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2. 11. 01
이맘때 만나는
궁극의 풍경
세계 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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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볕과 선선한 바람이 사이좋게 어우러지고 나무가 노을보다 곱게 물드는 계절, 가을의 절정을 만날 수 있는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원시 숲과 호수의 땅,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은 크로아티아에 가는 이유 그 자체다. 1949년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중에게는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플리트비체’라는 이름은 몰라도 지구 밖 행성의 신비로운 자연 풍광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아 ‘죽기 전에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라는 로망이 됐다.

자그레브에서 차로 2시간, 플리트비체로 향하는 길은 사철 늘 분주하다. 여행자는 두 곳의 입구 중 대개 북쪽의 1번 매표소를 선택한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트레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좀 더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망대가 방문객을 반긴다. 여의도 면적 35배에 달하는 빼곡한 산림이 한눈에 담기지는 않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폭포와 호수의 눈부시고 청초한 물빛이 마음을 시원하게 적신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걷는 일은 호수의 자취를 따라가는 일. 16개의 호수가 수심과 햇빛에 따라 옥빛부터 짙은 감청색까지 각기 다른 물색으로 걷는 이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호수들을 잇는 것은 90여 개의 폭포. 계단처럼 형성된 카르스트 지대의 폭포는 귓전을 때리는 우렁찬 굉음 대신 온유한 물줄기로 잔잔한 물소리를 낸다.

거기에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가 어우러진 발랄한 하모니에 취하며 붉고 노랗게 물든 잎들의 매혹적인 자태에 시선을 던지다 보면 금세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아래쪽 공원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호수 안으로 들어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가을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수심이 깊은 코자크Kozjak 호수에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물살만큼이나 느리게 유영하는 보트 위에서 한가롭게 뱃놀이를 즐기는 호사도 놓치지 말 것.
붉은 성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장관,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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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호수 중앙의 섬에는 슬로베니아인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장소로 꼽는 작은 교회가 있다.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사이 발칸반도에 위치한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문화가 교차하는 이곳은 지중해의 느슨한 라이프스타일과 오스트리아의 질서정연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모두 지닌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로마네스크부터 바로크 건축까지 중세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수도 류블랴나와 함께 슬로베니아를 찾는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알프스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블레드 호수Lake Bled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뻗어나온 알프스산맥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율리안 알프스Julian Alps’로 통하는 설산의 만년설이 흘러 들어와 생긴 블레드 호수는 물 한가운데에 홀연히 떠 있는 블레드섬의 사계를 투명한 거울처럼 품는 풍광으로 유명한데, 나무가 알록달록 물드는 가을엔 오래된 건축물의 붉은 지붕과 완벽히 어우러져 특히 인기가 높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섬에 닿는 길은 이곳의 풍경만큼이나 낭만적이다. 호숫가 선착장으로 가면 ‘플레트나Pletna’라고 부르는 작은 나룻배를 만나게 된다. 물살만큼 느릿느릿 유유자적하게 노질하는 뱃사공의 몸짓과 수면 위의 고요한 파동, 오리와 물고기의 평화로운 한때를 감상하며 뱃놀이를 즐기다 보면 금세 섬에 닿는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 사랑의 전설로 유명한 이 예배당은 슬로베니아 청춘들에게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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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호수를 감싸고 있는 알프스의 설산과 아름다운 목조 주택들은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신랑이 신부를 안고 예배당으로 향하는 99개의 계단을 오른 후 함께 성당 안 종을 치면 오래,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섬의 하이라이트, 붉은지붕이 눈에 띄는 블레드성Bled Castle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성이다. 어느 곳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어도 동화 같은 장면을 남길 수 있다. 두 건축물과 섬 안쪽을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다시 배를 타고 섬 밖으로 나왔다면 이제 호수를 휘둘러 걸을 차례. 잘 조성된 나무 덱은 산책자에게도, 자전거 위에 오른 이에게도 쉽게 길을 내준다. 걷다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면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한 후 이 호수 마을의 명물 ‘블레드 케이크’를 주문할 것.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과 생크림, 슈거파우더가 어우러진 맛으로 호수 여행의 끝을 달콤하게 마무리하기 좋다.
모험가를 위한 대지,
아이슬란드 후사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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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후사펠은 아이슬란드 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크비타우강이 흐르는 가을빛 폭포가 매력적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많은 이의 버킷 리스트다. 그중 대부분은 한겨울 오로라와의 조우를 꿈꾼다. 낮이 매우 짧고 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가 주는 피로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겨울보다 가을에 찾길 권한다. 낮이 긴 계절엔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화산과 용암대지의 맨 얼굴을 천천히, 길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서쪽에 위치한 후사펠Húsafell은 지구의 열점 위에 위치한 아이슬란드의 터프한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빙하와 용암원으로 둘러싸인 이곳엔 아이슬란드의 상징적인 폭포 흐뢰인포사르Hraunfossar와 바르나포스Barnafoss가 있다. ‘용암 폭포’라는 뜻을 가진 흐뢰인포사르는 이름처럼 땅이 뜨거운 용암을 쏟아내는 형세로 세찬 물줄기가 흘러내려 비경을 이룬다.

