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2. 11. 15
가을은
화가
계절을 품은 명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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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혁명이다. 흑백 브라운관이 컬러 TV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신세계를 목격했고, 캔버스를 물감으로 뒤덮은 그림은 추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여름내 선명하던 초록빛이 물기를 빼앗기며 바래갈 때, 그 자리에는 바삭바삭한 색채가 피어오른다. 가을이라는 화가는 대지를 캔버스 삼아 빨강·주황·노랑 물감을 아낌없이 뿌리고 펴 바른다. 그 색을 좇아 가을을 탐닉한 6명의 거장을 소개한다.
노랑, 겸허한 자연
우리를 먹이고 재우는 어머니는 노랑이리라. 생명이 움트는 대지, 그곳에서 자라는 벼, 밀, 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에는 모두 노르스름한 빛깔이 감돈다. 노랑은 태양의 색이자 땅의 색, 풍요와 번영의 색이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다른 존재를 품어주는 너른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자연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함을 느낀다. 그 겸허한 순간을 하나의 장면에 꼭꼭 눌러 담으면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의 ‘만종The Angelus’이 그려지지 않을까.

가을 늦저녁, 한 해 먹을 곡식을 수확하고 신께 감사 기도를 올리는 시골 마을의 부부. 고이 모은 두 손에는 양식을 얻었다는 안도감,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내길 바라는 소망,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보냈다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밀레는 화면의 3분의 2를 밭으로 메우고, 나머지는 노을 지는 하늘로 비워두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포착했다. 안정적인 구도를 감싸는 노란 색조는 그림을 보는 우리 마음을 편안히 잠재우고, 고요한 기도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오늘날 ‘만종’은 현대인에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평선이라곤 찾을 수 없는 빽빽한 빌딩 숲, 풍족하다 못해 하루에도 수억 톤씩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화학약품과 환경호르몬에 절여진 농산물…. 이 땅을 선연하게 비추던 노란 황혼이 뿌연 먼지로 인해 누렇게 혼탁해져가는 지금, ‘만종’은 작은 감사함으로도 충만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우리에게 경각심의 ‘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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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프로방스의 추수’.
밀레의 노랑이 관대한 자연을 표현했다. 그 반대편에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있다. 푸근한 노랑의 명도와 채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황금과 미치광이를 상징하는 쨍한 노랑이 나온다. 한평생 고흐를 사로잡은 해바라기, 회오리치는 달빛, 작열하는 태양 말이다. 광대하게 물결치는 밀밭은 농부의 마음을 배부르게도 하지만, 나아갈 방향의 갈피를 잃은 사람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망망대해일 뿐이다.

젊은 시절 고흐는 네덜란드 풍경화를 거래하는 화랑의 조수로 일하면서 밀레의 그림을 자주 접했다. 그러나 많은 이가 ‘만종’에서 기도하는 농부에게 주목할 때, 고흐의 눈은 그 너머 지평선을 따라 걸었다. 밀레가 탐닉한 자연 풍경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흐는 19세기 말 가을 프로방스로 떠나 온종일 농촌을 사색하며 걷고, 강렬한 빛과 생생한 색을 화폭에 옮겼다.

‘프로방스의 추수Harvest in Provence’는 노랑의 무한한 변주를 실험한 고흐의 역작이다. 선명한 푸른 하늘과 수확기의 건초 더미, 황금빛 밀밭은 수평적 구도를 이루면서도 대조적이다. 한데 일반적으로 노랑이 희망찬 의지를 나타내는 데 반해 이 그림은 어딘가 서늘하고 음울하다. 먹구름 낀 하늘에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질 듯하고, 당장이라도 시린 겨울이 옆구리를 쿡 찔러올 것만 같다. 고흐의 삶처럼 그가 사용한 샛노란 물감에는 햇빛을 피해간 그림자의 기운이 강하게 감지된다.
빨강, 불처럼 일렁이는
빨강은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다.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요리하게 해주는 ‘불’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힘, 전투, 피, 사랑, 정열, 욕망 등 빨강에는 수많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붉은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가을에는 마음이 괜히 간질간질해서 외로움도 곧잘 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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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가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도 낙엽수로 가득한 센강의 풍경을 기록했다. 특히 그가 애정을 가진 장소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르장퇴유인데, 센강을 길게 끼고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기 좋은 마을이다. 모네는 화구를 들고 강가로 나와 시간마다, 계절마다 변하는 센강의 모습을 담았다. 그중 가을을 주제로 그린 ‘아르장퇴유의 가을Autumn on the Seine, Argenteuil’은 낙엽이 만발한 풍경이 인상적인 명화다. 수평으로 나뉜 화면에서 하늘과 강은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모네는 물가에 비친 나무를 과감하게 묘사하면서 그 경계를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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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아를의 알샹 레인’.
조용한 하늘과 강이 중심이 되어 자칫 지루할 뻔한 구도에 화염 같은 가을 나무가 캔버스를 집어삼킬 듯 나타나 눈을 사로잡는다. 빨강이 부린 묘술에 하얀 구름은 모락모락 물들고, 붉은 물방울은 바다까지 흘러 내려간다.

