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INFOMATION
2021. 04. 20
미술품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컬렉터’의 ‘컬렉션’
예술과 재테크 그 사이 어딘가
img
수백억원이 넘는 유명 작품을 비즈니스에 활용해 큰돈을 벌어들이는 사업가,
스스로를 일깨우는 날 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 이제 갓 싹을 틔우는 무명 작가를 발굴해 훗날 큰 성공을 함께 맛보는 후원자형 컬렉터. 다양한 면면의 컬렉터들이지만 미술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대단한 안목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세계적 슈퍼컬렉터가 예술에 탐닉하며 심미안과 지혜를 얻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취향에 따른 다양한 컬렉터
미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이를 사로잡고 있다. 마치 강력한 자석에 이끌리듯, 또는 매혹의 꽃향기에 취하듯 컬렉터들은 미술을 사랑하고, 깊이 음미한다. 그들 중 정상에 오른 슈퍼컬렉터들은 스케일도 다르고, 목표도 남다르다. 교과서에 실릴 법한 자코메티, 피카소, 뭉크 같은 거장의 수백·수천억원대 작품을 턱턱 수집해 공공에 내놓는 자선가형 컬렉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을 얼마나 수집했는지 좀체 드러내지 않는 컬렉터도 있다.
반면 누구나 알아볼 만한 화제의 작품을 사들인 뒤 비즈니스에 활용해 잭팟을 터뜨린 영민한 사업가도 있고, 세간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날 선 작품만 골라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막 데뷔한 무명 작가를 발굴해 스타로 날아오르게 하는 후원자형 컬렉터가 있는가 하면, 돈과 성공밖에 모르다가 예술을 만나 놀라울 만큼 유연해진 억만장자도 있다. 예술의 지향점이 한없이 다양하듯, 컬렉터들의 면면도 이처럼 매우 다양하다.
투자이기 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먼저
슈퍼컬렉터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독특하거나 참신한 작품을 만나면 선뜻 지갑을 열어 사들이며 작가에게 힘을 불어넣고, 예술계 토양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미술품이 지닌 잠재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꾸준히 사들이는 컬렉터가 없다면 지구상의 미술가들과 화랑들은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뉴욕 월가에는 미술품을 투자 상품으로 여기며 환금성 높은 블루칩만 사 모으는 이들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투자 고수들이 미술품을 주식처럼 다루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간신문 문화부 기자로 30년간 미술계를 취재하며 만난 슈퍼컬렉터들은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이들이 다수였다. 투자이기에 앞서 ‘끌림’이 먼저였던 것이다. 또 작품이 쌓이다 보면 미술관을 지어 대중과 향유하거나, 공공에 기증하는 예가 많았다.
대부분의 슈퍼컬렉터는 자신이 기대하는 작품이 나왔다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는 매년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정상의 아트 페어 ‘아트바젤’을 빼놓지 않는다. 심지어 홍콩의 ‘아트바젤 홍콩’에도 모습을 보인다. ‘이번엔 어떤 멋진 그림이 나올까’ 하는 설렘에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는 것이다. 미술에 하도 골몰해(그는 가구 디자인도 하고, 조각도 만든다) 아내 앤젤리나 졸리로부터 핀잔도 자주 들었다.
이처럼 컬렉션의 동기나 목적, 규모나 방향성은 제각각 다르지만 컬렉터들은 “작품을 수집하면서 복잡한 현대사회를 읽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엉뚱하고 재기 발랄한 미술품 속에 무릎을 치게 하는 ‘뜻밖의 포인트’가 있다는 것.
그런데 일반 대중에게 ‘슈퍼컬렉터’ 이야기를 꺼내면 딴 동네 이야기라며 탐탁지 않아 한다. 미술도 잘 모르겠는데, 나와 상관없는 부자들 이야기를 왜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처음에는 작은 그림엽서나 아트 포스터로 수집을 시작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100달러짜리 민속 조각으로 컬렉션에 빠져든 기업인도 있다. 게다가 지금은 억만장자로 불리지만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컬렉터가 대부분이다.
