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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1. 13
BCI 기술 활용한
칩인류의 탄생
뇌와 컴퓨터의 연결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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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설립한 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의 세 번째 뇌 칩 이식 성공 소식이 전해졌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칩을 심은 인류, 즉 ‘칩인류’의 시대가 머지않았음에 업계는 물론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도 공존한다. BCI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어떨까? 말처럼 장애나 불치병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BCI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짚어본다.
뇌와 컴퓨터 연결 고리 BCI 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Computer Interfaces, 이하 BCI는 간단히 말하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사람 뇌에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있는데, 신경세포는 시냅스로 서로 연결돼 있다. 사람이 생각하고, 움직일 때 전기 자극이 시냅스 사이를 오가며 전달된다. BCI는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 BCI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70년대 초, 자크 비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논문을 통해 처음 제시했다.

뇌와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고 최초로 주장했으나 이후 BCI 기술은 21세기 이전까지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BCI 기술에 필요한 뇌과학, 의학, 전자공학, 인지공학 등 학문의 발전이 더뎠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5년 존 도너휴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최초로 사지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침습형 BCI를 통해 생각만으로 마우스, 로봇 팔 등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침습형 BCI는 뇌 안쪽에 칩이나 전극을 직접 심어 뇌 전기신호를 전송하는 기술로, 이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침습형 BCI에 성공한 첫 사례였다.
뉴럴링크, 인간 뇌 칩 이식에 성공
실현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짙었던 BCI가 최근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일론 머스크가 오래전에 쏘아 올린 ‘뉴럴링크’가 있다. 그는 2017년 뉴럴링크를 처음 세상에 공개하며 “뉴럴링크는 4년 안에 중증 뇌 손상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리고 2년 뒤인 2019년, 뇌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뇌파만으로 ‘퐁’이라는 고전 게임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했다. 퐁은 탁구처럼 화면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공을 판으로 쳐서 반대편으로 날려 보내는 게임으로, 마우스 커서만으로 간단히 플레이할 수 있다. 원숭이의 뇌파로 마우스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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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인간 뇌에 BCI 칩 이식’에 성공한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2024년 2월 마침내 뉴럴링크 첫 임상시험 참가자가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참가자는 8년 전 다이빙 사고로 어깨 아래가 마비돼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던 사지마비 환자였다. 뉴럴링크 칩을 이식 받은 참가자는 시험에서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능수능란하게 체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몇 개월 후 참가자의 마우스 커서 제어 속도는 훨씬 향상되었다.

2024년 8월에는 척추 손상을 입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이식 수술도 이뤄졌다. 뉴럴링크는 이후 홈페이지에 두 번째 수술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두 번째 환자는 칩 이식 후 컴퓨터를 연결한 지 5분 만에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제어했으며, 이틀 째에는 컴퓨터로 CADComputer-Aided Design 작업을 배우는 등 빠르게 적응했다.

지난 8일 일론 머스크는 X트위터에서 진행된 라이브 스트리밍 도중 현재까지 “뉴럴링크를 장착한 사람이 3명”이라고 언급하며 세 번째 환자에 대한 BCI 칩 이식 수술이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는 세 번째 환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3명 모두 뉴럴링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올해 안에 20~30명에게 장치를 추가로 이식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뉴럴링크의 혁신은 ‘N1 임플란트’라 불리는 BCI 칩에 있다. 이 칩은 거대하고 불편하며 뇌 손상의 우려가 있는 기존 침습형 BCI 장비에 비해 훨씬 가볍고 안전하다. 유연한 실을 사용해 뇌 손상도 줄였다.
BCI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뉴럴링크는 칩 이식을 통해 뇌와 컴퓨터가 상호작용 하도록 하는 BCI 기술을 발전시켜 궁극적으로는 휴대전화, 컴퓨터 등 거의 모든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다. 가장 먼저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단연 의학 분야다. 질병이나 사고로 사지를 못쓰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와 임상실험도 활발히 전개 중이다. 2023년 5월, 그레구아르 쿠르틴 스위스 로잔공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척수 신경이 손상된 하반신 마비 환자가 걸을 수 있도록 뇌에서 척수로 전기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장치를 뇌와 척수에 이식했다. 끊어진 척수를 대신해 장치가 뇌 신호를 다리로 보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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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CI에서 나오는 운동 신호대로 척수를 자극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하반신 마비 환자 모습 ©Jimmy Ravier
2 메타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연구진이 BCI를 활용해 사람의 뇌파 활동을 문장으로 출력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Meta
향후 BCI는 비만, 자폐증, 우울증, 조현병과 같은 질환 치료에도 용이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식욕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을 때 뇌와 연결된 칩을 통해 경고신호를 전달하거나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가해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의 활용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뉴럴링크는 두뇌에 연결한 칩과 전기신호를 이용해 시각장애인들의 시력 회복을 돕는 기기 개발도 진행 중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BCI 기술은 기억이나 언어 등 인간의 고등한 기능을 복원하도록 도와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공지능을 활용해 머릿속으로 생각한 단어나 문장을 음성으로 합성, 전달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21세기 8대 신기술로 꼽힌 BCI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BCI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BCI 시장은 2022년
17억4,000만 달러약 2조4,000억 원에서 2030년 61억8,000만 달러약 8조5,000억 원로 4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21세기 8대 신기술 중 하나로 BCI를 꼽았다.


이미 비침습형 BCI 기술은 상용화됐다. 2014년 캐나다 기업 ‘인터렉슨’이 뇌파를 분석해 심리 상태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는 헤드밴드 기기 ‘뮤즈’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다. 필립스는 뇌파로 수면 단계를 알아낸 뒤 더 깊이 잠들도록 소리 자극을 주는 장치 ‘딥 슬립 헤드밴드’를 내놓았다. 국내 기업인 현대모비스는 뇌파를 이용해 운전자의 주의력 감소를 알려주는 ‘엠브레인’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귀걸이 형태로 귀에서 뇌파를 측정해 주의력이 떨어지면 알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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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립스에서 개발한 ‘딥 슬립 헤드밴드’는 비침습형 BCI 기술이 활용되었다. ©Philips
2 인터렉슨의 명상 돕는 헤드밴드 ‘뮤즈’는 뇌 활동을 분석할 수 있는 센서가 탑재되었다. ©Interaxon
침습형 BCI 분야에서 뉴럴링크 경쟁사 ‘싱크론’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싱크론에 투자했다. 싱크론은 뇌를 여는 수술 없이 혈관을 통해 이식하는 침습형 BCI 장치인 ‘스텐트로드Stentrode’를 개발했다.

이는 전극 장치들이 혈관 벽에 자리를 잡고 가슴 부분의 피부 아래에 연결된 안테나를 통해 뇌 신호를 외부 장치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지난 7월 싱크론은 스텐트로드를 삽입한 환자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생각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싱크론은 애플과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의 협업을 통해 현재 고도화된 BCI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들도 빠르게 BCI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뇌에 약물을 투여해 행동을 제어하고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브레인 칩’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비침습형 BCI 장치를 이용해 뇌파로 움직일 수 있는 외골격 로봇을 선보였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뉴럴링크 같은 기업이 등장해 칩인류 시대를 선도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BCI의 상용화까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가 큰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뇌 신호에 담길 개인정보보호 등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신경 윤리 연구가 동시에 진행될 때 BCI는 새로운 위협이 아닌 희망이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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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술 #글로벌
글. 이채린(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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