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TREND
2022. 08. 30
미술계에 부는
훈풍
이건희 컬렉션부터 아트 테크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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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라고 인식해온 미술품 시장이 대중화되고 있다. 2020년 별세한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소장품 수만 점, 일명 ‘故 이건희 컬렉션’에 많은 이가 열광했다. 왜일까? 일상 속으로 들어온 미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삶의 여유와 균형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미술계에 자리 잡은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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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두 차례나 기간을 연장한 전시의 누적 관람객 수는 총 24만8,704명을 기록했다.
2022년 6월 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이 11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두 차례나 기간을 연장한 전시의 누적 관람객 수는 총 24만8,704명을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총 2만3,181점이나 기증할 만큼 방대한 컬렉션과 선사시대 유물부터 동시대 작가의 작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한 명작을 소장해온 그의 미술품에 대한 사랑은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베일에 싸여 있었던 이건희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도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1년은 미술계에서는 상징적인 한 해였다. 이건희 컬렉션 공개 외에도 미술 시장의 폭발적 팽창, 온라인 시장의 성장, 새로운 컬렉터 집단의 등장 등 유례없이 많은 이슈를 생산해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거치던 미술계의 새로운 시도와 전 세계적 양적 완화 정책, 강화된 국내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새로운 투자자산 물색, 보복 소비 등의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도 본다.
개인이 일으킨 나비 효과
예전부터 많은 경제학자가 미술, 음악, 공연 등을 아우르는 예술의 생산과 소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현재 개인의 예술 소비 증가가 곧 미래의 예술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에 기인한다. 첫 번째는 예술을 경험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 두 번째는 예술 분야가 익숙해진 만큼 더 많이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 활동에서 ‘한 번’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 대한 뜨거운 인기와 관심은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과 SNS를 이용한 비대면 관객 증가, 미술 애호가 셀러브리티의 팬덤 유입, 여러 종류의 미술 관련 플랫폼은 일반 대중에게 ‘한 번’의 미술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미술 시장은 아트 페어 같은 대형 예술 행사를 중심으로 디지털화가 이루어졌다. 경매 회사는 온라인 경매 횟수를 늘리고, 갤러리와 아트 페어는 OVROnline Viewing Room, 온라인 전시을 운영하면서 비대면 관객을 모으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온라인으로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기엔 부족하지만, 물리적 제한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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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RM이나 빅뱅의 태양과 같은 유명 컬렉터가 미술관과 전시장을 방문하고, 자신의 SNS 등에 공유하는 것도 미술 시장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오프라인 행사에 관심을 갖고, 행사에 참여하게 되며, 실제 작품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BTS의 RM, 빅뱅의 태양 같은 유명 컬렉터 또한 미술관과 전시장을 꾸준히 방문하며 미술 시장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전시 관람이나 작품 구매 같은 예술 관련 행위를 공유하면서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관심 증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방문지는 그 팬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고, 컬렉션을 숨기기보다 대중과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자연스레 예술 산업 저변을 확대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우리 예술 산업을 컬렉터 커뮤니티 중심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팬덤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는 미술이 대중화를 넘어 일상 안으로 들어오게 된 주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혜성처럼 등장한 MZ세대와 미술 시장의 변화
2020년 이후 미술 시장에서 보이는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단순 관람객의 증가다.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실제로 아트 페어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두 번째는 실제로 작품을 구매하는 구매자의 증가다. 이는 곧 미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신규투자자의 등장을 뜻한다. 이 새로운 투자자 중 다수가 MZ세대로, 미술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미술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MZ세대는 미술품을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회계 법인 딜로이트Deloitte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35세 미만의 미술품 구매자 중 64%가 투자 수익이 가장 중요한 구매 요인이라고 답한 데 비해 35세 이상 구매자는 이 비중이 30%에 그쳤다. 젊은 투자자에게 미술품은 자신의 취향을 투영함과 동시에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성향의 구매자로 인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을 구매할 만한 자금의 여유는 없지만 미술품에 투자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미술품 공동 구매 또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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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Readers’(2021).
이에 따라 미술 시장 관계자와 기업은 새로운 소비자로 나선 MZ세대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판화 시장이다. 판화는 원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고, 접근성이 좋으므로 미술 시장에 새로 진입한 사람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 미술 시장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장르별 작품 거래 비중에서 판화는 화랑 7.8%, 경매 10.8%로 전년 대비 각각 3.4%, 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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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태의 ‘Banana Milk’(2020).
선호하는 작품 경향 또한 달라졌다. MZ 컬렉터는 또래 작가가 작업한 동시대 감각의 작품을 선호한다. 김선우, 문형태, 우국원 같은 작가들은 이미 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MZ세대가 관심을 보이는 작품은 대체로 직관적이고, 무엇을 그렸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구상화다. 이들에게는 이미 국내 미술 시장의 성장을 이끈 단색화 같은 추상화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작품 가격이 비싸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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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원의 ‘Stephen Dedalus’(2021).
마지막으로 살펴볼 MZ 컬렉터의 특징은 자신들이 구매한 미술품을 SNS 등을 통해 공개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MZ 컬렉터의 이러한 문화는 스스로 자신이 속한 세대를 미술 시장에 새롭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또 이들이 미술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故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유명 컬렉터를 선망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국 미술 시장이 지난해 거래액 9,000억 원을 돌파했다. 문제는 당장의 투자 수익에만 관심을 가진 단기투자자가 급속도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단기로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만 미술품을 보는 시선은 아쉽다. 미술품의 본질적 가치는 ‘미적 향유’에 있기 때문이다.

미적 향유를 위해서는 ‘이 작품을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일까?’, ‘나는 이 작가 또는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이 좋은가’를 먼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문화는 그를 향유하는 주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소비자가 미술 시장과 작품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미술 시장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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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지예(아트파이낸스그룹 데이터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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