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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22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독립서점’ 어떠세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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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피난처다.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고요함과 더불어 외교적 면책특권을 누린다.”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말이다. 소설가의 말처럼 때때로 서점은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서가에서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적 사유와 교류의 공간이 될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독립 서점 다섯 곳을 소개한다.
일상을 채우는 독서
교보문고 기준 2020년 분야별 판매를 살펴보면 여행과 외국어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 분야가 20% 이상 판매율 신장을 기록했다. 특히 자기 계발과 경제 경영, 과학,취미 분야 도서 매출이 지속해서 성장하는 추세다.

책 매출 신장은 비단 국내 대형 서점 얘기만은 아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등 대문호들이 드나들던 파리의 유서 깊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온라인 판매와 멤버십 도입으로 매출이 크게 올랐다. 뉴욕의 대표 독립 서점 이자 문화 명소인 ‘스트랜드 서점’은 코로나19 당시 폐업 위기에 처했으나 독자들의 응원과 지원 덕에 온라인 판매량도 늘고, 입장 대기 줄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혼자 무려 197권의 책을 구매하며 열렬한 응원을 보낸 손님도 있었다고.
서울의 독립 서점들도 책으로 생각하는 힘을 북돋워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독립 서점은 대형 서점의 유통 방식에서 탈피해 주인장의 관점에서 큐레이션한 책을 파는 소규모 책방을 말한다. 독립 서점과 대형 서점의 가장 큰 차이는 ‘큐레이션curation’이다. 대형 서점처럼 분야별로 도서를 분류하지 않고, ‘괜찮은 삶을 살고 싶을 때’, ‘나도 글 좀 잘 쓰고 싶은데’, ‘커피 식기 전에 얇은 책 한 권’ 등 주제에 맞춰 세심하게 고른 책을 진열해놓는 식이다. 추천하는 책에는 그 이유를 손 글씨로 꾹꾹 눌러쓴 종이가 꽂혀 있다. 그 덕에 독립 서점에선 방대한 선택지 앞에서 무슨 책을 읽을지 갈등하는 피로가 덜하다. ‘넓고 얕게’가 아니라 ‘좁고 깊게’ 책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 또한 독립 서점은 책을 추천할 뿐 아니라, 종이 책을 매개로 소규모 작가와 만남이나 초청 강연 등 다양한 문화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생각의 숲 이루는 서점 ‘최인아책방’
‘서점은 1층에 있어야 한다’는 틀을 깨고 선릉역 인근 건물 4층에 둥지를 튼 연 ‘최인아책방’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큐레이션과 북 클럽으로 유명한 독립 서점이다. “스트레스, 무기력, 번아웃이라 느낄 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등 살면서 한 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 12개를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 책에는 최인아 대표와 그의 지인이 추천사를 쓴 빳빳한 종이가 끼워져 있다.

최인아 대표는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광고 카피로 이름을 날린 카피라이터이자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으로, 온라인 광고대행사 디트라이브Dtribe 정치헌 대표와 의기투합해 ‘생각의숲’을 콘셉트로 강남 한복판에 이 서점을 열었다.

최인아책방 북 클럽도 5년째 활발히 운영 중이다. 북클럽은 회원으로 가입하면 매달 신중하게 고른 책 한 권과 책방 마님의 편지를 집으로 보내주는 유료 정기 구독 서비스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엔 저자, 편집자,독자가 한자리에 모인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면 관점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다.

