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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09
못난이 푸드의
대반전
푸드 리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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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모양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띤 못생긴 농산물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못난이 농산물 판매업체가 유니콘 기업이 됐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고물가 시대 속 가성비 소비를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친환경·가치 소비’를 원하는 소비 패턴이 맞물리며 점점 시장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식품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못난이 푸드의 매력은 무엇일까?
푸드 리퍼브의 탄생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무슨 상관이야?” “흉측한 오렌지? 예쁜 주스가 되는걸?”
웃음 나오는 이 도발적인 슬로건은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인터마르셰Intermarché’가 2014년 진행한 ‘이상한 농산물’ 캠페인 문구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산물 낭비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일이다. 인터마르셰는 못난이 농산물을 3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덕분에 한 달 만에 무려 1,300만 명의 고객이 마트에 다녀갔다.

울퉁불퉁한 모양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띤 못생긴 농산물의 재탄생. 이를 ‘푸드 리퍼브Food Refurb’라고 부른다. 음식Food과 재공급Refurbished의 합성어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으로 재가공하는 일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선 ‘식자재 새 활용’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프랑스 인터마르셰의 캠페인을 시작으로 푸드 리퍼브 움직임은 유럽·미국 등으로 확산했다.
못난이로 유니콘 반열에 오르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못난이 푸드의 반전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영국에는 버려질 뻔한 음식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이 있다.
셰프로 일했던 애덤 스미스는 영국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음식물이 버려지는 문제를 인식하고, 2013년 ‘리얼 정크 푸드 프로젝트Real Junk Food Project’를 시작했다. 슈퍼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지는 재료를 받아 매일 신선한 음식을 만든다. 누구나 이 레스토랑에 방문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내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덴마크에선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라벨·포장이 잘못돼 시중에 공급할 수 없는 상품을 받아 판매하는 슈퍼마켓도 있다. 2016년 등장한 ‘위푸드Wefood’의 이야기다. 여기선 같은 상품을 시중보다 30~50% 싸게 판매한다. 위푸드의 목표 역시 음식물 폐기 문제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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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리얼 정크 푸드 프로젝트’ 행사가 베를린에서 열렸다. ©Flickr
미국에선 못난이 농산물 판매업체가 유니콘 기업이 된 사례도 있었다. ‘미스피츠 마켓Misfits Market’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과일과 채소를 농가에서 받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8년 설립 이후 2년 만에 미국 전역 40만 가구에 식품 배송했고 1,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했다. 2021년엔 2억 달러(약 2,6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받아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스타트업 투자는 규모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창업 후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 등 가능성을 확인받았을 때는 시리즈 A(평균 10억~50억 원), 인력 충원 등으로 투자가 필요할 땐 시리즈 B(평균 50억~100억 원), 해외 진출 등 사업 확장이 크게 필요할 땐 시리즈 C(평균 100억~500억 원)를 투자받는다. 미국의 또 다른 못난이 농산물 유통 스타트업 ‘임퍼펙트 푸드Imperfect Foods’ 역시 2020년 7,200만 달러(약 1,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받았다. 임퍼펙트 푸드는 농산물부터 고기·생선까지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데, 지금까지 1억3,900만 파운드(약 6,300만kg)의 버려질 뻔한 음식을 구출했다.

한국 역시 푸드 리퍼브 시장이 커지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를 운영하는 캐비지는 서비스 출시 3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 23만 명, 누적 매출액 100억 원 성과를 냈다. 소비자 재구매율은 88%에 이른다.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3%나 늘었다. 오픈마켓 방식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못난이 마켓’은 2023년 1월 서비스를 출시한 뒤 1년 만에 매달 3만 명이 찾는 플랫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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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못난이 농산물 판매업체로 유니콘 기업이 된 미국의 ‘미스피츠 마켓’ ©Misfits Marke
2 국내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 ©어글리어스
ESG 가치를 찾으려는 문화 확산
푸드 리퍼브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는 달라진 소비 패턴에 있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소비 과정에서 ESG 가치를 찾으려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생긴 변화다. 실제로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20~60대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못난이 농산물 구매 실태 및 인식’을 보면, 응답자의 60.5%가 못난이 농산물 구매 경험이 있다고 했다. 구매 이유를 살펴보면 46.4%가 저렴한 가격을 꼽았고, 28.4%가 큰 차이 없는 품질이라고 답했다. 음식물 폐기물을 줄이는 등 착한 소비를 위해 구매했다는 응답도 3.6%를 차지했다.
못난이 농산물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95.5%가 재구매 의사가 있다고 답해 만족도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푸드 리퍼브의 인기는 얇아진 지갑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고물가에 농산물 가격 역시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가성비 좋은 못난이 농산물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새로운 소비 패턴에 맞춰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먹거리를 넘어서 미용업계까지 나섰다.

LG생활건강은 2023년 11월 ‘어글리 러블리’ 브랜드를 냈다. 농가에서 버려질 뻔한 못난이 농산물에서 원료를 추출해 화장품을 만들었다. 브랜딩 과정에 윤리적 소비를 강조한 것이다. 어글리 러블리는 현재 올리브영 온라인몰, 더 현대 오프라인 매장 등 국내 유통 채널에 입점했고, 동아시아 7개국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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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농산물로 만든 LG생활건강의 뷰티 브랜드 ‘어글리 러블리’ ©LG생활건강
기후변화를 막는 사소한 소비 습관
모양이나 색깔이 규격에 맞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한해 동안 버려지는 농산물 규모는 약 5조 원.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농산물이 한 해 13억 톤으로 전체 농산물의 30%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나오는 폐기 농산물은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음식물 쓰레기가 뿜어내는 메탄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8배나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렇게 버려지는 농산물은 더 많아질 수 있다. 기후변화로 변덕스러운 날씨가 지속되고,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못난이 농산물이 더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못난이 농산물 소비의 가치는 단순히 가성비에만 있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선 싼값에 좋은 상품을 구매하면서도 친환경·가치 소비에 손쉽게 동참할 수 있고, 유통사 역시 재고·폐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못난이 농산물로 누구나 손쉽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푸드 리퍼브 시장은 점점 커질 예정이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못난이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과 맛·영양이 똑같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주면서 일종의 ‘시그널링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시그널링 효과는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정보를 가진 쪽이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취하는 행동을 말한다. 못난이 푸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고, 인식이 달라지면서 푸드 리퍼브 시장은 점점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푸드 리퍼브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의 사소한 습관이 기후변화를 막을 힘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기 때문에 더 정감 가는 못난이들에게 한 번쯤 눈길을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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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환경(ESG) #라이프
글. 서혜빈(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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