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2. 01. 26
갈림길에 선
중국 인터넷업계
The Sage Inve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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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에 선 중국경제
2021년 알리 파이낸셜의 상장 좌초 이후 중국 대기업들은 모두 납작 엎드려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에서부터 시작된 규제는 부동산, 교육업계에 이어 전체 경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시작된 강력한 제재는 줄어들기는커녕 머잖아 중국 경제의 '뉴노멀'이 될 확률이 높다. 중국 산업의 변천사와 터닝포인트를 맞은 기업들의 상황을 돌아보고, 공동부유를 내세운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이 기업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살펴본다.

1. Hurun Report: 신들의 황혼, 누군가의 신기원
2. Made in CHINA: 메이드 인 차이나의 도약
3. Internet: 갈림길에 선 중국 인터넷업계
4. Yahoo: 야후라는 반면교사
5. Regulation: 중국 기업은 공동부유를 어떻게 보는가?


- ④,⑤ 콘텐츠가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지금은 개인이 부상하는 시대인 동시에 공동체가 폭발하는 시대이다. 수많은 개인이 한 시대의 급행열차에 탑승하며 왕관을 쓰기 시작한다. 인터넷은 의심할 여지없이 초고속 특급열차이다. 바이두의 리옌훙,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 바이트댄스(진르터우탸오와 틱톡 모회사)의 장이밍, 메이퇀뎬핑(소셜 커머스)의 왕싱, 핀둬둬(소셜 커머스)의 황정은 바로 여기에 탑승한 슈퍼 개인이다.

2020년 글로벌 인터넷 상장사 30위 랭킹 중, 미국은 18개, 중국은 7개 기업이 올랐다. 여기에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게임회사 넷이즈(NetEase), JD닷컴, 핀둬둬 등이 포함되었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 마윈처럼 어떤 영어 교사는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대가가 되었고, 주식시장에서 큰 수익을 거둔 광둥 청년은 온라인에서 기존 친구나 새로운 친구와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인 중국판 소셜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과 창업주들은 지난 25년간 중국 인터넷의 진화와 함께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겪어왔다.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몇 번이고 전부를 건 도박에서 승리해 업계의 모범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1999년부터 시작된다.
미국 비즈니스 모델의 중국 상륙
1991년 성탄절, 리옌훙은 난생 처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자신이 8년 후 같은 날 고액의 연봉과 미국 영주권을 버리고 새로운 상업 제국을 건설하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해 처음으로 웹사이트가 탄생했지만, 인터넷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19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Netscape)는 웹 브라우저를 분리해 상장했다.

설립 후 16개월 동안 수익을 낸 적이 없던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7억 달러였다. 이후 20년간, 투자자들은 더 이상 IT회사를 수익으로만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아메리카온라인(AOL), 아마존, 크레 이그리스트(Craigslist: 미국의 지역 생활 정보 사이트)와 이베이(eBay)는 인터넷 수요를 예리하게 포착, 잇달아 다양한 분야의 리더가 되었다. 이로써 인터넷을 미국에서 인기 아이템으로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바다 건너 중국에도 인터넷 산업의 씨앗을 뿌렸다.

넷스케이프 상장 즈음 마윈은 인터넷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딩레이(넷이즈 창업주)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광저우로 내려간 상태였다. 리옌훙은 미국에서 귀국해 중국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넷이즈(NetEase)가, 1998년에는 소후닷컴(搜狐, sohu.com)과 시나닷컴(新浪, sina.com)이 설립되었다. 1999년 야후차이나가 정식으로 오픈했다. 이로써 중국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이후 20년 동안 중국 인터넷의 발전 속도는 미국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소후닷컴을 오픈한 장차오양 덕분에 창업 열기에 고취된 마화텅은 같은 해 11월 11일 텐센트를 설립했다. 1년 동안 두 번의 창업에 실패한 마윈은 만리장성에서 18명의 창업 멤버와 함께 울부짖었고, ‘하이퍼텍스트 링크(Hypertext link) 분석’의 특허를 보유하게 된 리옌훙은 브리즈번의 세계 인터넷 컨퍼런스에서 구글 창업자와 첫 만남을 가졌다.

