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사라지는 콘텐츠,
좋은 원작을 찾아라!
소설, 웹툰, 게임, 예능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가 무한 변주되고 있다. 특히 요즘은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콘텐츠 산업의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영상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이야기는 곧 좋은 원작을 의미한다. 점점 허물어지는 콘텐츠의 경계 속에서 오리지널리티(원작)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OTT 넷플릭스는 지난 11월,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을 그대로 그려낸, 일반인 참여 예능 프로그램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를 공개했다.
글로벌 OTT의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마스크 걸>, <무빙>으로 이어지는 K-콘텐츠 열풍이 그야말로 거세다. 그동안 한국 콘텐츠 시장은 만드는 능력으로만 평가받아왔다. 잘 만든다는 것은 ‘빨리’, ‘가성비 높게’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재와 장르, 가치관, 세계관까지 한국 콘텐츠가 인정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는 네트워크 경제 기반의 플랫폼 사업자인 웹툰과 글로벌 OTT의 영향이 크다. 특히 글로벌 OTT는 협소한 내수 시장에서 제한적 장르의 콘텐츠만 소비하던 국내 콘텐츠 산업에 세계시장이라는 무대를 열어주었다. 세계로 뻗어나간 K-콘텐츠는 흥미로운 소재와 꼼꼼한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수준의 품질이라는 이미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콘텐츠 시장은 언제나 원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의 드라마를 살펴보면 소설에서 창의성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토지>, <허준> 등 1990년대 초반에 미니시리즈 형식이 드라마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주류였다. 이러한 유행은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일본과 한국 만화 원작으로 영역이 확대되었고,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서는 <다모>, <궁>, <공부의 신>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콘텐츠 제작 붐이 일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웹툰 원작의 콘텐츠가 주류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현재 기획되고 있는 드라마의 90% 이상은 웹툰 원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웹툰의 위상이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글로벌 OTT에 노출된 한국 드라마가 세계인들의 ‘좋아요’를 받는 배경에는 재미있는 소재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만의 제작 역량도 한몫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작 메커니즘, 제작 기간과 속도, 제작 기술, 제작 인력 등 모든 측면에서 노동집약적이던 속성들이 기술집약적 속성이 가미되어 콘텐츠 제작 능력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품질을 보장하고 있다.
IMF 외환 위기 시기에 해외 스튜디오 및 프로덕션과 영화·드라마 생산 요소를 교류하는 계기가 있었다. 이에 디지털 촬영과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서 영화와 드라마 제작 방식의 장점을 서로 흡수했고, 두 산업의 제작 메커니즘은 거의 비슷해졌다. 결정적으로 글로벌 OTT의 투자가 성사되면서 영화감독 출신이든 드라마 PD 출신이든 충분한 시간과 기술적 지원을 받으면서 작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제작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영화 같은 드라마도 가능하지만, 드라마 같은 영화라는 표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콘텐츠 산업이 발전하게 된 배경으로 채널의 확대도 눈여겨볼 수 있다. 유료 방송·IPTV· 종합 편성 채널· 글로벌 OTT에 이은 국내 OTT도 생겨나면서 콘텐츠 수요가 예전보다 증가했으며, 이는 원작의 희소가치 상승으로 귀결되었다. 밤을 새워 작업하는 작가의 피나는 노력에도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성공하는 작가의 탄생은 희소하다. 따라서 이미 검증받은 원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드라마 <무빙>과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팝업 스토어
최근 많은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웹툰은 2D라는 무대에서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동원되어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이런 웹툰을 영상화하는 데는 특별한 제작 기술과 제작비가 필요하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표현하지 못하는 소재가 있고, 기술이 있더라도 제작비 투입이 불가능한 소재도 있다.
이런 웹툰 시장과 영상 콘텐츠 시장의 보이지 않는 간극을 허문 것이 글로벌 OTT다. OTT는 방송보다 표현에서, 영화보다 러닝타임에서 자유롭다.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때문에 제작비 투입도 자유롭다. 한번 성공한 콘텐츠는 시즌제 제작으로 성공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으며, 스핀오프Spin-off 제작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기 쉽다.
웹 소설, 웹툰으로 시작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2023 국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한마디로 OTT는 재미만 있으면 어떤 것이든 영상화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시청자는 웹툰 <신과 함께>에 등장한 지옥을 영상으로 체험하고, 웹툰 <무빙>이 영상화되면서 판타지·영웅·SF·액션·스릴러가 모두 섞인 복합 장르를 경험했다. 웹툰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작품화하고, 글로벌 OTT는 그 작품에 움직이는 생명을 불어넣는다. 둘의 앙상블은 영상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이는 국내시장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성과다.
카카오엔터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좀비버스>는 좀비 콘텐츠의 세계관을 가져왔다.
웹툰의 오리지널리티는 글로벌 OT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방송, 게임에 이르기까지 원천 IP로서 영상콘텐츠 산업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예능 <좀비버스>는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세계관을 가져온 스핀오프 콘텐츠다. 영화 <매트릭스>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도 리메이크되어 여전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오히려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생산하기 이전에 먼저 웹툰으로 제작해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시에 IP를 확보하는 전략이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메커니즘이 되고 있는 추세다.
극장이나 방송은 후퇴해도 스토리 산업은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웹툰이라는 오리지널리티와 상상력을 구현하는 글로벌 OTT의 진전에는 진한 뒷그림자가 남는다. 웹툰이 상상하는 내용은 종이와 화면으로만 구현하면 된다. 웹툰의 상상력에 몰입감을 더해주는 것이 영상 콘텐츠다. 그러나 몰입감의 실현성은 제작비에 비례한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도 그렇지만, 판타지와 SF 장르의 실현에는 막대한 제작비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인지에 따라 웹툰은 살아 숨 쉴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국내 내수 시장의 영상 생산자들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 국내 웹툰을 국내 실력자들이 모여 영상으로 제작하지만, 유통은 글로벌 OTT의 몫이라는 점이다. 최근 <연모>, <조선 변호사>, <술꾼 도시 여자들>, <신성한, 이혼> 등의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었고, 웹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화관에서 관객과 호흡했다. 제작비로 예를 들면 웹툰 원작의 드라마는 150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영화 제작비는 200억 원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벌 OTT에 편성된 <무빙>의 제작비는 650억 원가량이고, 해외 만화 원작 <원피스>는 1,9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각각의 매체는 각자의 수익원을 갖고, 예상 수익 이내에서 제작비를 투입한다. 이미 방송이나 영화의 내수 시장에서 회수 가능한 수준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콘텐츠에만 집중한다면 다른 것을 놓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웹툰, 만화, 소설에 이어 게임 스토리까지도 영상화되어 세계적 수익을 발생시키는 세상이 도래했다. 치열한 영상 콘텐츠의 생존 경쟁만큼 원작 시장의 경쟁 상황도 치열하다. 이미 K-웹툰은 영상 콘텐츠의 영양소이자 생명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것을 그려내는 이야기를 세계시장은 고대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글로벌 OTT가 제작하고, KBS 드라마 <굿 닥터>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하는 세상이다. 그 선봉인 K-웹툰을 넘어서는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