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페어’란 다수의 화랑이 한곳에 모여 부스를 차려놓고 미술품을 판매하는 행사를 가리킨다. 주로 동시대 미술, 즉 컨템퍼러리 아트를 선보이는데 때에 따라 근대미술과 올드 마스터13~18세기 미술를 취급하는 페어도 있다. 아트 페어는 부자 컬렉터들이 포진한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주로 열린다. 돈이 있는 곳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오일머니가 흘러넘치는 UAE에 신생 아트 페어가 속속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제 아트 페어의 경우 보통 전 세계에서 100~300개 갤러리가 참가하며, 대부분 닷새간 열려 ‘미술 오일장’으로 불린다.
20~30년 전만 해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FIAC피악’,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아트 시카고’가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꼽혔다.
아트바젤은 1970년 바젤의 유명 화랑주들이 결성해 만든 페어로, 독일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의 지리적 강점 때문에 첫해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아트바젤에는 워낙 내로라하는 슈퍼컬렉터들이 몰리다 보니 2~3조원 매출 달성은 식은 죽 먹기다. 점당 수십억, 수백억원 하는 작품도 보란 듯 거래된다. 주최측은 화랑과 출품작 수준에 엄청나게 신경 쓰며, 추리고 또 추린다. 세계 최고를 견지하기 위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패션 잡지 <보그>가 “아트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임시 뮤지엄”이라고 극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트바젤은 2002년 미국 마이애미에도 진출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매년 12월 초에 열리는데, 12월이라는 시점이 ‘신의 한수’였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을 찾은 부호들에게 길고 지루한 휴가에 예술적 볼거리를 선사하자는 복안이 주효했다. 실제로 마이애미 페어는 바젤에 버금가는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여세를 몰아 아트바젤은 아시아 마켓에 눈을 돌렸다. 중국과 싱가포르의 큰손을 겨냥해 ‘아트바젤 홍콩’을 2013년 론칭했는데, 차별화된 퀄리티로 단숨에 아시아 아트마켓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FIAC은 아트바젤, 프리즈와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손꼽히며, 매년 약 7만5,000명이 방문한다.
다음으로 역사가 깊은 페어는 1974년 출범한 FIAC이다. FIAC은 한동안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개최지인 그랑팔레가 대대적으로 개·보수 공사를 하는 바람에 10여 년간 주춤했다. 다시 그랑팔레에서 열리면서 최근에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아트시카고는 1980년 시카고의 관광 명소 네이비피어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큰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 3대 페어’로 꼽혔지만, 이제는 영국의 ‘프리즈 런던’에 밀려 명맥만 유지 중이다. 상업성과 함께 혁신성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페어는 ‘프리즈Frieze’다. 프리즈 런던은 1990년대 데이미언 허스트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젊은 미술가 그룹YBA이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자 탄생했다. 영국의 <프리즈>라는 잡지는 2003년 런던 리젠트파크에 대형 텐트를 치고 영국 작가들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였다. 새로운 예술을 갈망해온 컬렉터들은 이에 환호했고, 프리즈는 아트바젤, FIAC과 차별화를 이루며 승승장구했다. 런던 페어가 성공하자 프리즈는 2012년 뉴욕에 진출했고, 2019년에는 LA에도 진출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프리즈 서울’을 개최할 예정이다. 세계 4대 도시에서 페어를 여는 것인데, 이제 프리즈가 또 하나의 예술 브랜드로 확실히 부상한셈이다. ‘젊고 신선한 아트 페어’란 점이 성공의 요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