같은 건물 3층에 문을 연 ‘혼자의 서재’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잘 어울리는 고유한 서점이다. 혼자의 서재를 찾는 이들은 이용료를 내고 1인용 암체어에 앉아 책도 보고 음료도 한 잔 마시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집 밖에 있는 공유 서재의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애서가의 로망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으로, 서가에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난로 옆에는 폭신한 카우치가 자리를 내준다. 그 덕에 혼자의 서재에서 책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고, 생각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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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사유 시간을 권하는 최인아책방
책와 음악이 만나는 문화공간
최인아책방에서 가까운 ‘북쌔즈Booksays’도 책과 음악 그리고 사람의 만남을 매개로 사색과 휴식을 제안하는 책방이다. 단순히 책과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음악 토크 콘서트, 인문학 강좌를 여는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넓은 공간과 서점과 카페 도서관을 잘 연결해놓은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북쌔즈 1층 서점에는 ‘일 잘하고 싶을 때’, ‘변해야 산다’ 등 주변 직장인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테마로 큐레이션한 책이 많다. 경제 경영 도서뿐 아니라 ‘몸 좀 돌보셔야죠.’, ‘먹고 만드는 즐거움’ 등의 주제로 사람들의 일상을 다독여주는 책도 있다. 그 덕에 북쌔즈에의 서가에서 책을 고르다 고민의 해답을 얻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1층에서 책을 산 후 2층 라이브러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 제격인 분위기다. 북쌔즈 맞은편에는 북쌔즈 별책 부록이라는 이름의 분점도 있는데, 본점에 비해 아담해도 책장을 넘기며 사색 시간을 갖기엔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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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쌔즈의 책장에서는 긍정적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라이프 북스’
강남구청역 근처의 ‘라이프 북스Life Books’는 이름처럼 라이프스타일과 책에 뿌리를 둔다. 가구 브랜드 비아인키노Wie ein Kino에서 운영하는 서점답게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유유히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여기서 좋은 책이란 나날이 쏟아지는 신간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라이프 북스 기준으로 고른 책을 말한다.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문학부터 인문학, 건축과 미술 분야 책을 고루 아우른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프리모 레비Primo Levi, 수전 손태그Susan Sontag, 존 버거John Peter Berger,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여섯 작가가 쓴 모든 책을 구비하고 있다.

일부러 책의 분야를 칼같이 나누지 않고 느슨하게 분류해놓아 소설책을 찾던 사람이 미술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라이프 북스엔 책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가 흐른다. 서가 주위에는 감각적 디자인의 나무 의자와 1인용 소파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 편히 앉아 책장을 넘겨볼 수 있다. 비정기적으로 전시도 여는데, 2020년에는 <이봉 랑베르 50년 책과 프린트>가 화제였다. 이봉 랑베르는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갤러리스트이자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서점으로, 2020년 3월 이봉 랑베르에서 연 동명의 전시를 서울의 맥락에 맞게 재구성해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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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과 책에 뿌리를 둔 라이프 북스
따뜻한 햇살과 함께 ‘책방 오늘’
양재동 교육개발원 사거리에 자리한 ‘책방 오늘’도 책을 매개로 다양한 워크숍과 독서 클럽, 작가와의 만남이 열리는 공간이다. 멀리서 서점의 간판만 보아도 책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다. 책방 오늘의 간판 자리에는 상호 대신 “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거예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티라이트>에서 떠돌이 채플린이 세상을 등지고 강에 뛰어드는 신사를 구한 후 화면을 채운 대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거리를 지나는 이들에게 이 문장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점이 문을 닫은 후에도 불을 밝혀둔다. 밤거리를 밝히는 책방도 환하지만, 낮의 책방은 더욱 더 밝고 따스한 분위가 감돈다.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스미는 진열대가 여럿이다. 매달 이달의 작가를 선정해서 그 작가의 책을 재조명하고, 이달의 동사를 골라 그와 연관된 책을 추천하는 코너다.

서점 한가운데는 거리에서도 보기 드문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숫자 버튼을 누르면 작가들의 목소리가 하늘색 수화기 너머로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박완서Park Wansuh 등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오늘의 전화 부스’다. 그 곁에는 작가들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야말로 공감각적 큐레이션이라 하겠다. 책방 오늘 안쪽에 있는 ‘눈송이 스튜디오’도 눈길을 끈다. 눈송이 스튜디오란 소규모 음악 공연이나 워크숍, 독서 클럽을 여는 아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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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책방 오늘
책 보며 술 한잔, 애주가의 책방 ‘책바’
연희동 어느 골목 안에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책바’가 숨어 있다. 이름처럼 책과 바를 결합해,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는 ‘음주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콘셉트 공간이다. 서가에는 주인장이 고른 책이 꽂혀 있고, 메뉴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시던 칵테일이 빼곡하다. 그러니까 책바에선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술을 바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다.

이를테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는 공통적으로 압생트가 나오는데, 그 책을 읽다 압생트가 어떤 술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책바에서 주인공이 마신 레시피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한마디로 책과 술의 공감각을 구현하며 시너지를 발휘하는 공간이라 하겠다. 소설가 김영하도 다녀갔다는 이 공간에는 주로 혼자와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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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글. 우지경 에세이스트
사진. 장성용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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