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업일수록
필요로 하는 인재 ‘일터의 현자’
실리콘밸리 곳곳에는 일터의 현자가 일하고 있다. 최근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에어비앤비의 비약적 발전에는 24년간 큰 부티크 호텔 브랜드의 CEO로 재직한 칩 콘리의 역할이 컸다.
그가 52세 되던 해에 돌연 회사를 팔고 에어비앤비의 ‘인턴’으로 들어가 펼친 활약에서 일터의 현자들이 가진 지혜를 엿본다.
2020년 뜨거운 한 해를 보낸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대조적인 사건이 있었다. 성추문으로 축출된 우버의 전 CEO 트래비스 캘러닉처럼 수소 트럭 제조 기업 니콜라의 CEO 트레버 밀턴이 사기 논란을 빚으며 사임했고, 전 세계 여행이 바이러스로 마비된 시기임에도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했다. 호텔 체인 메리어트와 힐튼의 시총을 합한 것보다 크고,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무엇이 이 젊고 핫한 IT 기업 CEO들의 운명을 갈랐을까? 그것은 바로 디지털 네이티브와 연장자들 사이의 공생 관계가 있고 없음의 차이였다. 지금은 역사상 처음으로 무려 다섯 세대(70대 중·후반의 침묵하는 세대,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가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2013년 초 직원들과 대담을 나누기 위해 온 호텔업계의 전설 칩 콘리의 혁명적 스토리텔링을 접한 후 에어비앤비의 파트타임 고문이 되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얼마 뒤 콘리는 에어비앤비의 ‘멘턴(멘토+인턴)’이 되어 글로벌 호스피탤리티 및 전략 책임자로서 일하게 되었다.
1년에 수백 퍼센트씩 성장하는 회사에서 28세의 관리자가 24세의 부하 직원을 데리고 일할 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 준비 없이 너무 빠른 나이에 권력을 갖게 된 젊은이들에게는 ‘현자’의 성숙한 지혜가 필요하다. 콘리는 일터에서 필요한 지혜를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종합해 그 요지를 파악하는 종합적·시스템적 사고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능력이 있으면 더 큰 맥락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나이와 경력이 확실히 우위를 점한다. 일터의 현자는 뛰어난 판단력과 장기적 관점, 있는 그대로를 보는 진실성과 통찰력, 거의 모든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공감 주파수, 부품이 아닌 전체를 보는 사고, 이웃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틀어 지혜라고 부른다.
페이스북에는 마크 주커버그의 현자 역할을 하는 셰릴 샌드버그가 있으며 구글·알파벳에는 CFO 루스 포랫(그는 CEO 겸 공동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보다 15세위고, 모건 스탠리에서도 같은 역할을 한다)이 있다. 그 밖에 금융계에서 활동한 샐리 크로첵은 어려운 상황에 빠진 몇몇 유명 기업을 이끌면서 개인적으로 멘토링을 해주고 공개적으로 인턴 활동을 하는 롤모델이다. 그녀는 서브프라임 위기 때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메릴 린치를 인수하자, 메릴 린치의 자산 운용 사업부를 흑자로 전환하고 추문에 휩싸인 시티그룹의 조사 사업부를 갱생시켰다. 이 경험을 토대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그만둔 뒤 뉴욕에 있는 여성 기업가들을 멘토링해주었다.
칩 콘리는 네바다주 사막에서 열리는 세계적 예술 축제 ‘버닝맨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놀라운 사실은 젊은 멘티들 역시 멘토에게 역멘토링을 해준다는 것이다. 콘리는 에어비앤비에 근무하면서 브라이언 체스키와 수많은 직원에게 역멘토링을 받았다. 그의 오프라인 사고방식으로는 과하게 으리으리하다고 판단했던 신규사옥의 규모도 시간이 지나자 체스키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유니콘’의 성장 속도나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 트렌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니즈를 평가하는 방식 등 많은 것을 콘리 역시배웠다.
멘토와 멘티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생적 관계다. 계속 배움의 길을 걷지 않으면 가르침의 전설이 될 수 없다. 음악, 미술, 과학 그리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성(연령, 배경, 사고의 다양성)이 창조를 낳는다. 매켄지 조사 결과 남녀 비율이 비슷한 기업들이 미국내 평균 기업보다 15%나 높은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인종 구성이 다양한 팀들은 단일 인종으로 구성된 경쟁 팀에 비해 성과가 최대 35% 높아진다. 여러 세대가 모인 조직에서 젊은 직원과 현자가 서로의 디지털 지능DQ과 감성 지능EQ을 활발히 교환하며 협업하는 것에도 바로 최고 IT 기업들의 성공 비밀이 숨어있다. 일터의 현자는 조직에서 경쟁 상대가 아닌 세대 간 지혜 전달의 롤모델이 되었다.
에어비앤비에서 밀레니얼 세대 동료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칩 콘리
만약 노화가 우리를 공격하는 적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면 어떨까? ‘노화’라는 단어를 ‘성장’으로 대체한다면 어떨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며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갖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면서 자신을 일터의 현자로서 재탄생시키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콘리는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로 일했던 자신이 새로운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공포감이 컸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전환했다. CEO라는 과거의 정체성은 버리고 존경받아야 한다는 강박도 버리며 오롯이 자신만을 남겼다. 평생을 쌓아 올린 끝에 마침내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 의미 있는 일,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두 번째는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초심자는 지혜로운 질문을 마음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역사상 위대한 경영 이론가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는 95세까지 살았는데, 그는 말년까지 왕성한 호기심으로 새로운 주제에 깊게 빠져들었다. 일본식 꽃꽂이며 중세의 전쟁 전략이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2년 주기로 깊이 연구했다. 콘리는 감정의 본질, 축제의 역사, 온천과 지질학 등 비즈니스와 관계없는 주제들을 깊이 연구한 끝에 베스트셀러를 쓰고, 축제 온라인 스타트업을 설립했으며, ‘에어비앤비 오픈’이라는 축제 개최의 영감을 얻었다.
세 번째는 협업을 통해 더 큰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이 든 근로자들은 협업을 도모하고 팀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재능이 뛰어나다. 사실 세대 갈등이나 가치관 차이 등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테크 기업도 여전히 많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놈 와서먼 교수는 1만 명의 기업 설립자들을 연구한 결과 전체 스타트업의 65%가 공동 설립자 간의 갈등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현자들은 젊은 디지털 회사에서 수면 아래 부글거리는 팀의 마찰이나 분열을 알리기 위해 리더들에게 미리 경고를 전하기도 한다.
네 번째는 노하우와 인맥을 활용해 조언해주는 것이다. 일터의 현자는 지식과 지혜가 담긴 방대한 도서관의 사서 같은 존재다. 콘리는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이 찾아와 대화를 요청하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지혜를 제공해주었다. IT업계 리더들 중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서 결정을 제대로 못 내리고 망설이는 이가 많다. 바로 이럴 때 리더 옆에 경험이 풍부한 친구가 존재한 기업은 좀 더 사려 깊고 신중한 판단을 통해 성과를 내고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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