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3. 03. 28
고유한 것의 가치,
로컬의 낭만화
로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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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 가치가 떨어지고, 나만 알고 있는 희귀한 것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중앙과 대비되는 지역, 지방과 만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익숙해서 지나쳐온 동네의 이야기가 이제는 귀한 콘텐츠가 되었다.
급부상하는 ‘로컬’ 콘텐츠
먹는 것에 진심인 탓에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큰 변동사항이 없는 한 현지의 맛집에는 꼭 방문하려고 한다. 식당을 찾을 때는 검색어에 ‘현지인이 자주 가는’이라는 문구를 추가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맛있는 그 지역의 맛집이 검색될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필자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현지인이 자주 가는 그 지역 식당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식당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지역 특산품 등의 고유한 콘텐츠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현지의 콘텐츠에 대한 높은 관심이 사람들의 소비 성향과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로코노미Loconomy가 급부상 중이다.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신조어인 로코노미는 도심의 거대 상권이 아닌 특정 동네, 즉 현지에서 소비 등을 포함한 경제생활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를 주로 판매하는 동네 주류 판매점이나 신선한 지역 음식을 직접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는 식료품 매장이 로코노미 안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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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한 지역의 오랜 한옥이나 소소한 지역 소식을 담은 잡지를 판매하는 서점도 주목받고 있다.
왜 로컬은 지역 담장을 넘었나?
로컬 경제생활이 최근 로코노미라는 키워드로 각광받게 된 주요 배경으로는 집 앞 생활의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사람이 많은 도심보다 집과 가까운 골목 상권을 이용하게 되고, 달러 인상이나 안전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 해외보다 국내를 여행하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각 지역의 소매점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또한 1인으로만 구성된 가구, 이른바 ‘나 홀로 가구’의 증가 등으로 과거와는 달리 그 지역의 현지인도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이 세분되어 지역 및 동네 기반의 상품이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는 2022년 소비 트렌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로코노미’를 선정했다. 이용 건수 기준 매년 1월부터 9월 사이 지역별로 고유한 개성을 지닌 매장을 대상으로 이용 변화를 살펴본 결과, 2020년에 비해 2021년 소비 지표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기간 해당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나 특정 지역의 유명 식당에서만 판매하는 음식을 직배송해주는 산지 직송 플랫폼 이용 횟수가 2020년과 비교했을 때 전 세대에 걸쳐 50% 이상 증가했다. 신규 가맹점 이름에 ‘부산’, ‘대구’, ‘전주’, ‘인천’ 등 지역 이름이 들어간 가게가 많아진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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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산품에 아이디어를 더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지역 명물 중 하나인 ‘춘천 감자빵’
이는 로코노미가 지역 내 소통에 그치지 않고 지역 밖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최근에는 지역 고유의 희소성과 특색을 담은 상품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 지역 밖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과 빠른 배송 체계는 다른 지역 상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로코노미는 현지인만의, 현지에서의 경제생활에 국한하지 않고 로컬이 아닌 소비 주체의 로컬 제품, 로컬 문화의 소비 등을 포함한 경제생활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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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는 ‘촌캉스’가 뜨고 있다. 사진은 강원도 속초 상도문 돌담마을의 부엉이 가족 돌 조각품
자연스러운 흐름, 로코노미의 성장
오늘날 우리의 삶은 글로벌 시대 속에서 여러 가지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의 여러 관계망이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말이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 인종과 인종, 종교와 종교, 문화와 문화가 고립된 상태로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 관여하고 소통할 수밖에 없으며,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다원화 세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다원화 세상에서 실질적으로는 일원화, 획일화된 소비 형태가 가속화되어왔다. 특히 글로벌 대기업들은 전 세계 대중을 상대로 더 광범위하게 호응을 유도하고 소비를 이끌고자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대중적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자본의 논리에 맞춰 상업성 강한 제품의 생산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보편 사회나 단일 소비 환경에서 벗어나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을 얻고자 하는 동력, 고유한 것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재빨리 포착해내고 대응하려는 힘이 바로 로코노미의 핵심이다. 그래서 로코노미는 자연스럽게 ‘중앙’이 아닌 ‘지방’, ‘다수’가 아닌 ‘소수’, ‘중심’보다는 ‘주변부’에 집중하고, ‘같음’보다는 ‘다름’, ‘동일성’보다는 ‘차이성’, ‘이성’보다는 ‘감성’에 집중할수록 더 빛을 발한다.
이는 과거 자본주의의 위력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와 국가중심주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로컬의 위치가 주체성과 능동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소비문화의 가능성과 연결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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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경주보문호수DT점은 경주 고유의 분위기를 살린 좌식테이블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타벅스의 행보는 지켜볼 만하다. 사실 글로벌 커피 브랜드로서 지역적 특색을 강조하지 않을 것 같지만, 로코노미를 제일 빨리 도입한 기업이기도 하다. 2016년 7월 제주 지역 매장에서만 판매한 제주 특화 음료는 지난해 2월 기준 누적 판매량 550만 잔을 돌파했다. 2012년 문을 연 스타벅스 경주보문호수DT점은 독특하게 좌식 테이블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커피를 마시는 공간 안에서 한국의 감성을 느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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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제주도의 지역 특색을 가미한 음료와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또한 쇼핑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새로운 유행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중고 거래 앱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분석한 중고 거래 앱의 월별 이용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1월 4,377만 명이던 앱 이용자 수는 2021년 1월 기준 1억588만 명까지 증가했다. 여러 업체 중에서도 특히 당근마켓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는데, 당근마켓은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중고 거래 환경에 ‘동네 직거래’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지역 중심 플랫폼이라는 트렌디한 매력을 보여줬다.

한편 요즘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호텔+바캉스보다 로컬에서 현지인처럼 휴가를 보내는 것이 유행이다. 시골집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뜻인 ‘촌캉스村+바캉스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곳에 가야만’ 체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즉 희소성을 지닌 공간, 바로 로컬 한정적 경험의 가치에 요즘 세대가 열광한다는 뜻이다.

위 사례에서 스타벅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로컬은 거대 상권과 대립적 관계에 있지 않다. 당근마켓은 동네 주민이라는 접근성과 친밀함을, 촌캉스는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를 로컬의 매력으로 삼고 있다. 로코노미는 로컬이라는 공간에서만의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로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생활 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로코노미는 바로 ‘로컬의 재발견’이자 ‘로컬의 낭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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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취미/취향 #라이프
글. 이재훈(성신여대 법학부 교수,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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