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0. 11. 24
코로나가 바꾼
식탁 풍경
위기이자 기회의 뉴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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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우리의 밥상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관계의 단절마저 불러오는 팬데믹을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때다.
시대 변화에 따른 밥상의 변화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팬데믹 그 이후
팬데믹이 이전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초래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혼밥과 혼술,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홈 다이닝이 대세가 됐다.
서울과 뉴욕, 파리, 방콕 등지의 유명 맛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미국은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소비 트렌드까지 달라졌다. 건강한 음식뿐 아니라 간식, 에너지 음료,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이 미국인의 심리적 결핍과 식욕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시행한 ‘젓가락 실험’은 팬데믹 시대에 식생활이 극명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여러 명이 한 식탁에서 각자의 젓가락으로 음식을 덜어 먹은 결과, 공용 젓가락을 쓸 때보다 최대 250배의 세균이 음식에서 검출됐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베이징시는 음식을 덜어낼 때 공용 젓가락과 국자 사용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시행하기로 했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여러 명이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공찬제共餐制로 바뀌었는데 이 1,000년에 걸쳐온 식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에는 소반을 중심으로 하는 독상獨床이 주를 이루다가 근대에 들어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하는 밥상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한국의 밥상 문화도 코로나19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고, 앱으로 음식을 배달해 먹는 소비가 일상이 되고 있다. 음식을 덜어 먹는 공용 수저와 집게, 국자, 개인 접시를 따로 주는 식당이 늘고 있으며, 더치페이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1인상 식당’을 선호한다.
이제는 위생을 생각해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일은 피해야 하는 시대다. 대중식당에 가면 독서실처럼 투명한 칸막이를 설치해놓은 곳이 많아졌다. 점심시간에도 대화 대신 수저 소리와 음식 씹는 소리만 들린다. 위생도 좋지만, 음식을 통해 나누는 관계가 단절되고 있는 기분이다. 식탁에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식사하고, 레스토랑들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이 빨리 온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팬데믹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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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식탁은 지구 몇 바퀴인가요
팬데믹으로 지구와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환경, 특히 기후 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움직임이 최근 늘 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식품 생산부터 가공, 유통,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우리의 음식 문화가 기후 위기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식품 시스템이 전체 온실가스의 33%(MeridianInstitute, 2017)를 배출하고, 인류가 식량을 얻기 위해 물과 토지를 잘못 사용하 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오염됐다는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 위기가 인류의 먹거리를 위협하고, 기존의 식품 시스템이 환경에 부정 적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올해 유례없는 긴 장마와 가을 태풍을 겪었고,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떼의 습격이 빈번했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 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은, 대량생산을 통해 값싸고 간편히 먹겠다는 인류의 목표가 환경을 오염시켜 기후 위기를 가속화했다는 점이다. 지구를 기후 위기에서 구해내고 싶다면 우리의 식생활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구를 살리는 식생활에서 가장 직접적인 대안은 역시 친환경 농업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은 토양을 보호한다. 토양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 다양성의 저장고’임을 감안한다면 친환경 농업은 토양·대기·수질오염을 줄일 뿐 아니라, 생태계를 보호하고 생물 의 다양성까지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인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친환경 농산물이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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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식생활
팬데믹의 장기화는 식생활 패턴에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인류의 정신 건강에 빨간 경고등을 보내왔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스트레스 관리와 운동, 식단 개선이 필요하다.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는 신체적·심리적 웰빙에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항산화 성분으로 유명한 폴리페놀의 섭취가 중요하다.
수입품보다 국내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먹을 만큼 구매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 오거나, 부패하기 쉬운 재료부터 요리하고 냉장고를 자주 정리하는 것도 팬데믹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통곡물과 과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선택하면 세계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 상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2050년까지 70억∼8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하자. 세계는 코로나19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인간 활동의 공백기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잠시나마 되살아나는 ‘코로나 역설’을 경험하면서 인류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최근 영국의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은 <가디언> 기고에서 “인류의 식습관과 자연 개발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야생동물 남획과 공장식 축산 경영이 코로나19 같은 질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달리 대안이 없기에 살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고, 자연에 피해를 주는 저렴한 음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식습관을 철저하게 바꾸고 식물성 음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동물과 지구,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다”라는 제인 구달의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음식 문화의 뉴 노멀, 즉 새로운 표준을 정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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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정미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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