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1. 04. 13
우리 곁에 있는
세계적 거장의 건축물
자연의 숨결을 담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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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알면 내 주위의 건물이 달라 보이고, 익숙한 도시가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건축 기행은 도시에서 삶의 배치를 새롭게 가져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해외여행이 멀어진 요즘,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적 거장의 건축을 통해 지리한 일상에 새로운 시선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건축의 시인 알바루 시자의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안양 파빌리온
누군가는 건축물 때문에 어떤 도시를 찾기도 한다. 그런 사람 들에게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파주를 찾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건축가 알바루시자는 1992년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2002년에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건축의 대가인 알바루 시자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 일컬을 만큼 애정 깊은 공간이 바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다. 많은 건축가가 건물의 첫인상에 해당하는 전면에 집중하지만, 조각가가 꿈이던 알바루 시자는 다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조각품 같은 건축물을 지향한다. 동서남북 입면이 모두 다른 모습이어서 건물 주변을 돌며 감상해야 한다.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평면도상으로는 웅크린 고양이를, 후면인 정원 쪽 곡면은 고양이 앞발 모양을 취한다. 그는 외관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대체로 백색을 선호한다. 빛의 변화를 보여주기에 백색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이 공간을 완성하는 건 빛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알바루시자가 아시아에 최초로 선보인 작품 또한 국내에 있다. 안양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현한 공공 예술 도서관 ‘안양 파빌리온’이다. 안양 파빌리온 역시 조형적인 화려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반구형으로 디자인하고, 곡선과 직선을 교차하며 빛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흔히 알바루 시자를 ‘건축의 시인’이라 부른다. 건축 부지를 날카롭게 통찰하고 본질을 꿰뚫어본 다음 불필요한 장식은 비우고 비워서 최소한의 선과 재료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습니다. 단지 실재를 변형할 뿐이죠.” 알바루 시자가 말한 자신의 건축 철학이다. 거장은 어려운 걸 해내고 설명은 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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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루 시자의 안양 파빌리온
자연과 교감하는 이타미 준의
제주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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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제주 방주교회
재일 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은 안도 다다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재료에만 열중한 안도 다다오와 달리 이타미 준의 건축은 흙, 돌, 금속,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한다. 일본에서 카페 인테리어에 침몰당해 인양한 배의 나무를 이타미 준의 건축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제주도에 있는 ‘수ㆍ풍ㆍ석 박물관’이다.
제주도에 많다는 바람, 돌, 물을 각각 전시하는 곳으로 바람 박물관은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나무로 만든 창고다. 다만 바람을 모을 수 있게 입면을 완만한 곡면으로 처리했으며, 벽을 막는 널빤지 사이에 좁은 틈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박물관 근처에 자리한 ‘포도호텔’ 역시 그의 작품이다. 포도호텔의 지붕은 제주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름과 전통 제주 민가의 지붕 선을 해석해 설계했다. 넝쿨에 어우러진 포도송이 같은 모습은 그냥 그곳에 있는 언덕이 그대로 지붕이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는 이름처럼 노아의 방주처럼 생겼다. 건물 주변을 낮은 연못이 감싸고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교회 같다. 이렇듯 이타미 준은 교회라는 인공 건축물의 존재감을 최대한 지워냈다. “예술품은 자연을 보완하는 데 불과하다”며 그는 늘 주변 환경과 최대한 닮은 건축 재료로 건축물이 자연에 스며들도록 노력했다. 먼저 지역의 특성을 알고, 재료의 물성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그는 2006년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건축가 김수근의 이름을 딴 ‘김수근 건축상’을 받고, 2010년에는 일본 최고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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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제주 포도호텔
현대 건축의 거장 안도 다다오의
제주 유민 미술관, 본태박물관&원주 뮤지엄 산
거장 건축가에게는 상징 같은 건축 재료가 있다. 아무 장식없는 노출 콘크리트에 질서 정연한 콘1)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할 때 거푸집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사못으로 조이면서 생겨난 구멍들이 인장처럼 찍힌 회색 건물. 안도 다다오를 검색하면 뜨는 이미지다. 그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시간과 빛의 변화를 느끼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마감재가 필요 없는 콘크리트를 택했다. 콘크리트를 재료로 안도 다다오는 서양 건축 스타일인 기하학 형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건축물은 자연요소로 에워싸고, 동양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미로같이 복잡한 동선을 더해 공간을 찾는 사람 모두의 시퀀스를 풍요롭게 했다. 즉, 콘크리트 박스 건물에 자연의 변화가 더해지고, 사람이 그것을 경험하면서 그의 건축은 완성된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지은 ‘유민미술관’은 건물에 들어가기까지 양쪽이 막힌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진입로를 따라가다 보면 방문객은 해가 뜨고 노을이 지며 밤이 찾아오는 하루의 자연스러운 속도감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빛과 물과 바람이 많은 삼다도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여럿 들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본태박물관’은 경사진 지형의 성격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설계되었다. 땅의 높낮이를 그대로 살려 그곳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보존했다.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산’은 산 위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에서 물과 바람과 빛을 감상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건축은 필요한 것만으로 간결하게 유지하되 빛과 시간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층고를 높게 잡고 통창을 내 개방감을 높였다. “건축은 사람이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중간 장치이다.” 안도 다다오의 말처럼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자연이 완성하도록 여지를 두면 한 공간에서도 매일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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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제주 본태박물관
공간을 창조하는 도미니크 페로
서울 이대ECC&제주 아트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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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페로의 이대 ECC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등지고 센강 변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중정을 중심으로 네 권의 책을 펼쳐놓은 듯한 건축물에 당도한다. 건축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파리지앵의 사랑을 받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건축가 도미니크가 무려 30대 초반에 설계했다. 이후 그는 유럽연합 대법원 청사, 베를린 올림픽 자전거 경기장과 수영 경기장을 설계하고,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 개발에도 참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가 됐다. 그런 그의 작품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지하 6층의 깊이만큼 파고 다목적 건물 ‘이화캠퍼스복합단지 ECC’를 완성했다. 모든 시설물을 지하에 넣고 지상에는 산책 공간을 조성해 닫혀 있던 캠퍼스를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보다 공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내 역할은 건축이나 재료 그 자체보다 풍경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어요.” 도미니크 페로는 건축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건축가다. 제주 ‘아트빌라스’는 도미니크 페로가 겐고구마, 승효상 등과 함께 완성했다. 블록마다 한 명의 건축가가 담당했는데, 도미니크가 설계한 B블록은 제주도 곡선에서 영감을 받은 외관과 천장에 난 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 채광이 훌륭하다. 그가 애용하는 건축 재료로 유리다. 건축은 불가피하게 벽을 세우는 것인데 유리는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이를 광대하고 기분 좋게 연결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창 진행 중인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도 그가 설계를 맡았다. 한국의 정림건축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 중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대형 라이트 빔을 통해 자연광을 지하 깊은 곳까지 끌어올 예정이다. 그는 도시를 변모시켜 시민에게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만들고자 한다. 사진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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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페로의 제주 아트빌라스
글. 변지우 에디터·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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