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TREND
2021. 06. 15
집에서 즐기는
파인다이닝
파인다이닝의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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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가장 큰 변화는 생활 전반에 비대면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식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5명 이상의 모임을 자제하고 여러 명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일이 불편하고 불안한 현실이 되면서 외식은 줄어들고 집밥의 횟수가 늘어났다.
온라인 장보기와 음식 배달의 수요는 큰 폭으로 증가하지만, 재료 손질 등 기본 준비 과정 외에 주문받은 직후 조리해내는 식당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셰프의 실력에 감각과 순발력은 물론 공간 분위기와 대면 서비스의 수준이 퀄리티를 결정짓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고급 레스토랑의 품격을 집에서
지난 1년간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의도치 않게 동면의 시간을 보냈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며 궤도 수정에 나서는 곳이 늘고 있다. 이미 많은 호텔 레스토랑과 유명 셰프는 2~3년 전부터 증가한 1인 가구를 타깃으로 서비스 채널을 확대해왔다. 집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상품화한 HMRHome Meal Replacement, 즉석에서 간단하게 조리하는 가정 대체 식품와 밀키트Meal Kit, 손질한 재료를 하나의 세트로 구성한 반조리 간편식 형태로 선보이고 있는데, 코로나19의 확산세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식당에서 먹는 그 맛과 똑같을 순 없겠지만, 고급 식당의 메뉴를 집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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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나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또 하나의 방편이되는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 줄어든 업장 이용률에 대한 대안으로 포장과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는 추세다. 깔끔하게 포장한 도시락 메뉴를 출시해 투고to-go나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만 볼 수 있던 드라이브스루drive-thru 서비스, 대중에게 인기 높은 배달전용 앱을 통한 유료 딜리버리 서비스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메뉴와 영업시간도 확장해 다양하게 구성한 플래터 형태 메뉴나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와인을 포함하기도 하고, 심야 전용 메뉴도 선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레스토랑에선 매출 증대 효과를 보고 있다.
글로벌 셰프의 딜리버리 브랜드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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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음료 등으로 딜리버리 메뉴를 구성해 론칭한 내추럴리스테.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코로나19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스타 셰프도 몇 달씩 문을 닫아야 하는 절망적 상황을 겪은 후, 배달과 픽업 서비스를 점차 도입하고 있다. 특히 미식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프렌치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도 이런 흐름에 일찌감치 편승했다. 지난해 4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록다운 조치를 했을 때 로맹 메데Romain Meder 셰프와 함께 준비한 ‘내추럴리스테Naturaliste’를 론칭한 것이다. 자연주의를 테마로 한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으로 파리 전역에 배달이 가능하다. 지역 생산자가 직접 기른 제철 채소와 곡물, 생선 등 식자재 위주의 스타터 메뉴부터 디저트까지 10유로 내외의 합리적 가격대로 구성하고, 자연 분해 가능한 친환경 소재를 포장재로 사용한다. 또 프랑스의 젊은 스타 셰프 아크람 베날랄Akrame Benallal도 지난해에 론칭한 딜리버리 브랜드 아크람 홈Akrame Home을 통해 약 15가지 구르메 메뉴를 제공한다. 배달은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를 이용하고, 역시 자연 분해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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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아크람 베날랄이 직접 배달하며 고객과 소통하는 아크람 홈.
레스토랑뿐 아니라 주류를 취급하는 바 중에도 이러한 시도를 하는 곳이 있다. 2019년 런던의 주류 전문매체 <더 드링크 비즈니스>가 선정한 ‘월드 50 베스트 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한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단테Dante는 미국 내 첫 록다운 시기인 지난해 3월 팬데믹 대응책으로 특별히 고안해 만든 투고 칵테일을 선보였다. 단순한 주류 상품이 아니라 마실 때의 즐거운 경험까지 가미한 것이다. 아티스트와 협업해 레이블을 만들거나 패키지에 꽃을 포함하고, 칵테일을 홀짝이며 즐길 수 있도록 스포티파이Spotify,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파인다이닝은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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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변화에 발 빠른 대처로 ‘홈 파인다이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많아지는 추세다. 특히 도쿄의
FOOD-E는 최상의 음식 퀄리티와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그대로 집 안에 전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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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높은 식자재, 맛과 위생을 모두 충족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운영하거나 규모가 큰 레스토랑이 아닌 이상 메뉴를 상품화하거나 포장재 및 배달 수수료 등 비용적 측면에서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에서 주최한 제1회 서울 미식주간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서울 레스토랑@홈’도 행사 기간인 5일간 고급 레스토랑 셰프의 메뉴를 딜리버리와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역시 비대면 미식의 가능성을 시사한 행보라 할 수 있지만, 셰프들은 아직 단기적 시도일 뿐 딜리버리 서비스만으로 미식에 대한 욕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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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입장에서도 외식이 주는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맛뿐 아니라 테이블 세팅, 그릇과 음식의 어울림,
장소의 분위기, 직원의 환대, 대면 접촉으로만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간의 태도,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까지
모두 최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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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파인다이닝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가 퇴색 또는 퇴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의 미식 도시로 손꼽히는 도쿄의 ‘FOOD-E’라는 음식 배달 서비스는 눈여겨볼 만하다. 도쿄 전역에서 특별히 큐레이션해 독점 파트너십을 맺은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를 온라인 클릭만으로 주문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노부Nobu, 헤이친로Heichinrou, 엘리오Elio 등 이전에는 딜리버리하지 않은, 아니 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의 일식, 중식, 이탤리언 퀴진 등 다양한 메뉴를 원하는 장소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FOOD-E는 유명 레스토랑으로부터 음식의 퀄리티와 서비스를 그대로 고객에게 전달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얻고 있다. 전문성과 세심한 서비스 태도를 갖춘 딜리버리 드라이버가 음식의 본래 온도를 유지해주는 보랭·보온 기능의 주문 제작한 고급 패키지에 담아 이동한다. 날씨나 교통 상황이 어떠하든 주문부터 배달까지 1시간 이내에 레스토랑에서와 다름없이 신선한 맛과 감각적 프레젠테이션을 그대로 담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도쿄 도심의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서 제공하고 있지만, 향후 지역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 그뿐 아니라 플라스틱 대신 환경친화적 식품 용기를 사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해 탄소 배출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펼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곧 전기 오토바이를 도입할 계획도 있다. 평소이 레스토랑들의 요리를 즐겨온 이는 물론, 처음 접하는 고객도 더 편안하게 프리미엄 미식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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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일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는 지금,
국내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더 많은 고민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적절한 균형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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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및 포장에 최적화한 메뉴 개발과 함께 고급 패키지 및 배달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위한 투자도 이루어져야 한다. 작금의 정체된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오히려 이 상황을 계기로 서울의 파인다이닝 문화가 한층 다채롭게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정주(<노블레스> 기자) |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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