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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3. 25
뜻밖의 ‘멈춤’이
불러온 기회
창의적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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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목욕탕에서 우연히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일화는 유명하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세상을 바꾼 창의적 아이디어는 연구실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뜻밖의 멈춤 순간에서도 “유레카!”를 외치게 한다.
스마트폰이 갑작스럽게 고장 나거나, PC 화면에 ‘치명적 오류’라는 알림과 함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망연자실하게 된다. 무심코 누른 업데이트 실행 버튼에 한동안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예기치 않은 일도 종종 일어난다. 정전된 것처럼 갑작스레 ‘멈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뇌의 주의 잔류 현상
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건너뛰면 주의를 얇게 분산시켜 어떤 것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주의 잔류Attention Residue’라고 하는데, 다른 활동으로 넘어간 뒤에도 중요한 무언가를 계속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뇌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것도 주의 잔류 현상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멀티태스킹이 잘되는 것을 업무 효율성이 좋고, 생산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규칙적으로 하던 업무에서 새로운 업무가 더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오히려 생산성이 저하된다.

하지만 ‘뜻밖의 멈춤’은 창의력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루틴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다. 이런 루틴이 예기치 않게 중단되면 행동은 멈추지만 우리의 뇌는 주의나 관심을 계속 유지한다. 이러한 주의 잔류 현상 덕분에 다시 루틴이 시작되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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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공과대학교의 팀 슈바이스푸르트 교수는 맥킨지디지털과 함께한 사례 연구에서 예기치 않은 업무중단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TempowerkHamburg
독일 함부르크공과대학교TUHH의 팀 슈바이스푸르트Tim Schweisfurth 교수는 예기치 않은 업무 중단이 뜻밖의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화재로 공장가동이 멈춘 유럽의 한 제조업체는 공장 직원에게 예정에 없던 휴가를 주었고, 이후 업무에 복귀한 공장 직원과 휴가를 가지 않고 잔류한 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공장 가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었다.

그 결과 휴가로 나흘간 출근하지 않은 8,500명의 직원은 계속 출근한 직원보다 훨씬 많은 개수(58%)의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아이디어 질도 더 높았다. 접수된 아이디어를 관리자들이 평가한 결과, 업무를 중단했던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그렇지 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보다 3%p가량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즉흥적 멈춤과 창의력의 상관관계
유럽의 제조업체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직원의 창의력은 원래 하던 업무에서 얼마나 집중하고 다른 것에 주의를 돌렸느냐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재 때문에 예기치 않은 휴가를 다녀온 직원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냈지만, 새로운 업무에 투입되어 멀티태스킹이 필요해지자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못했다. 휴가를 다녀온 직원들을 해당 공장에 홍수가 나서 피해 복구라는 새로운 업무에 투입했더니 홍수라는 새로운 업무에 주의를 기울이는 통에 창의적 성과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에는 휴대전화나 음악과 같이 뇌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환경을 만들기보다 가끔 그리고 불쑥 긴 산책을 하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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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의 화학자 스펜서 실버(왼쪽)와 그의 동료 아서 프라이. 3M의 15% 룰은 3M의 혁신을 이끈 기업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아서 프라이는 이 규칙 덕분에 ‘포스트잇’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3M
중요한 것은 계획된 멈춤보다는 즉흥적인 멈춤이 창의력을 높인다는 점이다.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계획된 휴가는 예기치 않은 중단이 아니기 때문에 휴가를 다녀온다고 해서 무조건 창의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위 공장의 사례에서도 예기치 않은 휴가가 아닌 평소와 같은 일반 주말 연휴의 경우 업무에 복귀했을 때는 아이디어 제안 건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핵심은 즉흥성이다. 계획된 휴식이나 업무 중단에서는 창의력 향상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회의를 예정보다 일찍 끝내 임의적으로 유휴시간을 갖거나, 즉흥적으로 하루 휴가를 준다면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활 속 즉흥적 멈춤을 일으키는 법
누구나 생활 속에서 창의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때 즉흥적 멈춤을 활용하면 좋다. 바로 호흡법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나서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바로 ‘3초 호흡’에 돌입한다. 먼저 앉거나 선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편다. 눈을 떠도 상관없지만, 잘 안 되면 처음에는 눈을 감고 시작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 집중하면서 3초간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입으로 3초간 내쉰다. 다시 3초간 들이마시고 3초간 내쉬기를 10번 정도 반복한다. 평소 우리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인지하지 않는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호흡만 해도 명상 효과가 있다. 긴장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화가 날 때 3초 호흡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호흡에만 집중하면서 복잡해진 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생각을 환기시킬 수 있다.

나무나 화분, 강물 등 자연과 하나 되는 방법도 있다. ‘주파수 맞추기’라고도 하는 이 방법은 이른바 ‘멍 때리기’와 같다. 움직이지 않거나 미세하게 움직이는 사물을 바라보며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이 방법 역시 간단하다. 식물이나 흐르는 강물 또는 촛불 등의 물체를 골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단 몇 초도 아무런 생각과 감정없이 사물을 바라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인지한 후 계속 흘려보내다 보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때가 창의력을 비롯한 뇌의 잠재력이 발현되기 좋은 순간이다.
뇌에 주는 선물
빠르고 복잡한 경쟁 사회에서 뇌는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느라 지쳐 있다. 사람에게 번아웃이 오듯, 뇌도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창의력은 늘 깨어 있되 ‘뜻밖의 멈춤’ 상황에서 발휘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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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직원의 창의력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신사옥 ‘베이 뷰 캠퍼스’를 조성해 유연한 업무 환경을 만들고, 20% 타임제 같은 제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고 있다. ©Bay View Campus
구글과 3M은 이미 인재 경영에서 이와 같은 부분을 적용하고자 각각 ‘20% 타임제’와 ‘15% 룰’을 개발했다. 구글의 20% 타임제는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업무 시간의 20%를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루틴을 멈추고 탐험을 시작한 결과 수억 개의 별자리와 성운을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구글 스카이’, ‘구글 맵스’ 등의 성과를 냈다. 3M의 15% 룰은 신상품 연구 개발에 업무 시간의 15%를 사용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창의력을 위해 딴생각을 적극지원하는 15% 룰은 192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3M을 대표하는 ‘포스트잇’도 이를 통해 탄생했다.

일상에서 한눈을 팔거나 집중하지 않을 때 “이래선 안돼” 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뇌에 뜻밖의 멈춤을 주기 위해서 가끔은 뇌가 자연스럽게 다른 모드로 접어드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좋다. 막다른 길에서 불현듯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듯, 그냥 두는 일이 창의적 생각을 일으키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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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라이프
글. 강은영(한국뇌과학연구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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