가을은 소리까지 즐겁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거리를 산책하면 선선한 바람, 청량한 공기, 알록달록한 볼거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폴고갱Paul Gauguin의 ‘아를의 알샹 레인Lane at Alchamps, Arles’은 절정에 이른 만추를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가장 먼저 화면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사선의 거리와 가운데 자리를 탄탄히 잡은 나무에 관심이 쏠리고, 그 뒤로 납작하게 표현한 집과 바위가 뒤따라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가을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인상과 다르게 이 그림은 하나씩 살펴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단순하게 처리한 건물, 밋밋한 하늘, 볼륨 없는 나무 둥치, 뭉개진 붓처리까지, 고갱은 의도적으로 세필 묘사를 비껴가면서 가을의 멋을 더욱 생동감 넘치게 되살렸다. 가지 끝에 매달린 처연한 빨강, 지상으로 떨어지는 유한한 빨강, 바람에 휩쓸려가는 풍류의 빨강, 선명하고 흐리고 매섭고 부드러운 빨강의 스펙트럼….

강처럼 넘실대는 붉은 낙엽의 향연은 거칠고 평평한 세부 처리를 무시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흑백이었다면 전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을 시골 어귀가 펄럭이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리에게 색채의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갈색, 고독을 닮은 나무
세상에 갈색은 무수히 많고, 갈색의 이름은 한없이 적다. 나무, 흙, 식물 줄기, 동물의 털까지 갈색은 많은 곳에 퍼져 있지만, 다른 색에 비해 불리는 명칭은 적은 편이다. 한 색채 전문가는 이러한 현상을 갈색이 붉은색부터 검은색까지 포괄할 정도로 범위가 넓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도 유독 갈색이 빛나는 시간이다. 갈색 땅에서 자란 갈색 나무가 갈색줄기를 뻗어 잎사귀를 내고, 시간이 흘러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해 다시 갈색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무에는 한 계절을 넘어 생명의 순환이 통째로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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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자작나무’.
모두가 가을의 찬란한 원색에 매료될 때 고적한 나무에 다가가는 화가도 있다. 먼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자작나무The Birch Wood’는 깊은 숲속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근경의 나무를 담았다. 아니, 길을 잃었다고 표현할 만큼 복잡하고 어지러운 풍경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풍이 특징인 클림트에게 가을 산은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맴도는 걸까. ‘자작나무’에서는 그가 곧잘 그린 팜 파탈처럼 매혹적이지만 죽음으로 치닫는 충동까지도 느껴진다.

아마 클림트에게 가을은 깊은 내면의 정서가 심화하는 계절이었을 터. 마른 낙엽 틈으로 꼿꼿이 허리를 세운 자작나무들은 그의 대표작 ‘키스’의 연인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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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가을 나무들’.
클림트의 ‘자작나무’에서 화가와 나무, 나무와 나무의 애틋한 교감이 느껴진다면,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가을 나무들Autumn Trees’에 먼발치에서 바라본 원경의 나무를 담았다. 하늘에는 몇 겹의 노을이 노인의 주름살처럼 접혀 있고, 나무가 자란 대지는 흡사 마른 인간의 벌거벗은 신체 같다. 그런데 나뭇잎이 풍성한 세 그루의 나무와 달리 두 번째 나무는 혼자서만 처량하다. 앙상한 가지가 풍파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무는 화가의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평생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추적하다 결국 서른도 되기 전 아내와 배 속의 아기를 잃고 세상을 떠난 실레. 그에게 삶은 겨울도 오기 전에 나뭇잎을 몽땅 잃어버린 가을 나무와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나무가 뿌리 내린 땅은 사막처럼 황량하고 쓸쓸하다. 누군가 짙게 물든 단풍으로 파라다이스를 만끽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혹독한 겨울 앞에서 마음 먼저 벌벌 떠는 계절. 가을의 색은 로맨틱하면서도 멜랑콜리하고, 고독하지만 온기를 찾아 나서기에 마냥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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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아트인컬처>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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