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꽃을 사랑한다. 맞는 말일까? 꽃이 회화의 단골 주연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이후다. 하지만 꽃이라는 생물 본연을 탐미하기보다 꽃 같은 무언가를 은유하는 목적으로 주로 쓰였다.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 꽃처럼 향기로운 청춘, 꽃처럼 금세 시드는 삶의 허무함, 꽃처럼 변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
화가는 꽃을 그리면서 경탄하고(“불그스름한 꽃봉오리가 수줍은 소녀의 뺨과 같구나!”), 탄식했다(“어제는 피고 오늘은 지는 꽃송이여, 너는 우리네 인생과 판박이구려. 흘흘”). 다시 말해 화가는 ‘꽃으로’ 사랑했다.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라면 국내에서 이인성, 해외에서 반 고흐가 금방 떠오르지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도 해바라기 핀 정원을 화폭에 담았다. 꽃 한 송이가 애처롭게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Sunflower’(1907). 그의 명작 ‘키스’에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열정적으로 입맞춤하는 인물을 닮은 듯한. 그래서일까, 해바라기는 혼자여도 적어 보이지 않고, 시들어가면서도 내면의 힘이 넘친다. 샛노란 고집과 결기로 하늘까지 손을 뻗었다가 관능적인 태양 빛에 흠뻑 취해 흙으로 돌아가는 자태는 한여름의 뜨거운 사랑을 연상시킨다.
한편 정사각은 가로와 세로가 딱 맞아떨어지지만, 화면 비율로서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인간의 눈에는 정사각보다 편안한 구도가 직사각이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훑는 흐름이 균형 감각을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클림트의 ‘해바라기’와 ‘키스’는 모두 진흙을 걷어내고 피어난 찬란한 꽃 같다. 불안한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황홀한 결실을 맺은 존재들에 우리는 기꺼이 흔들리고 유혹당한다.
클림트의 꽃에 인간이 숨어 있다면,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1887~1914는 ‘목욕하는 소녀들Bathing Girls with Town in the Background’(1913)에 꽃씨를 심었다. 마케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전선에서 27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10년의 짧은 활동 기간 동안 표현주의·미래주의·인상주의·야수파·입체파·청기사파 등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했다. 사망 2년 전 마지막으로 흠모한 유파는 오르피즘Orphism. 쉽게 말해 색채의 다이내믹한 힘으로 캔버스에 음악을 창조하는 양식이다.
구체적 형상에서 멀어져 순수한 색의 형태로 시각적 리듬과 운율을 조성하는 예술실험. ‘목욕하는 소녀들’도 소녀들이 숲에서 발가벗고 있는 장면에서 출발했겠지만, 그 결과는 현실 재현에서 벗어나 색면의 감각적 재배치로 완성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고동색 나무껍질의 견고함, 싱싱한 나뭇잎의 초록 곡선, 인간 피부의 명암과 단단한 근육이다. 즉 클림트가 꽃에 인간론을 투영한다면, 마케는 인간에서 출발해 자연물의 색과 형태에 주력한다.
화가는 꽃을 사랑한다.
하지만 꽃이라는 생물 본연을 탐미하기보다
꽃 같은 무언가를 은유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 꽃처럼 향기로운 청춘,
꽃처럼 금세 시드는 삶의 허무함, 꽃처럼 변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
화가는 꽃을 그리면서 경탄하고 탄식했다.
다시 말해 화가는 ‘꽃으로’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