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 버킷 리스트 상위에는 여행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떠한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이 만든 자연에서 감동을 찾는지, 인간이 이뤄낸 문화와 역사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지,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액티비티를 즐기길 원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는 이러한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25개 여행지를 선정했다. 그중 자연, 모험, 지속 가능성, 문화와 역사, 가족 다섯 가지 범주에서 잊을 수 없는 여정을 소개한다. 몇 군데 여행지를 들여다보면 취향에 맞는 여행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러시아 바이칼, 광대한 호수가 전하는 신비한 이야기
러시아 시베리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깊은 호수가 있다. 너무 광대하고 깊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곳, 바이칼Baikal이다. 길이 636km, 폭 20~80km, 면적 31,494km², 깊이 1,642m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민물호수로 알려져있다. 세계 담수 공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이 호수는 겨울이 되면 평균 영하 9°C로 꽁꽁 얼어 광활한 고속도로를 만들어낸다.
말이 끄는 썰매는 빙판 바이칼 호수를 질주하고 말발굽은 호수 위 흔적을 남긴다. 낮은 온도에서 견디기 위해 옷을 겹겹이 껴입어야 하지만, 기관차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겨울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혹시 피부에 닿는 칼바람이 걱정이라면 호숫가에서 광천 온천을 즐기며 러시아산 보드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전통 사우나 반야Banya에서 마신 보드카는 일찍 마중 나온 겨울의 어둠을 반기게도 한다. 물론 여름철에도 야생동물을 관찰하며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넓은 바이칼 호수 지평선을 누비며 하이킹을 즐기고, 지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200종의 바이칼 호수 식물과 동물도 만날 수 있다. 세계 유일의 담수 바다표범을 찾는 순간 신비한 생명의 교감을 나누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시베리아의 부랴티야 공화국Republic of Buryatiya을 찾아가보자. 이곳에서는 겨울 끄트머리에서 설경을 떠올리게 하는 하얀음식인 컬, 크림, 양 치즈, 알코올 쿠눈가 등을 나누며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자전거 여행은 파리 도심 센강에서 시작된다. 그중 센강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로 지붕과 첨탑 등이 무너졌지만, 여전히 놓치지 않고 봐야 할 유산이다.
프랑스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연간 830만 명이 프랑스를 지나거나 머무르며 자전거 여행을 한다. 한 해 프랑스 여행객의 4분의 1가량이니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이에 몇 년 전부터 파리는 자전거 수도로 만들기 위해 약 200km의 자전거전용도로와 1만여 개의 자전거 주차장을 확보했을 정도다.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개인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 비중을 현재 3%에서 9%까지 늘리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자전거도로는 에펠탑, 노트르담대성당 등 파리 주요 관광포인트가 있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곳곳과도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파리와 몽생미셸을 연결하는 벨로세니Veloscénie, 파리에서 출발해 페리선을 타고 런던까지 이어지는 아브뉘 베르트Avenue Verte, 센강에서 항구도시 르아브르까지 연결되는 센 아벨로Seine à Velo, 프라하까지 이어지는 비아 카롤리나Via Carolina 등이 있다. 길마다 다채로운 예술과 문화·자연이 기다리고 있으며, 여정 동안 한 편의 영화를 듯한 감동이 전해진다.
독일 루르, 자연과 산업 문화를 결합한 놀라운 공장
석탄을 캐거나 가공하는 공장이 즐비하던 탄광 도시 루르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변화함으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고 유럽의 문화수도가 되었다.
독일 루르Ruhr는 150년 탄광 산업의 역사적 흥망성쇠를 함께하는 곳이다. 이 흔적들은 “과거를 살린 현재의 루르”라는 평가를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예술 중심지가 되었다.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에 있는 졸버레인Zollverein 탄광 산업 단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관광도시로 거듭났고, 과거 탄광 시설들은 21세기 가치 있는 건축물들로 변모했다.
100헥타르약 30만 평의 넓은 부지에 20여 개 붉은 벽돌 건물과 석탄을 실어 나르던 고가철도는 2010년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에 의해 새롭게 탄생했다. 육중하고 거친 철골 구조물들은 외관만 살린 채탄광 박물관인 루르 뮤지엄Ruhr Museum, 레드 닷 디자인 뮤지엄Red Dot Design Museum 등으로 바뀌었다. 변화된 공간에서는 팝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음식 페스티벌을 열기도 한다. 광부들이 작업 후 샤워하던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컨테이너를 뒤집어 만든 수영장은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갤러리, 공연장, 심포지엄 및 박람회장, 작가 스튜디오 등 공원과 문화 공간으로 바뀐 독특한 건물들을 살펴보면서 탐방로를 걸으면 자연과 산업 문화를 결합한 공간이 더욱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탈리아 프로시다, 문화 수도로 떠나는 예술 여정
나폴리만의 나폴리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는 프로시다는 2022 이탈리아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이탈리아 프로시다Procida는 나폴리 항구에서 뱃길을 달려가면 4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섬이다. 선명한 햇살아래 청량한 지중해가 펼쳐지고, 온갖 파스텔빛 색감이 뒤덮은 아기자기한 건물은 이 섬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의 참맛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지만, 사실 이곳은 기원전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있다. 그리고 2022년 코로나19로 섬이 고립되지 않도록 모두가 하나가 되기 위한 문화 프로젝트를 펼친다. ‘라쿨투라 논 이솔라La Cultura Non Isola, 문화는 고립되지 않는다’라는 테마 아래 현대미술 전시회, 축제, 공연 등 문화 프로그램을 300일 이상 진행한다. 한 시즌을 위한 축제가 아닌 언제 찾아도 다양하고 멋진 행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2022 이탈리아 문화 수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과거 르네상스 궁전에서 폐쇄된 감옥으로 사용한 팔라초 다발로스Palazzo d'Avalos에서 새롭게 변화한 문화 공간과 도시공원을 만끽해보자. 문화와 예술의 따뜻한 위로가 전해질 것이다.
스페인 알함브라, 그림같은 도시로 떠나는 여행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인 알함브라는 극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을 간직해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그림 같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라나다 언덕에 오르면 옛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이던 백색 건물이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기하학적 아름다움의 절정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 마지막 이슬람 왕조, 13세기 나스르Nasr 왕조의 술탄 도시 알함브라The Alhambra, 붉은 요새가 있다. 유럽 최고의 무어 건축물로,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의 모태가 되었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대변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건물은 크게 4개로 나뉜다. 처음 지은 건축물인 전망 좋은 요새 알카사바Alcazaba, 성채는 9세기 로마 시대의 요새 위에 나스르 왕조를 세운 무하마드 1세가 현재의 규모로 정비하고 확장했다.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인 나사리 궁전Nasrid Palaces은 1238~1358년에 지었으며, 헤네랄리페Generalife, 천국의 정원는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가 있어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은 그라나다의 아랍 군주들이 물러난 이후에 가톨릭교도들이 16세기 세운 건물로, 르네상스 시기에 지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궁전과 비슷한 형태로 설계했다. 톨레도의 건축가가 짓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완공된 적이 없다고 알려진 신비한 궁전이다. 알함브라.
아치와 기둥을 이루는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세밀하고 방대한 장식, 거대한 돔,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수로와 수변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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