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6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이야기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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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고객의 작품사진.

가족 중의 으뜸은 어머니다. 세상 사람들 중 99.9%는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느라 어머니에게 으뜸 대접을 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속 어머니가 자리한 순위는 변할 수 없다. 어머니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Ⅰ. 아들아, 오늘 하루만 더
“메아리는 왜 생기지?” 오래전 엄마가 아들에게 물었다.
“소리라는 게 끝났다고 툭 끊어버리고 사라질 수 없지. 그 끈질김이 메아리로 남아 서성거리지.”
그게 엄마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정답이었다.

“메아리는 언제 들을 수 있어?” 아들이 물었다.
“조용하고 다른 모든 소리가 흡수된 후에야 들리지.” 엄마의 대답.

찰리 베네토라는 사내가 있다. 한때 월드 시리즈에 나갈 만큼 잘나가던 프로 야구 선수. 그러나 그의 인생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술로 망가지고 후회로 일그러진 인생. 직업도 잃고, 그는 가족에게서도 떠나버린다. 하나뿐인 딸마저 아빠에게 결혼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안 아빠는 더 이상 살아갈 기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는 한밤중에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 죽기 위해서.
그는 고향 마을 저수 탱크에 올라간다. 미국 시골 마을에서는 저수 탱크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리고 뛰어내린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눈을 뜬 그에게 엄마가 손을 내민다. 그는 엄마를 따라 어릴 때 살던 집으로 간다. 엄마는 우선 아들의 상처를 닦아주고 아침을 해준다. 그리고 말한다. “아들아, 오늘 하루 엄마와 보낼 수 있겠니?”
그리고 만 하루를 엄마와 함께 보낸다. 엄마와 함께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고, 호숫가에 가서 산책도 한다. 오후에는 명이 다한 동네 할머니 집에도 같이 간다. 미용사인 엄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 할머니를 새색시처럼 꾸며준다.
찰리 베네토의 어머니는 이미 8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다. 상처투성이 아들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하루만 이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엄마의 존재는 메아리 같은 것. 엄마의 목숨은 다했지만 이승에 남은 아들이 안타까워 메아리처럼 끈질기게 남아 있는 존재.
〈For One More Day〉라는 미치 앨봄Mitch Albom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하루라도 온전히 엄마와 보낸 적이 있습니까?
Ⅱ. 아들아, 이런 편지라도
Bo는 캘리포니아 남쪽 오렌지카운티에서 자란 중국인 3세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모국이 중국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려서는 젓가락질이 비능률적이라고 생각해 포크로만 밥을 먹던, 철저히 미국인답게 살고 싶어 하던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그런데 운명인지 청년이 되어서는 홍콩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 같이 살던 연인이 죽는다. 그 후로는 오렌지카운티 집과도 거의 연락을 끊는다.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 에스터Esther는 막내아들 소식이 궁금하고 걱정되어 안달이 났다. 그래서 아직도 멀쩡한 자신이 죽어간다고 편지도 해보지만, 아들은 마지못해 가끔씩 연락을 할 뿐이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런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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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이런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아들은 ‘예’, ‘아니요’를 표시해서 엄마에게 보낸다. 엄마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연락하는 것을 고마워한다. 엄마는 아들이 더 자주 편지를 써주기 바라지만 잔소리해서 아들을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하지만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은 듣고 싶다.
그래서 엄마는 이런 양식의 편지를 만들어 우표를 붙이고 돌아올 주소까지 적은 봉투를 넣어서 편지를 보낸다. 아들은 편지 쓸 필요도 없고 따로 우표를 살 필요도 없다. 그냥 해당 칸에 표시만 하면 된다.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8년 동안 편지 아닌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아들은 사라진다. 엄마에게 그 편지마저 보내지 않는다. 엄마는 편지의 마지막 라인을 생각하고 걱정을 한다. 평생 걱정을 한다.
엄마에게 최소한 ‘빈 칸 채우기’ 편지라도 보내는 자식의 게으른 효도만으로도 엄마는 감지덕지한다. 막내아들에게서 엄마가 받을 수 있는 것이 X 표시뿐이라면, 그것만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아들의 잉크’, 그것이 엄마 마음속에는 진주가 녹은 눈물같이 귀하다.
<A Long Stay in a Distant Land>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츠어츠엉Chieh Chieng의 데뷔작이다.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라도 써보셨나요?
Ⅲ. 엄마도 한 여자로서 엄마 아닌 인생이 있다
딸 니키Nikki는 생각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는 빈집에서 홀로 용감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도회에는 아직 음악이 흐르는데, 댄스 파트너가 혼자 놔두고 가버려 홀로 남겨진 안쓰러운 무희처럼.’ 4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들여 왁자지껄 파티 하기를 좋아하는 엄마.
어머니의 날 엄마는 니키와 언니 클레어까지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해 먹인다. 그게 마지막이다. 이틀 뒤 엄마가 집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다.
“엄마, 엄마는 내가 아냐. 나도 엄마가 아냐. 내가 엄마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데. 하나님에게 감사해야지.” 엄마가 살아생전 니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마지막 말, 두고두고 가슴 아픈 말. 마지막 만남, 마지막인 줄 모르고 지나간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This is my story of missing my mom.) 사연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느 날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요.”
니키는 돌아가신 엄마의 집과 짐을 정리하며 엄마가 아닌 그웬 이턴Gwen Eaton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 역정을 발견한다. 엄마의 학창 시절, 엄마가 결혼까지 약속했던 남자 이야기, 아버지와의 불화•••. 평범한 인간이 다 겪는 일이다. 그래도 엄마가 그런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철이 들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발견한다. 엄마의 엄마로서의 생활이 아니고, 한 여인으로서 엄마의 삶에서 니키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Joyce Carol Oats의 〈Missing Mom〉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Ⅳ.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커다란 황금빛 노루가 집 안으로 뛰어들었지. 그 노루 배 속에서 붓과 책이 나왔어. 너무 귀한 것들이라서 골방 장롱 속에 넣어두었지.” 엄마는 이런 꿈을 꾸고 나를 잉태하셨단다. 이제 아흔 가까이 된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하신다. 그때 그 꿈속에서 붓과 책을 골방에 놓아두어서, 내가 이승에서 더 크게 출세하지 못했다고. “그때 내가 그 붓과 책을 탁 트인 마루로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라며 엄마는 아직도 아쉬워하신다. 마치 당신 꿈 탓에 아들 인생의 무대가 좁아지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이제 걱정 놓으세요. 아들은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엄마 말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안아준 사람은 없다. 이 생에서 인연이 다할 때까지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도 엄마다.
우리는 엄마 생각을 얼마나 하나요?
김지영
변호사이자 수필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 헤이스팅스 법과 대학 법학 박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경영대학 박사 과정 수료. 〈더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 기자.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KYM & KANG 법률 사무소 개업. 저서로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 〈신나게 웃고 생생하게 배우는 영어〉, 〈시민과 대통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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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인문
글/사진. 김지영 고객 미래에셋대우 LA현지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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