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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21
랜선으로 떠나는 예술 여행,
글로벌 뮤지엄 산책
새로운 예술 스폿 4, 신축 뮤지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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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개관을 여러 차례 연기했던 글로벌 신축 뮤지엄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완공은 진작 됐으나, 하반기 오픈하는 곳도 여럿이다.
신축 뮤지엄들은 특화된 콘텐츠와 혁신적 디자인으로 무장하고 닻을 올리고 있다.
올해 또는 향후 1~2년 이내에 문을 여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어디일까?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몰리기 전에 미리 둘러볼 글로벌 예술 스폿을 소개한다.
뭉크 미술관, 단일 작가 세계 최대 규모 뮤지엄
붉게 휘몰아치는 석양 아래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는 인물을 그린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절규’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수만 점이나 남겼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작가 뭉크의 새 미술관Munch Museum이 오는 10월 22일 오슬로 수변 지구에서 문을 연다. 대표작 ‘절규’, ‘마돈나’ 외에도 전 시기의 주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뮤지엄이다. 뭉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고, 열네 살 때 누나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서른 즈음에는 아버지마저 자살하는 바람에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주위에 그를 격려하며 작품도 사주곤 하던 지인들이 있어 창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자식이 없었던 뭉크는 죽기 전에 자신이 보관해온 작품과 편지, 붓, 팔레트 등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이에 시는 미술관 건축 공모를 거쳐 개발이 덜 된 퇴위엔지구에 뮤지엄을 건립했다. 그러나 2만8,000점에 이르는 소장품과 자료를 전시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한 데다 대표작들을 두 차례나 도난당한 적이 있어 새미술관 건립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비요르비카 지역에 13층에 달하는 뮤지엄을 지난해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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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술관은 공간의 절반 이상을 뭉크의 작품으로 채울 예정이다.
코로나19로 개관이 계속 미뤄지다가 올가을 마침내 문을 열게 됐다. 뭉크 미술관이 개관하면 단일 작가 이름을 내건 미술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새 미술관에는 뭉크의 친구이자 컬렉터였던 롤프 스테비르센이 기증한 작품도 전시된다. 스테비르센은 뭉크뿐 아니라 피카소, 클레 같은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컬렉팅해 유럽 모더니즘의 흐름을 보여주는 컬렉션을 일궜다. 미술관 측은 영국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특별전을 개관 기념으로 선보인다.
부르스 드 커머스 피노컬렉션,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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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건물이 아름다우면서도 쓸모 있게 탈바꿈한 부르스 드 커머스 피노 컬렉션의 외관.
올해 가장 먼저 가봐야 할 새 뮤지엄을 꼽으라면 단연 파리의 ‘부르스 드 커머스-피노 컬렉션’이다. 이름이 좀 어려운데, 부르스 드 커머스Bourse de Commerce는 상업거래소라는 뜻으로 18세기 이래 곡물 저장소, 상품 교환소를 거쳐 증권거래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1767년 파리에 세워진 이 웅장한 원형 건축물을 눈여겨본 사람은 구찌,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명품 그룹 케링의 창업주 프랑수아 피노 회장(85)이다. 그는 명품 업계 라이벌인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72)이 파리 불로뉴 숲에 유리 범선 모양의 럭셔리한 미술관인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을 세워 엄청난 호응을 얻자 “미술에 대한 식견과 아트 컬렉션에선 내가 한 수 위” 라며 칼을 갈았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최고의 현대미술관을 지어 아르노를 보란 듯 제압하겠 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노 회장은 이미 베네치아에 미술관을 2개나 보유 중이다. 그는 지난 1999년 파리 세갱섬의 르노 자동차 옛 공장 용지에 미술관을 지어 3,000점에 달하는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겠다며 시를 설득했다. 그러나 파리시가 환경 단체의 반대에 밀려 행정 처리를 끝없이 미루자 이탈리아로 기수를 돌렸고, 베네치아에 2006년과 2009년 미술관을 연달아 개관했다.

이들 뮤지엄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 그가 20년 전 못이룬 ‘고국 땅에 미술관 건립’의 꿈을 재가동한 것은 2015년. 그사이 자신의 컬렉션이 1만여 점으로 늘기도 했고, 마지막 소망을 기필코 이뤄 파리의 예술적 위상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였다.

세계 1위의 미술품 경매 회사 크리스티의 오너이기도 한 피노는 거대한 원형 돔(큐폴라)과 24개의 아치로 이뤄진 18세기 건축물을 파리시로부터 50년간 장기 임대했다. 임대료는 200억원(사용료 별도). 50년이지나면 건물은 시로 자동 귀속된다. 피노는 이미 베네치아에서 옛 건물을 멋지게 레노베이션했던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에게 이번 일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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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40m에 달하는 뻥 뚫린 원형 공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인 부르스 드 커머스 피노 컬렉션.
안도는 직경 40m에 달하는 부르스 드 커머스의 뻥 뚫린 공간에 직경 32m, 높이 9m의 원형 콘크리트 실린더를 설치해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지하 2층, 지상 4층에 연면적 1만㎡ 3,025평의 초대형 미술관은 유리 돔 밑의 로툰다 전시장과 10개의 전시장, 284석의 공연장, 최고급 레스토랑을 갖추었다. 공사는 사업비만 2,200억원을 투입했고, 작품 평가액까지 합치면 1조원이 훌쩍 넘는다. 개관은 세 차례의 연기 끝에 지난 5월 22일 열림>라는 개막전과 함께 단행했다. 13개 전시가 지하와 지상 1~2층에 다채롭게 구현됐다.

