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처음 등장하고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미래의 모습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와 불안은 늘 함께였다. 인공지능을 인간의 대척점에 두고 경쟁 구도로 삼는다면 분명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를 삶의 반경 안에 두고 공존하는 대상으로 본다면 어떨까? 기술의 진화와 맞물려 삶의 질은 높아지고, 상상 이상의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술 진화의 시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016년 바둑 AI ‘알파고’로 파란을 일으킨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가 지난 5월 AGI ‘프로젝트 아스트라’를 발표하면서
‘일반 AIAGI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에 앞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5년 후 AGI의 현실화를 장담했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당장 내년으로 시기를 앞당겼다.
모든 면에서 인간을 초월하거나 유사한 능력을 보이는 인공지능AI을 지칭하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의 도래를 당장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우리 모두는 큰 파고를 넘는 초대형 유람선 안에 있다. 거대한 배 위에서는 웬만한 파도나 유속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가 구글 AI 에이전트 ‘프로젝트 아스트라’를 발표하면서 AGI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Google
챗GPT를 만든 오픈AI나 클로드, 라마,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를 만들어낸 앤트로픽, 메타, 구글 등 초대형 IT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에 돌입해 막대한 자금력을 쏟아부으면서 AI의 능력을 키우고 있다. 생성형 AI의 성능과 지능 수준을 결정하는 계산 능력Compute이 GPT-3에서
GPT-4o로 진화한 지난 2년여 동안 약 1,000배로 증가했다. 이 추세를 따라가면 2028년에는 현재보다 1만 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여기에 알고리즘 개선에 따른 성능 증가까지 합치면 10만 배 정도 지능이 높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쉽게 말해 GPT-3에서 GPT-4로의 발전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 지능 수준으로의 변화라고 본다면, 여기서 10만 배의 발전은 고등학생에서 아인슈타인 수준으로의 지능 향상 이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급격히 늘어난 논문 발간 수만 봐도 알 수 있는데, 2023년도 <네이처>지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으로 학문 분야에서 1년에 나오는 논문량이 하루 만에 발간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AI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해 인류에 미칠 영향력은 초특급 태풍에 비견된다. 오픈AI가 초기 버전의 인공지능을 발표했을 때 인간의 창의성이 필요한 미술·문학·음악 등 예술 분야는 기술이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그 전망은 이미 초기화됐다. 지금은 예술 영역에서 활약하는 AI의 작품과 그 저작권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3월 미국 국무부에서 AI 정책 컨설팅업체에 의뢰한 연구 보고서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보고서는 지난해 생성형 AI 붐이 일어난 후 제기된 ‘AI 종말론’을 담았다. “가장 발전한 AI 시스템이 최악의 경우 인류멸종 수준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오픈AI가 GPT-4o포오를 발표한 직후 오픈AI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도 AI의 통제 불능 상황을 지적한 바 있다.
1. AI 정책 조언 등을 제공하는 민간 업체 글래드스톤 AI가 3월에 발표한 최첨단 AI 안전 및 보안 강화를 위한 실행 계획 보고서
2. 유럽연합(EU)은 올해 세계 최초의 AI 규제 법안인 EU 인공지능법(AI Act)을 통과시켰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태풍급 기술 변화에 인간 실존에 대한 위기와 불안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AI가 AI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일자리를 AI가 모두 대체할 수 있다면? 인간이 기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미 가시거리에 들어와 있는 위기지만 체감할 정도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고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런 이야기가 SF 영화처럼 비현실적 흥밋거리 정도로 들리기 때문에 바쁜 일상에서 관심을 갖기 어렵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비록 위기감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어도 초고속으로 진화하는 AI 기술에 현기증이 나면서 그저 외면하고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과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 유연한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타협하고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 유연한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타협하고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 인간의 추종을 불허하는 AI 기술은 계속 탄생할 것이다. 이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간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여러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고 융합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즉 새로운 문제를 발견 할 수 있는 곳에서 인간의 고유성이 빛을 발한다. 이미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AI가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정보를 취합하고 가공하는 일은 인간의 힘을 거치지 않고 기술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5월 오픈AI는 최고기술책임자(CTO) 미라 무라티(왼쪽), 멀티모달 연구책임자 마크 첸(가운데)이 참석한 가운데 음성 업그레이드 버전 GPT-4o 의 다양한 기능을 시연했다. ©오픈AI
그럼에도 기술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인간의 고유한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AI 사고’의 특이성을 이해해 공존 전략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인간의 욕망과 의도는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면서 역사 속에 축적되어 거대하게는 인류 문명을 이끌어왔다. 인간의 의식은 경험 체화 능력을 발전시켰고 창의성으로 연결됐으며, 공감 능력과 메타 인지 능력을 키웠다. 생물학적 존재만 가질 수 있는 느낌은 욕망뿐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은 AI가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보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다움을 더욱 추구해 AI와 차별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AI와의 공존 관계를 설정하는 데 휴머니즘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 이에 AGI 시대의 생존은 통섭적 사고와 인간다움의 강화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