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1. 03. 30
여행이 더욱 그리운 때
미리 보는 세계의 아름다운 정원
고즈넉한 소도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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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예술, 시대가 말을 거는 듯한 세계의 명품 정원을 간직한 보석 같은 도시가 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하늘길이 막혀 있는 지금, 다시 만날 멋진 그곳을 눈에 미리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와 예술의 향기를 간직한 고즈넉한 소도시와 산책하기 좋은 명품 정원을 소개한다.
프랑스 루아르의
샤보르성
파리 약 200km,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닿는 루아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고성의 도시다. 큰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광활한 포도밭과 고즈넉한 마을이 있는 평화로운 전원도시다. 문화의 요충지,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 프랑스 정원 등 다양한 수식어에서 진가를 엿볼 수 있다. 15세기 후반 불어온 르네상스 바람은 루아르의 풍경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당시 지은 루아르 계곡의 성과 정원은 지금도 남아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루아르 계곡의 일부 지역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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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성의 모티브가 된 샹보르성
루아르에는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성이 300개나 늘어서 있다. 그중에도 이름난 몇몇 성과 정원만 둘러봐도 하루가 짧을 정도. 그만큼 각각 다른 매력을 뽐낸다. 먼저 샹보르성은 규모와 건축학적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6.5헥타르 규모의 넓은 부지에 빈틈없는 대칭 구조의 정원으로 꾸몄는데, 전형적인 프렌치 양식의 정원이다. 샹보르성의 정원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바로 내부의 이중 구조 계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것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절대로 마주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도 매년 5월부터 8월까지 국제 정원 축제가 열리는 쇼몽쉬르루아르성(현재는 임시 휴업 중), 빌랑드리성,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마지막 생을 보낸 클로뤼세성 등의 아름다운 정원을 여행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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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목이 자라는 빌랑드리성은 정원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보볼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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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원의 원형 같은 사이프러스나무와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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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관광도시 피렌체에서 한적한 휴식을 선사하는 넓은 보볼리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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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빌라
피렌체가 주도인 토스카나주는 사실상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최초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와 마키아벨리까지, 거장을 낳은 토스카나주는 그야말로 한 시대를 호령하고 후대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예술과 문화의 도시인 셈이다. 이 지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문화 예술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이다. 그들은 가문의 곳간을 털어 학문과 예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의 토스카나를 빛내는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리라. 따라서 이 지역을 여행하는 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리고 한 가문의 위대한 유산을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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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건축물인 토스카나의 메디치 빌라는 주거 공간과 정원 그리고 주변 자연환경을 하나로 연계한 건축의 첫 번째 사례다.
고대 로마에서는 재산가가 공공을 위해 기부, 투자하는 일이 관습처럼 행해졌다. 고대로의 회귀를 기다리던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이 사람들에게 더 큰지지를 받은 이유다. 이들은 학문과 예술을 지원함과 동시에 혁신적 건축 기술과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그 가치를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메디치가문이 이름 걸고 만든 빌라와 정원들이다. 당시의 부유층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한 성을 짓곤 했는데, 메디치 가문은 자연과의 조화, 예술과 학문, 휴양에 가치를 둔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이전의 빌라, 정원과 완전히 구분되는 특징은 주변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유형이었기 ‘군주의 저택’, ‘귀족적 전원 저택’, ‘시대가 낳은 가장 독창적 작품’이라며 그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받았다. 여행자로서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정원이 바로 피렌체 시내에 있는 보볼리 가든이다. 1549년 조성한 곳으로,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사이프러스나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진 풀과 꽃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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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최고 정원으로 꼽히는 보볼리 가든의 기사단 정원
모로코 미라케시의
마조렐정원
사막과 야자나무 숲, 붉은 흙으로 빚은 건물 일색인 이 도시에는 이질적이게도 고상한 기품이 흐른다. 모로코 중부 도시, 마라케시의 역사는 1040년부터 1147년까지 존재한 무라비트 왕조로부터 시작된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산과 바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관문에 위치한 덕에 수많은 여행자와 문명이 도시를 지나쳐 흘렀다. 역사가 늘 그러하듯 무라비트 왕조는 멸망하고 도시는 성쇠를 반복했으나,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뒤흔든 영감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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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브생로랑에게 넘치는 영감을 선사한 마조렐 정원의 블루. 마조렐 정원은 그의 삶을 이야기한 다큐 영화 <라무르>에도 등장한다.
마라케시의 별명은 ‘붉은 도시’다. 흙을 쌓아 올려 만든 성벽과 주택 대부분이 핑크빛에 가까운 적색을 띠고 있기 때문.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이토록 붉은 도시에서 생애를 바쳐 사랑한 영감의 원천을 찾아냈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색채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푸른 정원, 마조렐 정원이다. 이브 생로랑은 정원과 도시를 일컬어 “나에게 색을 깨우쳐준 곳”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마조렐 정원을 사들인 뒤 이 나라의 전설적 가든 디자이너이자 민족식물학자인 아브데르작 벤챠바네에게 복원 작업을 맡겼다. 이 작업은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기기묘묘한 선인장 정원과 대나무 숲,야자수와 코코넛나무, 재스민 꽃나무까지 300여 종이넘는 식물로 조성했다.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인셈. 무엇보다 정원을 압도하는 것은 푸른색(마조렐 블루라고 부른다)이다. 푸르게 칠한 화분과 분수, 빌라 창가에 드리운 옐로 커튼이 오아시스의 생동감을 더한다. 뜨거운 공기와 흙먼지 날리는 도시를 거닐다 마조렐 정원으로 들어서면 마치 푸르른 정글 속에 있는 듯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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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시’와 대조를 이루는 선인장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헤네랄리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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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 정원의 파티오는 따가운 스페인 남부의 햇빛을 피하고,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는 장이 된다.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역에서는 언제나 문명이 교차했다. 지중해, 대서양, 지브롤터 해협과도 맞닿아 있는 안달루시아는 로마제국과 서고트족, 모슬렘 등 여러 세력이 차례로 진출해 지배했다. 덕분에 문화의 격전지였으며, 다른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예술 요소가 뿌리내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문화권이 바로 이슬람이다. 8세기 무렵,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 발을 들인 모슬렘은 학문과 문화는 물론이고, 건축에서도 지대한 흔적을 남긴다.
이슬람 왕조, 그러니까 고대 페르시아인의 후예들은 그들이 사랑하던 정원을 안달루시아에도 옮겨온다. “천국이 있다면 페르시아 정원을 닮았을 것”이라는 말처럼 정원은 이슬람 문화권의 이상향이었다. 사막과 혹서의 자연환경 속에서 페르시아인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녹음이 짙은 정원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안달루시아로 건너온 모슬렘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정원을 구현해냈다. 대표적인 것이 파티오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ㅁ자 모양의 안뜰을 일컫는데, 스페인 남부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휴식과 여유의 시간을 보내도록 한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동쪽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조성한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안달루시아 정원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아세키아의 안뜰’이라 불리는 파티오에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인공 호수로부터 끌어온 물이 샘솟는다. 이렇게 흐르는 물은 언덕을 올라온 여행자의 땀을 씻어주고, 석조 건물의 온도도 낮춰준다. 또 안달루시아의 소도시 코르도바에서는 매년 파티오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집을 개방해 파티오로 꾸며 사람들을 초대하는 축제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에게 정원과 파티오는 심미적 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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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 정원에는 페르시아인의 녹음 짙은 정원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글. 송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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