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INFORMATION
2025. 02. 03
새 아침,
새 출발
계절을 품은 명화들
img
뱀의 해가 밝았다. 뱀이 허물을 벗듯 묵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 시대’의 옷을 입는 시간. 그래서 이맘때면 마치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듯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한낱 찰나에 불과한 한 해의 숫자에 송영의 희망을 불어넣는다. 한 해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한 이 계절, 그 시작을 알리는 다섯 점의 작품을 만나보자.
희망이 넘실대는 풍경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비극적인 생애는 신화에 버금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유명하다. 고흐에게 작품 하나하나는
곧 ‘살아 있다’는 존재를 확인하는 자기 증명이었다.

그에게 그림이란 감정을 담는 거대한 그릇이자 모든 열망과 고뇌를 이끌어낸 영혼 그 자체였다. 특히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세찬 감정을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풍경화가 대표적이다. 모든 붓 자국에 담긴 움직임과 표정은 살아 숨 쉬는 듯 생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 비해 평온하고 밝은 분위기를 지닌 ‘꽃 피는 아몬드나무’는 고흐의 다른 많은 작품과 대조적이다.
1890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린 특별한 작품이다. 밝은 하늘색 배경에 아몬드나무의 연분홍색과 흰색 꽃을 클로즈업해 그렸으며, 일본 판화에서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세련된 구도와 색감이 특징이다. 아몬드 꽃은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평생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끝없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 생애를 마감한 고흐. 그가 새 생명을 축복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애틋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겨울은 즐거워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풍경화가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p, 1585~1634. 그는 특히 겨울 풍경과 스케이팅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졌지만, 시각적 감각이 발달해 아름다운 풍경화를 꾸준히 선보였다. 아베르캄프는 부드러운 색채와 명료한 구도로 차가운 겨울 풍경을 재현했다. 그의 대표작 ‘얼어붙은 운하 위 겨울 풍경’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다양한 인물과 마을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전경에는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썰매 끄는 아이들, 장사하는 상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뒤로는 눈 덮인 마을과 가옥이 펼쳐져 당시의 네덜란드 풍경을 완벽히 보여준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는 사람, 얼음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강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 등 다양한 인물 묘사가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한다. 아베르캄프는 부드럽고 차분한 색채를 사용해 차가운 겨울 공기를 전달 하면서도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 따뜻한 활기를 더했다. 옅은 푸른 하늘과 흰 눈, 그리고 갈색과 회색의 자연스러운 대비는 겨울의 고요함과 생동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img
헨드릭 아베르캄프, ‘얼어붙은 운하 위 겨울 풍경’
코끝의 봄
인상주의의 선구자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1869년에 제작한 ‘라 그르누이에르의 수영객들’은 인상주의 운동의 태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파리 외곽 크루아시에 있는 휴양 명소인 라그르누이에르이다. 모네가 르누아르와 함께 작업한 작품 시리즈 ‘라 그르누이에르’는 당시 파리지앵들이 여름에 즐겨 찾던 인기 있는 수영장 겸 카페였다. 모네는 자연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생생히 담았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순간적인 빛과 색채를 포착하려는 모네의 초기 인상주의 화풍을 발견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다리와 나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은 세부적 묘사를 뛰어넘어 빛과 색의 풍부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특히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과 물결의 움직임은 밝고 역동적인 붓질로 처리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같은 장소에서 작업한 르누아르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모네가 사람보다는 풍경과 자연 분위기에 더욱 집중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모네에게 계절이란 빛과 색의 무한한 변주곡이었다. 그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에서 물결 위로 드리운 햇살을 포착하고, 봄의 부드러운 숨소리에 꽃과 하늘의 속삭임을 담았다.
img
클로드 모네, ‘라 그르누이에르의 수영객들’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인상파 화단의 최연장자로, 1874년 제1회 인상파전부터 제8회까지 빠짐없이 출품한 유일한 화가였다.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폴 세잔이 스승으로 받든 인물이기도 하다. ‘봄의 과수원’은 인상주의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피사로가 프랑스 북부 퐁투아즈에서 작업하던 시기에 완성한 작품이다. 퐁투아즈는 농촌 풍경과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며 화폭에 담던 피사로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 장소였다.

꽃이 만개한 과수원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부드럽고 짧은 붓질로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꽃과 풀밭의 생명력을 표현하며, 화면 전체에 빛과 공기가 스며드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화면 구성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과수원 깊숙이 끌어들이고, 중경과 배경의 농촌 풍경은 평화로운 전원 분위기로 가득하다. 나무들 사이에 드리운 햇살과 그림자, 꽃 등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조화…. 이 작품은 단순한 봄날 풍경을 넘어, 피사로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한창 도시화가 진행되던 프랑스에서 피사로는 농촌의 평화로움과 자연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내며 자연주의적 시각을 고수했다. 그의 붓끝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이
하나 되어 살아 숨 쉬는 제삼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img
카미유 피사로, ‘봄의 과수원’
봄이 오는 소리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 앙리 마르탱Henri Martin,1860~1943. 그는 점묘법을 사용해 따뜻한 빛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점묘법의 대가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가 과학적 색채 분할법을 엄격히 따랐다면, 마르탱은 훨씬 감성적 방식으로 부드러운 점묘법을 발전시켰다.
그는 특히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라부르드Labourde를 중심으로 평화로운 정원, 밀밭, 수도원 풍경 등을 그렸다.

마르탱의 대표작 ‘마르케롤 공원의 남서쪽 분지와 아치형 기둥’은 라부르드에 있는 마르케롤 저택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1900년대 초 번잡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주했고, 이곳의 저택과 정원을 소재로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마르탱은 자신의 대표 기법인 점묘법으로 생동감 넘치는 자연 풍경을 묘사해냈다. 따스하게 퍼져 있는 빛과 푸르른 식물들, 정자의 구조물, 연못의 잔잔한 수면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상향을 꿈꾼 마르탱의 비전을 보여준다.
img
앙리 마르탱, ‘마르케롤 공원의 남서쪽 분지와 아치형 기둥’
클릭하시면 같은 키워드의 콘텐츠를 모아볼 수 있습니다.
#예술 #계절(봄) #취미/취향
글.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COPYRIGHT 2021(C) MIRAE ASSET SECURITIES CO,.LTD.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