이 3명의 청년은 비슷한 시기 인터넷업계에 잇달아 등장해 20여 년간 지속될 경쟁을 시작한다. 이 1년 동안, 치후360(현 360 시큐리티)의 저우훙이 회장은 멀웨어(Malware: 컴퓨터 사용자 몰래 시스템에 침투하거나 피해를 입히기 위해 설계된 소프트웨어)소프트웨어 3721을 만들었다. 1999년 전후는 인터넷시대의 첫 번째 도약 시기였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넷이즈, 씨트립(Ctrip), JD닷컴 등의 기업이 모두 이 시기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1984년 중국 전통산업이 급성장한 것처럼, 향후 20년 동안 중국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 제품을 선보일 기업들이 이 때 형태를 갖춘 것이다.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마윈은 치열한 포털 사이트 경쟁에서 탈피해, 전자상 거래 모델 비즈니스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후판화원(湖畔花園)이라는 아파트 단지에 방을 임대해 사무실을 오픈한 첫째 날, 마윈은 18명의 알리바바 창립멤버에게 개업 연설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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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회사를 만들 것이고, 102살까지 살 것이다.” 이 방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순수한 그의 믿음과 열정에 동참했다. 이듬해 1월 리옌훙이 6명의 멤버와 함께 검색엔진 사이트 바이두를 설립했다. 그리고 중국 인터넷의 기본 모델인 ‘포털+커뮤니티+전자상거래+소셜+게임+엔터테인먼트+검색’ 카테고리 구성을 완비 했다.

1999년을 전후해서 이토록 걸출한 인터넷기업이 다수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술 논문 ‘격동30년’(激動三十年)은 이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학기술사, 예술사, 상업사를 살펴 보면 어떤 분야나 국가에 전성기가 온 특정 해에 여러 위대한 인물이나 회사가 집중적으로 탄생한다. 이런 현상은 이성적인 논리로는 유추하기 힘든, 역사에 내재된 드라마틱한 현상이다.”

1세대 유학파는 미국식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중국에 도입했다. 그리고 1세대 프로그래머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선두 위치를 다졌다. 유학파와 프로그래머의 조합은 중국 인터넷 시대의 폭발적 성장을 위한 고속도로를 놓는 역할을 했다.
나스닥의 붕괴, 중국 인터넷 모델의 초석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마존의 주가는 1년 새 23배 상승하는 등, 전 세계가 인터넷이 몰고 온 과학기술 혁명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나스닥 지수는 5,132포인트로 정점을 찍고 난 뒤, 인터넷 거품 붕괴와 함께 1,100포인트까지 80% 폭락했다.

인터넷 회사들의 주식은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넷이즈 주식은 상장 당시의 15.5달러에서 3개월 만에 0.64달러로 떨어졌다. 딩레이는 넷이즈 매각을 시도했지만, 재무감사 문제 때문에 매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소후닷컴의 장차오양은 이사회의 배척으로 실권을 거의 상실했고, 시나닷컴 창업주 왕즈둥(王志東)은 불행하게도 회사 주가가 55달러에서 1.6달러로 떨어지자 이사회에 의해 회사에서 퇴출됐다.

3대 포털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는 운좋게 주식 폭락을 피해갔다.

바이두는 시드 라운드 투자에서 120만 달러를 받았고, 이후 두 번째로 1천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확장해 갔다. 2001년 8월 리옌 훙은 처음으로 투자자와 결별까지 강행하며 사업 변신을 거듭, 사용자를 위한 독립적인 검색엔진으로 변신했다. 입사 4개월차의 천재적인 상품 설계자인 위쥔(兪軍)이 리옌훙에게 변신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8년간 그들은 함께 구글을 물리치고, 검색과 인터넷 게시판 서비스로 1차 인터넷 대전을 마무리했다.

