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알면 내 주위의 건물이 달라 보이고, 익숙한 도시가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건축 기행은 도시에서 삶의 배치를 새롭게 가져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해외여행이 멀어진 요즘,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적 거장의 건축을 통해 지리한 일상에 새로운 시선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자연과 교감하는 이타미 준의
제주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재일 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은 안도 다다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재료에만 열중한 안도 다다오와 달리 이타미 준의 건축은 흙, 돌, 금속,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한다. 일본에서 카페 인테리어에 침몰당해 인양한 배의 나무를 이타미 준의 건축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제주도에 있는 ‘수ㆍ풍ㆍ석 박물관’이다.
제주도에 많다는 바람, 돌, 물을 각각 전시하는 곳으로 바람 박물관은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나무로 만든 창고다. 다만 바람을 모을 수 있게 입면을 완만한 곡면으로 처리했으며, 벽을 막는 널빤지 사이에 좁은 틈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박물관 근처에 자리한 ‘포도호텔’ 역시 그의 작품이다. 포도호텔의 지붕은 제주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름과 전통 제주 민가의 지붕 선을 해석해 설계했다. 넝쿨에 어우러진 포도송이 같은 모습은 그냥 그곳에 있는 언덕이 그대로 지붕이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는 이름처럼 노아의 방주처럼 생겼다. 건물 주변을 낮은 연못이 감싸고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교회 같다. 이렇듯 이타미 준은 교회라는 인공 건축물의 존재감을 최대한 지워냈다. “예술품은 자연을 보완하는 데 불과하다”며 그는 늘 주변 환경과 최대한 닮은 건축 재료로 건축물이 자연에 스며들도록 노력했다. 먼저 지역의 특성을 알고, 재료의 물성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그는 2006년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건축가 김수근의 이름을 딴 ‘김수근 건축상’을 받고, 2010년에는 일본 최고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되었다.
공간을 창조하는 도미니크 페로
서울 이대ECC&제주 아트빌라스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등지고 센강 변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중정을 중심으로 네 권의 책을 펼쳐놓은 듯한 건축물에 당도한다. 건축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파리지앵의 사랑을 받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건축가 도미니크가 무려 30대 초반에 설계했다. 이후 그는 유럽연합 대법원 청사, 베를린 올림픽 자전거 경기장과 수영 경기장을 설계하고,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 개발에도 참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가 됐다. 그런 그의 작품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지하 6층의 깊이만큼 파고 다목적 건물 ‘이화캠퍼스복합단지 ECC’를 완성했다. 모든 시설물을 지하에 넣고 지상에는 산책 공간을 조성해 닫혀 있던 캠퍼스를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보다 공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내 역할은 건축이나 재료 그 자체보다 풍경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어요.” 도미니크 페로는 건축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건축가다. 제주 ‘아트빌라스’는 도미니크 페로가 겐고구마, 승효상 등과 함께 완성했다. 블록마다 한 명의 건축가가 담당했는데, 도미니크가 설계한 B블록은 제주도 곡선에서 영감을 받은 외관과 천장에 난 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 채광이 훌륭하다. 그가 애용하는 건축 재료로 유리다. 건축은 불가피하게 벽을 세우는 것인데 유리는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이를 광대하고 기분 좋게 연결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창 진행 중인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도 그가 설계를 맡았다. 한국의 정림건축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 중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대형 라이트 빔을 통해 자연광을 지하 깊은 곳까지 끌어올 예정이다. 그는 도시를 변모시켜 시민에게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만들고자 한다. 사진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