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TREND
2022. 09. 06
그때 그 시절
안녕?
레트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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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싸이월드가 부활했다. 싸이월드만이 아니다. 1990년대 인기 스타를 소환한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추억의 만화 캐릭터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오픈 런까지 감행한다. 이미 지나간 것에 우리는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추억을 좇는 사람들, 그들의 속마음에 대하여.
레트로, 열풍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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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재오픈의 주역은 싸이월드의 추억을 간직한 어른이다.
싸이월드Cyworld 재오픈의 주역은 다름 아닌 어른이다. 싸이월드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이제 중년이거나 중년을 앞둔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의 줄기찬 요구가 싸이월드를 다시 현재로 소환했다. ‘포켓몬 빵 스티커 모으기’ 열풍의 중심에도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스티커가 뭐길래 출근길과 등굣길에 마트나 편의점을 순회하며 오픈 런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

과거를 추억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돌아가려고 하는 흐름을 우리는 ‘복고주의’라 하며, 지금은 ‘레트로Retro’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의 뉴트로Newtro, 힙Hip과 레트로를 조합한 힙트로Hiptro, 빈티지 열풍을 담은 빈트로Vintro 등 새로운 개념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레트로 유행의 시작은 2006년이다. 1980~1990년대 가요가 흐르는 레트로 콘셉트의 술집 ‘밤과 음악 사이’가 한남동에 처음 문을 연 게 이즈음이다. 오픈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며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전국에 20여 개 매장을 거느린, 연매출 200억 원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레트로의 열풍까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일부 연령층에만 국한된 그들만의 리그로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유행했다 금세 사라질 ‘추억 놀이’와 같은. 실제로도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공유하는 정도의 ‘친목형’으로 레트로가 소비되고 있었다.

레트로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며 ‘열풍’에 이른 건 2012년에 방송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이 세상에 나오고부터다. 유년시절 즐겨 듣던 노래와 눈에 익은 추억의 소품이 미디어를 타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성을 자극한 것. 흥행에 성공하자 작품의 주역들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노출되며 후속 편도 제작됐다. 입소문을 타고 연이은 흥행작이 탄생하자 문화 전반에 파생되는 콘텐츠도 많아졌다.

KBS는 ‘Again 가요톱 10: KBS KPOP Classic’이라는 공식 유튜브를 개설했는데, 현재 가입자 수가 무려 46만 명에 육박한다. 비록 그 시대를 추억할 거리는 없지만 미디어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유튜브, SNS 등 플랫폼을 통해 레트로와 가까워졌다. 세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소통도 가능해졌다. 레트로 열풍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자 이를 소비하는 주체 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레트로 자체를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는 요즘 세대는 공감을 넘어 폭넓게 확산시킨다. 그 당시 문화와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낯선 즐거움을 느끼고, 남들보다 희소한 레트로 아이템을 발굴하면서 희열을 만끽한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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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된 <디즈니 그림 명작>의 품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어른들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2019년에 화제가 된 아동 전집이 있다. 1982년 국내에서 처음 발행된 후 1997년 절판된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 명작>이다. <디즈니 그림 명작>을 보고 자란 부모 세대의 뜨거운 복간 요청으로 2019년 12월 복간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13년 만에 재판매한다는 소식에 그야말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980년대 감수성을 그대로 담고 총 60권으로 구성한 전집은 출간과 함께 완판되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아동 전집의 이러한 전례 없는 인기, 식지 않는 레트로 열풍은 노스탤지어Nostalgia에 기인한다. 이 전집의 주 구매층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어른들이다. 노스탤지어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 이면에는 늘 일상의 부대낌에 직면하는 어른들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팍팍한 현실이 노스탤지어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레트로는 과거의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싶은 인간의 심리도 반영한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이를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 하는데, 사람이 과거 일을 회상할 때 나쁜 일은 빨리 지우고 좋은 일만 기억하려는 기억 왜곡 현상을 일컫는다. 이런 인간의 심리 때문에 사람들은 레트로 아이템을 만날 때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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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건드린 많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
과거와 현재를 균형 있게 사는 법
옛 기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잘 편집되어 있어서다. 벽장에서 꺼낸 앨범에는 사진들이 날짜별 또는주제별로 잘 정리돼 있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찰나의 순간이다. 사진과 사진 사이에는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 기억은 우리가 경험한 모든 순간이 아니다. 앨범 속 사진처럼 중요한 인상과 결과만이 기억에 남고 과정에 있던 일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이를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 일 자체를 처리하고 받아들이기에 급급하다. 경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 일이 지난 다음 이야기하는 자아의 몫이다.

레트로는 다른 말로 즐거운 추억이며, 기억이다. 하지만 과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즐거움의 원천을 과거에서만 찾는 것은 결론적으로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오늘에 충실하기 어렵고, 충실하지 못한 오늘은 바람직한 내일을 그리기 힘들게 만든다. 내일은 언젠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언젠가 어제가 된다. 과거는 그렇게 쌓여서 만들어진다.

인생도 이와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매번 선택의 연속이다. 어느 한쪽을 고르는 순간 후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과거를 돌이켜 오늘 살아갈 힘과 즐거움을 얻으면 그만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후회와 미련도 퇴색할 테니. 추억을 아름답게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될 지금도 즐거운 일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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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는 레트로 열풍은 노스탤지어Nostalgia에 기인한다.
1997년에 절판된 후 2019년에 복간된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의 주 구매층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어른들이다.
노스탤지어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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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민(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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