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1. 02. 22
투자에 성공한
예술가들
폴 고갱, 엔니오 모리코네, 제프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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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은 예술가의 숙명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노래뿐 아니라 투자도 잘했다.
어느 날 폴 매카트니와 대화하다 판권의 가치를 알아본 그는 비틀스의 판권을 샀고, 그래서 살아생전 둘의 관계는 어색했다고 한다. 팝의 황제처럼 저작권의 가치를 알아보고 재테크에 성공한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금융업에서 쌓은 투자의 지혜를 미술계에서 발휘한 예술가도 있다. 본업도 잘하고 자산 축적에도 능한 투자의 귀재 예술가의 지혜를 엿본다.
증권거래인이었던
폴 고갱
영국 작가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 1874~1965의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1919)>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소설 중 하나다. 별일 없이 살던 한 중년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편안한 삶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그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다 나중에는 태평양의 외딴섬 타히티로 떠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위대한 그림을 남긴다.
사실 이 소설은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현실의 안락함을 버려야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목표 의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폴 고갱이 실제 투자 실패로 인해 한순간 실업자로 전락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화가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폴 고갱은 처음부터 전업 화가가 아니었다. 고갱은 17세에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며 배를 타고 많은 곳을 다니고는 했다. 이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증권사에 취직해 주식 중개를 시작하고, 좋은 보수와 함께 주식시장에서의 빠른 의사 결정 등으로 유능한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생활도 점차 나아져 상류사회에진입한다.
그림 그리는 작업은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시작한다. 고갱은 취미로 그림을 그렸는데, 물론 인상파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거나 살롱에 입선되기도 할 정도로 일반적인 아마추어 화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882년 프랑스 파리 주식시장이 크게 폭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파리 위니옹제네랄 은행의 파산으로 촉발된 증시 붕괴 사건이다. 증권거래소가 아예 문을 닫으면서 증권사도 망하게 되는 연쇄효과가 발생해 실제 성업 중이던 증권사 중 25%가 파산했다. 1882년의 주식 폭락은 1987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에 비할 만큼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고갱이 실직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고갱은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만큼 주식거래 활동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덕분도 있다. 적절한 투자를 통해 수입이 많았던 고갱은 여느 중산층 남자들처럼 도박, 유흥에 빠지지 않고 자산 관리까지 여유롭게 잘한 인물이었다.
투자를 통한 자산 관리와 함께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가 없었다면 마흔둘의 나이에 홀로 남태평양의 타히티에 정착하고 그림만 그리는 전업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었을까?
그가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투자의 혜안이 밑바탕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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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 자산을 기반으로 폴 고갱은 40대에 전업화가로 변신했다. 폴 고갱, ‘3명의 타히티 여인들’ 189
영화음악의 소유권을
회수한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계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우리에게는 영화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61년 이탈리아에서 영화음악가로 출발했다.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할리우드가 정석처럼 여기고 있던 전통적인 작곡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휘파람 소리를 비롯한 차임Chime, 하모니카 등 새로운 악기들을 차용해 서부 영화음악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황야의 무법자Fistful of Dollars(1964)>의 휘파람 연주가 바로 그것인데, 이후 작곡한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1977)>, <원스 어폰 어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 <미션The Mission(1986)>, <언터처블The Untouchables(1987년)>,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1988)>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곡 모두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소유는 아니다. 영화음악의 소유권은 대체로 영화 제작자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저작권법에는 영화 제작자가 영화의 모든 저작권을 보유하고, 그 권리가 제작자에게 집중되어 영화의 상업적 거래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특례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1970년 후반 영화음악을 만들며 선수금과 로열티Loyalty를 받으면서도 약 30여 년이 지난 이후에는 자신의 영화음악에 대한 권리를 다시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기재했다. 이로써 엔니오 모리코네는 2010년 이후 이 계약의 조항을 근거로 자신의 음악 저작 권리를 회수했다. 당시받은 계약금이 한화로 약 150만원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이제 영화음악의 권리 회수로 대략 20억원 이상의수익 창출이 예상된다고 하니 장기 투자 관점에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투자 실력은 그의 작곡 실력만큼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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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작곡 30년 뒤에저작권을 회수하는 사항을 계약서에 기재했다
월스트리트 원자재 중개인이었던
제프쿤스
2008년 프랑스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 18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대표적 고전주의 건축물이자 루이 14세의 귀족적 권위를 상징하는 이곳에 플라스틱 꽃이나 토끼 풍선 인형 등 장난감 같은 네오 팝아트 작품이 전시되자 반응은 엇갈렸다.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에 대중은 즐거워했고 평론가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 파격적인 전시회를 기획한 예술가는 바로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다.
그는 시카고 예술 학교와 메릴랜드 예술학교에서 회화painting를 전공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월 스트리트에서 뮤추얼 펀드와 주식을 팔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퍼스트 인베스터스 코퍼레이션First Investors Corporation에서 원자재 중개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클레이턴 브로커리지 컴퍼니Clayton Brokerage Company 등에서도 원자재 중개인으로 일했다. 이후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고갱처럼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제프 쿤스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재원을 마련하기도 하고, 미술 시장에서 예술가가 딜러나 컬렉터보다 더 독립적이고 유리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제프 쿤스는 “나의 작품은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올바르거나 틀린 해석도, 숨겨진 의미도 없다”고 밝혔다. 대중들은 제프 쿤스에게 열렬히 환호한다.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 7만여 송이의 꽃으로 만든 ‘퍼피Puppy(2000)’는 강아지 모양의 조형물로 도심 한가운데서 향기를 흩날렸고, 추수감사절 무렵 메이시 백화점에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명절 분위기를 한껏 돋운 ‘래빗Rabbit(2007)’도 바로 제프 쿤스의 작품이었다. 그만큼 그의작품은 시민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고가에 판매된다. 2019년 5월 한 작품이 9,110만 달러에 팔리면서 경매에서 팔린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의 작품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재질과 보존성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는 그가 직접 만들지 않고 아이디어만 제공하지만, 산업적 공정을 정밀하게 할 수 있는 공장을 소유한 데다 전문가들을 성장시켜놓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매끄럽고 반짝이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뿐아니라 제프 쿤스는 작품 그 자체가 원자재로서 하나의 우량주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최근 작품인 ‘축하Celebration’ 시리즈에 사용되는 반짝거리는 거대한 크기의 스테인리스는 매우 까다로운 원자재라 이러한 소재는 특수한 제련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재료비 등을 포함하면 제작에 약 100억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미술 작품의 재료비나 공정비를 공개하거나 홍보하는 예술가가 있을까? 그는 예술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이에 자신만의 커리어를 활용하여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은 항상 재료비와 공정비 그 이상의 가치가 매겨지고 최고가를 경신한다. 작품 그 자체를 투자 상품으로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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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는 원자재 중개인으로 일하며 쌓은 투자의 지혜를 작품활동에 활용한다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라
폴 고갱, 엔니오 모리코네 그리고 제프 쿤스는 예술가이자 투자가로서 자신의 미래에 투자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고갱은 평소 투자를 통해 미래에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모리코네는 장기 투자의 혜안을 통해 미래의 부를 축적했다. 쿤스는 예술가 스스로 투자가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투자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우리에게 부와 자유를 가져다줄 뿐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된다. 우리의 작품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투자의 지혜를 가진 예술가는 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투자는 예술이 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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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예술
글. 이재훈 변호사·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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