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TREND
2021. 08. 31
클로드 모네가 담은
풍경
그림 따라 떠나는 색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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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온 생애를 인상주의에 천착했다. 같은 대상을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에 걸쳐 수십 장 반복해 그린 모네의 그림은 항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 언제나 새로운 공기와 분위기의 재현물이다. 더불어 그 당시 튜브 물감의 발명은 화가들이 더 멀리 나가고, 더 오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도왔고, 모네는 자신이 몰랐던 세계의 방대한 색채를 화폭에 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해 여름, 바닷가
트루빌 해변의 판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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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ardwalk on the Beach at Trouville’, 70x50cm, 1870.
21세기 우리에게 모네는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전설적대가이지만, 19세기 화단에 처음 입성했을 때 그는 기성세대에는 ‘그(림을)알(지도)못(하는)’ 철부지였다. 화가라면 마땅히 엄숙한 신화, 종교, 역사를 주제로 삼아사실적 묘사에 치중해야 할 텐데 정원에 소풍 나온 여인들이나 그리고 앉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버티면 승리한다고 했던가! 모네는 꾸준히 자신의 화풍을 연마해나갔고, 1870년대부터 인상주의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기 시작했다. 1870년에 그린 ‘트루빌 해변의 판자길The Boardwalk on the Beach at Trouville’은 그해 여름 아내 카미유와 떠난 프랑스 트루빌 해변을 기록한 그림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파라솔 늘어선 해수욕장이 매우 익숙한 광경이지만,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다는 관념은 산업혁명 이후 생겨났으며 더구나 수영복 차림에 물장구질하는 행동은 보편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네가 재현한 트루빌 해변의 피서객들 역시 바닷물에 몸을 담그기보다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양산을 든 채 모랫길을 유유자적 걷는 귀족층이 대부분이다. 뜨겁고 정열적인 여름 해변 분위기가 지금처럼 만연해지기 전, 고풍스럽고 여유로운 휴양지의 풍경. 모네가 남긴 과거의 여행지는 그림 속 뭉게구름처럼 한순간 피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흩어져갔다.
강처럼 흘러간 역사,
웨스트민스터 다리 밑 템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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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ames below Westminste’, 47x73cm, 1871.
일반적으로 역사화는 사실에 충실한 세필 묘사로 대상을 재현하면서 영광스러운 과거를 굳건히 박제한다. 하지만 모네는 찰나의 빛을 묘사한 색으로 산들바람 같은 순간을 포착해내는데, 이는 역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시간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역설한다. 1870년 가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파리는 봉쇄되고 모네가 영위하던 삶의 터전은 버려진 휴지 쪼가리 처럼 처참한 상태로 전락했다.

‘웨스트민스터 다리 밑 템스강The Thames below Westminster’은 모네가 아내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집을 떠나 런던에 정착한 이듬해에 그린 템스강이다. 미세먼지가 내려앉은 듯 자욱한 안개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석양, 저무는 해를 따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낯선 타지에 머물며 모네가 어떤 심경으로 이 전망을 바라봤을지 상상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한 마음을 알 리 없는 템스강은 야속하리만치 평온하게 서서히 흘러갔을 것이다. 모든 역사가 그렇게 강처럼 흘러갔듯이.
그가 사랑한 해변
만포르트, 에트르타 절벽,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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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neport, Cliff at Etretat, Sunset’, 60x81cm, 1883.
한평생 모네는 동일한 대상을 여러 차례 반복해 그리는 시리즈에 몰두했는데, 1880년대에는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에트르타 해변에 푹 빠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네의 눈을 사로잡은 대상은 아치형으로 돌출된 거대한 자연석 만포르트. 1883년 에트르타에서 휴가를 보내며 ‘만포르트, 에트르타 절벽, 일몰The Manneport, Cliff at Etretat, Sunset’을 그린 뒤 1885년과 1886년에도 재방문하며 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비 내리는 절벽, 파도치는 절벽, 일몰의 절벽 등 만포르트는 해변의 날씨에 따라 표정을 달리했고, 모네는 이젤을 서쪽을 향하게 세워 태양의 조도를 이용해 그리기도 했다. 인상주의의 성공, 모네의 명성과 함께 에트르타의 절벽은 매력적인 여행 장소로 손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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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상을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에 걸쳐 수십 장 반복해 그린 모네의 그림은
항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
언제나 새로운 공기와 분위기의 재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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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찌르는 아름다운 풍경
레인스뷔르흐 풍 차가 있는 튤립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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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s of Tulip with The Rijnsburg Windmill’, 66x81cm, 1886.
고집스럽게 한 우물을 파면서 성공한 모네는 후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흐의 동생 테오는 1885년 고흐에게 자신이 모네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편지를 써서 보냈고, 이듬해 파리로 이사한 고흐는 인상파의 명성을 직접 실견하면서 유연한 붓놀림과 밝은 색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모네가 1886년 열흘간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그린 ‘레인스뷔르흐 풍차가 있는 튤립 꽃밭Fields of Tulip with The Rijnsburg Windmill’을 보자. 그는 이국의 풍차와 튤립에 매료되어 다섯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야외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물감을 동원해 오직 색과 색의 관계로만 화면에 깊이와 볼륨감을 구현해냈다. 거친 붓질로 처리한 꽃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생동감을 더하고, 쓱쓱 칠한 풍차 날개는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모네의 손에 붓이 아니라 카메라가 들렸다면 그는 선구적인 스냅 사진가가 되지 않았을까? 감정을 쿡 찔러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빠르게 담으려 한 그의 조바심이 135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전해온다.
지베르니 연못의 마법
수련 연못 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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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 92.7x73.7cm,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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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우아한 녹색 다리와
정원을 투명하게 반사하는 연못,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수련은 모네의 치열한 삶을
위로해주는 새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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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모네는 두둑해진 지갑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약 80km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연못이 아름다운 집을 구하고, 1899년 수련 시리즈 제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해 여름 모네는 ‘수련 연못 위 다리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를 포함해 열두 점의 수련 그림을 그렸다. 곡선이 우아한 녹색 다리와 정원을 투명하게 반사하는 연못,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수련은 모네의 치열한 삶을 위로해주는 새 친구가 됐다. 모네는 한 편지에서 수련 연작을 이야기하며 처음부터 연못을 계획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정원을 보다가 문득,아주 갑자기, 내 연못이 마법에 걸린 것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연못 외에 내가 그려야 할 다른 모델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모네의 그림이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꼼꼼하게 묘사하지 않고 붓으로 대충 문지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고정된 대상을 그리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그 대상을 앞에 두고도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는 일이다. 그건 정말 마법이 걸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주어진 경로를 벗어나 독자적인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용기, 단단한 알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펴는 도전은 여행과 상당히 닮았다. 코로나19가 종식 될 훗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날 기회가 생긴다면 마음속으로 모네를 떠올려보자. 첫발을 디딘 미지의 땅에서 당신에게도 마법에 걸릴 시간이 찾아올지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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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아트인컬처> 수석기자) |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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