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를 홀린 ‘K-문학’
올해 한국문학계에 낭보가 들려왔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천명관의 <고래>가 오른 것이다. 지난해 정보라의 <저주토끼>에 이어 한국 작품이 2년 연속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다. 비록 최종 수상엔 실패했으나, “끔찍하지만 사랑스럽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팬덤의 부상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
한국문학이 세계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미나리>, 그룹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외국 팬들의 관심이 한국문학에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학의 성공 요인으로 ‘신선함’을 꼽는 분석도 있다. 우리에게 평범하게 느껴지는 설정이 해외에서는 색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영국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고래>를 읽는 건 한국의 문학적‧역사적‧정서적 지형을 관통하는 광범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선 쉽게 접할 수 있는 설화를 기반으로 하는 <저주토끼>가 영미권에선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이 많아진 덕에 해외에서 더 많은 한국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문학 작품은 27개 언어로 번역됐다. 2012년 14개 언어로 번역된 데 비하면 10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주요 국가의 언어뿐 아니라 그리스어, 루마니아어, 보스니아어, 우크라이나어, 크로아티아어 같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언어로도 번역‧출간되고 있다.
특히 <고래>는 한국 출간 19년 만인 올해 1월 영국에서 출간됐고, 2020년 출간 후 한국 베스트셀러에 오른 판타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2021년 러시아어, 2022년에 독일어, 튀르키예어, 베트남어로 번역‧출간됐다. 이영도가 2003년 출간한 판타지 <눈물을 마시는 새>는 올해 1월 선인세 약 3억 원을 받고 유럽의 한 출판사에 판매돼 번역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이는 단일 국가에서 받은 한국 출판물 선인세 중 최고액이다.
이 같은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은 반갑지만 가요, 드라마 등 다른 문화 콘텐츠의 활약에 비해서는 아쉽다. 이 때문에 번역의 다양성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문학이 번역‧출간되는 나라가 여전히 영미권이나 아시아권에 편중된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번역의 품질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OTT라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 영화 및 드라마, 세계인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접할 수 있는 K-팝과 달리 해외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경로가 한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출판사, 일부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에이전시와 판권을 계약한 뒤 이뤄진다. 이들은 세계시장에서 활동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아 한국문학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한 실정이다.
소설 <파친코>는 드라마의 성공 이후 더욱 인기가 치솟았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된 뒤 원작 소설의 인기가 더욱 치솟은 것처럼 문학은 다른 콘텐츠의 원천 콘텐츠로서 핵심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도입기를 거쳐 성장기로 향하고 있는 만큼 한국문학을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경쟁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원천 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독서의 계절 가을, 올 가을에는 우리의 마음을 살찌울 다양한 장르의 한국문학을 만나보자.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변주도 좋지만, 책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정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친근한 플랫폼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