피노가 발굴해 재평가 작업이 활발한 마르시알 레스를 비롯해 마우리치오 카텔란·리처드 프린스·신디 셔먼·우르스 피셔 등의 회화·조각·사진·설치미술을 선보였는데, 국제 비엔날레에 버금갈 만한 규모와 수준이란 평이 모였다.

피노 회장은 “동시대 예술에 대한 나의 열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최고의 치료제다”라고 밝혔다. ‘혁신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개관전의 입장료는 14유로. 부르스 드 커머스는 루브르박물관, 오페라하우스가 10~15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 아르노회장의 루이비통 파운데이션도 30분이면 당도할 수 있어 비교 감상이 가능하다. 피노 회장이 미술관을 세우려 했던 세갱섬에는 ‘센 뮤지컬’이란 복합 문화 공간이 건립됐으니 함께 둘러봄 직하다.
칼로스트 굴벵키앙 뮤지엄, 전 지구의 역사·문화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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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트 굴벵키앙 뮤지엄은 직사각형의 건물 앞에 차양막형 캐노피를 설치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명칭부터 독특한 이 미술관은 한국인에겐 생소한 곳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소장품의 수준과 규모가 압도적이다.

리스본에 위치한 칼로스트 굴벵키앙 뮤지엄Carlouste Gulbenkian. 설립자인 칼로스트 사키스 굴벵키앙1869~1955은 아르메니아 출신의 석유 재벌이자 아트 컬렉터다. 그는 20세기 초 국제 협상을 중재하며 이라크 지역의 대형 유전을 확보했고, 거대 기업을 일궜다. 평생 세계 각국을 누비며 동서양을 하나로 묶는 6,000여 점의 독특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그리스·로마 문화재를 비롯해 중앙아시아·동아시아·유럽·메소포타미아·이슬람 예술 작품을 폭넓게 수집했다.

따라서 굴벵키앙 뮤지엄은 전 지구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해볼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현장이다. 이 미술관은 최근 새로운 뮤지엄을 완공하고 내년 초 문을 연다. 건축은 일본 출신의 구마 겐고가 맡았으며, 직사각형의 반듯한 건물 앞에 엄청난 크기의 차양막형 캐노피를 설치해 장관을 연출한다. 거대한 새 뮤지엄이 추가되면 리스본의 칼로스트 굴벵키앙은 스페인의 프라도 못지않게 많은 여행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LA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후보작·수상작을 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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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은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했으며, 약 2만8,000㎡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이 여러 차례 개관을 연기한 끝에 올 9월 관람객을 맞는다.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10년 전 영화 박물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전 세계 기업과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을 대상으로 기금을 모금했다. 올봄까지 3억8,0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중간에 실적이 부진해 난관에 봉착했지만, 드림워크스 출신의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게펜이 거액을 투척했고 톰 행크스 등의 유명 배우가 동참하며 목표액을 달성했다.

로스앤젤레스 중심부 윌셔 대로에 위치한 이곳은 2만8,000㎡의 너른 부지에 전시 공간은 4,600㎡에 달한다. 건축은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맡았고, 극장과 전시 홀 2개 동으로 나뉘었다. 2개의 극장 중 대극장의 이름은 ‘데이비드 게펜 극장’이다. 게펜이 거금을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 극장에서는 아카데미 후보작이나 수상작을 상영한다. 극장동 5층에는 ‘돌비 패밀리 테라스’가 있다. 1,500개의 유리판을 붙여 만든 대형 돔과 테라스는 돌비사가 후원해 만들었다. 이 테라스에서는 할리우드 사인이 자리 잡은 할리우드 마운틴뿐 아니라 서쪽으로 베벌리힐스, 동쪽으로 다운타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전시동은 1990년대까지 백화점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재활용했다. 건물 중앙에는 24K의 타일 3만5,000개를 조밀하게 붙여 사시사철 도도한 황금빛을 뿜어낸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확 트인 공간이 마치 영화 스튜디오에 온 듯하다. 로비 한쪽에는 스필버그 패밀리 갤러리와 기념품 가게, 카페가 들어선다. 2~3층은 아카데미 측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영화 관련 소장품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으로 조성한다. “와, 영화에서 봤던 거잖아”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될 각양각색의 영화 오브제와 촬영 아이템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로써 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뿐 아니라 90여의 년의 아카데미사를 되돌아볼 수 있다.

4층은 기획 전시실이다. 첫 전시로 세계적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고전이 예정되어 있다. 콘셉트 스케치와 캐릭터 디자인 등 영화 제작 전반이 공개된다. 전시동 지하에는 288석 규모의 소극장이 조성됐는데,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등 대표작 10편이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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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영란(뉴스핌 편집위원, <슈퍼컬렉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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