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2. 03. 08
예술 작품 속에 담긴
희망 메시지
예술의 마법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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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당신에게 한순간 일확천금을 안겨줄 힘도, 숙원 사업을 끝낼 능력도 없다. 예술의 마법은 예술에 있지 않고, 예술을 보는 우리에게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지난날을 반성하거나 속상한 심정을 다독이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삶의 의욕을 얻기도 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마치 심리 치료의 목적이 상담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상담을 통해 진짜 내 모습을 만나는 데 있듯 말이다. 다시 힘찬 내일로 출발하는 이들을 위해 6명의 ‘예술 상담가’를 초대했다. 이들이 만든 6점의 작품은 당신 속마음을 조용히 경청하며 함께 밝은 미래로 걸어가자고 제안한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해가 떠오른다
“인상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인상적이었으니까 인상이 담겼겠지. 어찌나 무질서하고 형편없는 솜씨던지! 그 바다 풍경보다 벽지 제작할 때 그리는 스케치가 훨씬 완성도 높을 거다.” 미술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 1812~1885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인상:해돋이Impression: Sunrise’(1872)를 보고 이런 혹평을 남겼다. 오늘날 ‘인상: 해돋이’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마스터피스지만, 이 역작이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땐 기성 평론가 무리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19세기 화가가 그려야 할 신화와 역사 관련 주제도 아니고, 윤곽선이나 채도도 흐리멍덩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졸작拙作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자존심을 짓밟힌 모네는 그럼에도 붓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해와 물, 빛과 공기를 그리면서 자신의 작품명을 내세운 ‘인상주의’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파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우습게도 르루아는 모네를 비평한 덕분에 미술사에 길이 남았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을, 모네는 ‘인상: 해돋이’로 암시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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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아이젠먼의 ‘테이블 아래 2’.
우리는 낮과 밤의 순환 주기를 알면서도 새벽은 늘 혹독하게 느낀다. 니콜 아이젠먼Nicole Eisenman, 1965~의 ‘테이블 아래 2Under the Table 2’(2014)의 모인 사람들처럼 언제 밝아올지 모를 아침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는 고깃 덩어리의 단면도 태양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드디어 해가 떠오른 줄 알고 열어젖힌 커튼 너머에는 고장난 텔레비전 화면 같은 어둠만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망하는 기색도 없다. 담담하고 굳건한 표정으로, 테이블 아래 모여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체온을 나눈다. 어떤 밤은 유난히 더 길다. 슬픈 마음이 지구의 자전 속도로 밤을 따라 걸어서 그렇다.

이들은 멀어져가는 마음에게 억지로 방향을 바꾸라고 채근하지 않고, 그 마음이 걷다 지쳐 멈출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그동안 호쾌하게 외친다. 건배!
스스로 치유하는 여정
단단한 유화가 캔버스에 물감 덩어리를 구축적으로 쌓는 작업이라면, 수채화는 섬유에 잔잔히 스며들면서 종이와 한 몸이 된다. 땅 위에 놓인 환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찬란한 대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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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더무스의 ‘새로운 희망, 펜실베이니아’.
미국 화가 찰스 더무스Charles Demuth, 1883~1935는 섬세하고 유동감 넘치는 선으로 뛰어난 수채화 작품을 여러 점 선보였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 출생인 그가 고향을 그린 ‘새로운 희망, 펜실베이니아New Hope, Pennslyvania’(1912)에는 역사적 도시 뉴호프의 델라웨어강이 담겨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선홍색 풍경을 마주하면서 더무스는 어떤 상념에 빠졌을까? 그가 붓을 움직일 때마다 물감은 물결이 되어 종이 위에 넘실대고, 그 강물에 반사된 인간사도 앞으로 쉼 없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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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의 ‘수선화의 정리’.
델라웨어강이 조각의 언어로 번역된다면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oniel, 1964~의 ‘수선화의 정리The Narcissus’ Theorem’(2021) 같지 않을까? 오토니엘은 최근 파리의 프티 팔레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고전 건축물을 화려한 유리 궁전으로 탈바꿈했다. 그중 미술관 입구에 설치한 벽돌 계단은 윤슬이 반짝이는 푸른 강을 형상화한 작품. 황금 문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폭포 같기도, 또는 우리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환상의 실크로드 같기도 하다.

오토니엘은 수학자 및 엔지니어와 협업하면서 기하학, 건축, 구조학을 예술에 적용했다. 예민한 재료 특성상 작은 요동에도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던 것. 그는 유리 작품을 만지는 과정을 “스스로 치유하는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유리는 연약해서 쉽게 깨지지만, 그 시련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덕분에 더욱 강해질 수 있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다
초상화의 거장 앨릭스 카츠Alex Katz, 1927~. 인체의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를 평면에 완벽하게 옮겨내는 그에게도 ‘꽃’은 가장 고난도의 대상이다. 동적 피사체를 그림으로 구현하는 데 반열에 오른 화가가 어째서 정적인 식물은 난해해할까? 그는 “물질성과 표면, 색상, 공간적 측면을 모두 잡아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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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릭스 카츠의 ‘노란 붓꽃’.
카츠는 여름이면 미국 메인주에 있는 별장으로 가서 정원에 만발한 꽃을 포착하고, 이후 스튜디오로 돌아와 생생한 기억을 곱씹으면서 캔버스에 그린다. 아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어려운 주제지만, 특유의 운동감을 연구하고 신중하게 색의 균형을 맞추면서 야생의 아름다움에 접근한다. 꽃잎과 줄기가 뚝뚝 분절된 ‘노란 붓꽃Yellow Flags’(2011)은 시들어가는 꽃이아니라 살랑바람에 나부껴 춤추는 생화로 보인다. 붓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 그 바람결을 타고 조만간 우리에게 희소식이 날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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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 II’.
카츠가 자연의 태동에 주목했다면,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희망 IIHope II’(1907~1908)은 임신한 여인을 작품 속으로 데려왔다. 해골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기도를 이어나간다. 결국 운명은 돌고 도는 법. 죽음은 탄생의 결과이며, 인간은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눈물겨운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클림트는 이 그림에 ‘희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인생은 유한해서 허망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든든한 아군을 증식할 수 있어서 희망적이다. 그래서 생명은 축복이다.
글. 이현(<아트인컬처>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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