 한국에 진출해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 갈 것임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윤석열 정권 출범, 중국은 시진핑 총서기의 3기 진입 그리고 양국 수교 30년을 거쳐 한중 새 시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곤도 다이스케 고단샤 중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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