검색엔진의 최우선 순위는 트래픽이다. 빠르게 인지도를 얻기 위해 바이두는 ‘시나닷컴 셧다운 사건’을 일으켰다. 어느 날 시나닷컴에서 검색창에 키워드를 검색하자 ‘시나닷컴이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 바이두에서 시나의 검색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검색을 원하시면 baidu.com으 로 접속하십시오’라는 메시지가 적힌 페이지가 뜬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시나닷컴 포털의 백엔드를 바이두가 하청받아 책임지고 있었는데 시나닷컴에서 한 분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몇 번의 독촉에도 시나닷컴에서는 관리자가 휴가를 갔다는 식의 핑계를 대며 돈을 연체했다. 그러자 바이두의 개발자가 시나닷컴의 검색 엔진을 중단시켜 버린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바이두는 개인 사용자의 대량 유입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리옌훙은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 방식을 확립했다. 그 방식은 비용을 많이 지불할수록 검색 상위에 오르도록 배치하는 형태로, 이는 향후 10년 동안 바이두의 핵심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바이두에게 황금알을 낳아준 이 천재적인 설계가 8년 후 여론 비판의 중심에 서게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시도한 시대
2008년 중국 네티즌 수가 처음으로 미국을 넘어섰다. 자국에서 치뤄지는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인터넷 발전을 더욱 촉진시키며 PC 시대는 절정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것도 잠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출시되며 모바일 인터넷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009년 중국 인터넷은 ‘포털의 시대’에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주름잡는 ‘BAT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세 기업은 BAT가 여러가지 서비스를 시도하며 수익원 확장에 나섰다. 바이두는 전자상거래 ‘여우아’와 소셜 서비스 ‘티에바’를 출시했다. 알리바바는 소셜서비스 왕왕(旺旺)과 알리게임을 출시했다. 텐센트는 서우서우(搜搜)를 열고 검색서비스에 뛰어들었고, 전자상거래 파이파이(拍拍)와 게임,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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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3대 대기업은 서로의 사업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경계하며 소셜, 검색, 전자상거래, 게임 등의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들은 자체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트래픽과 자금 우위를 이용해 다른 기업의 서비스를 차용하는 영리한 방법을 채택했다. 창업자의 입장에서 만약 텐센트나 알리바바가 자신의 회사 서비스를 모방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분노를 넘어 공포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PC시대에 대기업들은 제대로 된 규칙과 감독관도 없이 무질서하게 성장을 추구했다.
모바일 인터넷의 초기 키워드, 경쟁
2008년을 기점으로 중국 인터넷업계에 서는 노골적인 경쟁이 번번이 벌어졌다. 2010년 9월 27일, 텐센트와 중국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치후360이 충돌했다. 당시 텐센트가 ‘QQ닥터’와 ‘QQ컴퓨터관리자’와 같은 백신 프로그램을 내놓자 치후360이 텐센트의 메신저 서비스 QQ에 보안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며 ‘360세이프’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은 것이다. 이후 텐센트는 치후360 브라우저 사용자의 QQ메신저 사용을 중지, 사용자에게 360과 QQ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이 사건은 ‘3Q대전’이라 불렸다.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한 뒤 바이두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한때 80% 이상을 차지, 경쟁자라고는 없는 독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는 쇼핑 검색시스템을 선보이며 의도적으로 바이두의 검색을 차단했다. 이후 바이두 검색에서 타오바오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모바일 시대의 ‘폐쇄형 네트워크 서비스’(Walled Garden)가 번성하자, 개방성을 추구해 온 PC 인터넷의 황금시대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악습과 폐단의 발견
2008년 11월, CCTV ‘30분 뉴스’는 이틀 연속 바이두의 폐단을 보도했다. 바이두의 검색광고 서비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검색 상위권에 오른 병원을 찾았다 엉터리 치료를 받고 숨진 사례가 드러나면서 바이두의 ‘검색어 장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진짜 인기 순위가 아닌 비용을 주고 구매한 순위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은 다른 기업에서도 터져 나왔다. 1,107명의 중국공급상이 알리바바 직원과 손잡고 사기행각을 벌여, 알리바바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국 2011년 2월, 당시 알리바바 CEO를 맡고 있던 웨이저(衛哲)가 책임지고 사퇴했다. 2011년 10월 10일, 타오바오 쇼핑몰은 온라인 입점업체가 지불하는 기술 서비스 비용과 위약보증금을 증액했다. 이는 150만 소형 판매자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소형 판매자는 대형 판매자를 대상으로 악의적으로 구매와 반품을 반복하고, 오프라인에서는 타오바오 본사를 포위하며 시위를 벌였다. 결국 타오바오는 가격인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10월 공성전’(十月圍城)이라고 불린다.

변혁은 기업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기업 자체적으로 반성과 고질병 제거가 이어졌다. 2010년 3Q대전 후에 텐센트는 폐쇄적인 구조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2011년 바이두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AI의 등장을 예고했다. 2012년 알리바바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BAT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의 시대
2010년 전후는 중국 인터넷의 두 번째 약진의 시대이다. 메이퇀, 디디추싱(滴滴 : 택시호출 서비스), 진르터우탸오(今日頭 條: 뉴스 알고리즘 서비스), 샤오미(小米), 콰이서우(快手: 숏폼 공유 SNS), 비리비리B잔(Bilibili B站: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모모(陌陌: 데이트 및 라이브스트리밍 앱)는 모바일 인터넷 열기에 편승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2010년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은 모바일 기업 샤오미의 창립을 발표했다. 그는 파격적인 온라인 판매 방식과 ‘바람이 부는 곳에 서 있으면 돼지도 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중국 젊은 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같은 해 3월 미국의 소셜 커머스 기업 그루폰을 복제한 메이퇀이 출시되었다. 명품 쇼핑몰 VIP닷컴은 설립 4년 만에 나스닥에서 상장했고,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가 저작권 (IP) 경쟁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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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유니콘 기업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인터넷 시대의 골드러시가 벌어졌다.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인터넷 시대는 연결된 시대다. 이 시대에 우리는 개체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5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중국 인터넷의 성장스토리는 베이징, 선전, 항저우와 상하이를 관통하며 14억 중국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개인의 부상은 곧 집단적 경험과 이야기로 바뀌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 인근의 주기적인 교통체증,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의 야근 불빛, 선전 텐센트 본사 아래서 보너스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선 직원들, 이런 장면들은 중국 인터넷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부러움과 자부심 자체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후의 모습을 앞으로도 기대하고 싶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출판사 샹제(商界) 편집부 중국 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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