미국 마이애미에 루벨패밀리컬렉션RFC을 세우고 7,200점의 수집품을 대중을 위해 내놓은 돈&메라 루벨 커플은 가난한 대학원생 시절부터 월급 400달러 중 25달러를 미술을 위해 썼다. 1960년대 극심한 경제 공황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뉴욕의 미술가들이 상점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며 호구지책에 나서자, 이를 외면하지 않고 한 점 두 점 수집하며 컬렉션을 시작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스타 작가가 된 이들의 초기작이 다수 포함돼 미국 현대미술 반세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콘텐츠가 되고 있다. 팔순을 눈앞에 둔 이 부부는 요즘도 남다른 안목으로 컬렉션을 계속 중인데, 이미 스타가 된 작가보다는 싹수가 보이는 유망주를 주목한다. 루벨이 발탁해 후원하면 스타덤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img
17세기 건축에 현대식 전시실을 더한 프랑수아 피노 Karing 회장의 미술관
상상을 초월하는 슈퍼 리치의 미술품 사랑
미국 서부에서 ‘최고의 아트 페이트론’으로 꼽히는 부동산 거물 엘리 브로드의 컬렉션 스토리는 더욱 흥미 진진하다. 리투아니아계 이주민으로 페인트공이던 부친 밑에서 독한 페인트 냄새를 맡고 자란 브로드는 대학(유펜) 시절 주택가를 돌며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와 일명 간호사 신발로 부르던 캐주얼화를 팔던 고학생이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번듯한 직장을 잡은 뒤에도 저녁마다 대학 강사로 투잡을 뛰었다. 결혼 후 부동산 개발과 보험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림 수집을 할 일 없는 사람의 여가로 치부하며 아내의 화랑 출입을 단속했다.
그러나 평소 흠모하던 지인의 저택을 방문하곤 ‘문화 예술을 알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전시회를 열심히 찾고, 예술 서적을 탐독하며 작품을 수집했다. 돈과 성공, 원리 원칙밖에 몰랐던 남자는 파격과 전복을 일삼는 현대미술을 접한 뒤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러곤 LA 도심에 최신 뮤지엄을 만든 그는 인습을 벗어난 사고를 강조하며, “기존통념을 따르지 말고 다르게 생각하고, 실행하라”며 비합리 개념을 주창한 책도 펴냈다. 지독하게 완고하던 억만장자는 예술을 만나 누구보다 유연해진 것이다.
명품 왕국의 최대 라이벌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프랑수아 피노 케링Kering 명예회장은 현대미술에 서도 한 치 양보 없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1차로 파리와 베니스에서 예술 대결을 펼친 그들은 현재 파리 불로뉴 숲과 레알 거리를 무대로 ‘2차 대첩’에 돌입했다. 수천억·수조원의 돈을 쏟아부으며 작품을 수집하고, 뮤지엄을 건립한 것이다. 아르노가 불로뉴 숲에 유리 돛단배 형상의 루이 비통 미술관을 짓고 비장의 컬렉션을 선보이자, 팔순을 넘긴 피노 회장은 “컬렉션에선 내가 한 수 위”라며 루브르 근처의 17세기 상업 거래소 건물을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해 세계 최대 규모의 사립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코로나19로 개관이 연기된 피노의 브루스 드 커머스 파리Bourse de Commerce Paris가 올여름 개관하면 두 명품 제왕의 컬렉션은 제대로 맞장 뜨게 된다. 어마어마한 실탄(자본력)을 보유한 최고의 명품 재벌답게 소장품 전시는 물론, 괄목할 만한 기획전도 예정되어 뉴욕·런던에 비해 현대미술이 약세이던 파리는 활력을 되찾을 전망이다. 두사람의 이같은 예술대첩을 두고 일각에선 ‘사치품으로 혹세무민하는 슈퍼리치들의 허영’이라 비꼬기도 하나 판타지를 만드는 기업답게 최고 걸작을 사들이고, 뮤지엄도 최고 수준으로 운영할테니 파리를 찾으면 즐길 곳이 늘어난 셈이다. 더구나 이들의 뮤지엄은 50년이 지나면 파리시에 귀속되도록 되어 있다.
img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루이 비통 미술관
안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슈퍼컬렉터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미술품 수집은 여러 각도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전문성이 필수요소인 것이다. 미술품은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예술인 동시에 재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투자가 우선일 경우 실패할 소지가 크다. 우선은 독창성과 완결성을 지닌 작품인가를 침착하게 따져봐야 하며, 미술사적으로 향후 가치가 있을지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평론가나 화랑주와의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하다. 일부 블루칩을 제외하고는 주식 또는 부동산과는 달리 미술품은 되파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살 때 잘 사야 한다.
단 좋은 작품이 내 앞에 왔을 때는 미적대지 말고 빠르게 결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구상에서 그 그림은 오직 딱 1점만 있기 때문이다. 또 값을 지나치게 깎다보면 좋은 작품이 더 이상 내게 오지 않는다. 딜러들은 ‘징글징글하게 깎는 손님에겐 좋은 걸 주기 싫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작품을 골라내는 안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 공부도 하고, 작품을 실견하며 ‘취향의 근육’을 키우다 보면 당신도 컬렉터로 환희의 순간을 맛볼 것이다. 그 환희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환희다.
img
더 브로드 뮤지엄에서는 키스 해링과 제프 쿤스 등 현대미술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글. 이영란 뉴스핌 편집위원·미술 칼럼니스트
COPYRIGHT 2021(C) MIRAE ASSET SECURITIES CO,.LTD.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