흐뢰인포사르 폭포를 둘러싼 지역은 분화가 끊임없이 일어났던 곳으로, 주변에서 크고 작은 동굴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드는 건 비드겔미르Víðgelmir다. 높이 15.8m, 너비 16.5m의 위용을 자랑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동굴로, 용암이 흘러내 리다 굳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드겔미르를 탐사하는 건 여느 동굴을 걷는 것과 조금 다른 경험이다. 비좁고 어두운 터널을 걷는 대신 탁 트인 시야를 즐기며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 빙하수가 얼어서 생긴 수정 같은 고드름, 이름 모를 생명체가 얼어붙어 만들어진 것 같은 기암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먼 옛날 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비드겔미르가 트롤들의 땅이자 고향이라는 이야기을 절로 믿게 된다. 트레킹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은 후사펠스코귀르Húsafellsskógur 숲으로 향한다. 자작나무를 비롯해 수백 년 이상 척박한 용담대지 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의 환대를 받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가장 캐나다다운 풍경,
캐나다 레블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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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레블스토크 국립공원의 가을을 트레킹하다 보면 고즈넉한 호수에 비친 산봉우리와 줄지어 선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캐나디안 로키산맥을 품은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가을 여행의 성지다. 단풍잎을 국기에 새긴 나라답게 시선을 어디에 던져도 알록달록한 나무가 군락을 이룬, 가을 정취의 절정을 만날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소를 피해 호젓하게 단풍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로키의 산골 마을, 레블스토크Revelstoke를 추천한다.

BC주 남동부 오커나건 밸리에서 시작해 앨버타주까지 이어지는 쿠트니 로키Kootenay Rockies에 속하는 지역으로, 인구가 8,000여 명에 불과한 시골 중 시골이다. 이곳에 매년 11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유는 접근성 덕이다. 밴쿠버에서 캐나디안 로키의 ‘수도’로 불리는 밴프Banff로 향하는 트랜스-캐나다 하이웨이Trans-Canada Highway 중간에 위치해 쉬이 들렀다 가기 좋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긴 여정 중간에 쉼표를 찍기 위해 종종 들른다. 다운타운 입구에 들어서면 한 세기 전, 광산과 철도 개발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풍경이 맞이한다. 로컬 식재료로 만든 ‘캐나디안 가정식’으로 배를 채우거나 로컬 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펍에 들러 시간을 보내도 좋다.

레블스토크의 한적함을 좇아 이곳에 정착한 아티스트나 공예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 산책도 이 소촌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레블스토크 여행의 데스티네이션으로 삼은 이들은 대부분 마운트 레블스토크 국립공원Mount Revelstoke National Park으로 향한다. ‘캐나다 알프스의 수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국립공원은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등산, 암벽 타기, 캠핑, 낚시, 카야킹, 스키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액티비티를 공원 안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폭포를 순회하는 일명 ‘워터풀 트라이펙터’ 트레킹은 가을의 레블스토크에서 놓치면 아쉬울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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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절 #VIP
글. 류진(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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