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TREND
2022. 07. 12
팬덤의 진화,
팬더스트리
팬더스트리 시장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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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 현상을 일컫는 팬덤Fandom이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팬Fan과 산업을 뜻하는 인더스트리Industry의 합성어 팬더스트리Fandustry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2020년 기준 팬덤 경제 규모는 8조원대에 달한다. 점점 커지고 있는 팬더스트리 시장에 대해 알아보자.
팬덤Fandom의 부상
언젠가부터 ‘팬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팬덤이 미래다’, ‘팬덤을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의아한 노릇이다.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 ‘fanatic’에서 따온 ‘fan’과 영토를 뜻하는 ‘dom’을 합해 만든 합성어인 팬덤 그리고 그로 지칭되는 특정 집단은 한국 대중문화의 유구한 역사에서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다.

소위 ‘빠순이’로 불린 이들은 오랜 시간 미디어를 통해 특정 연예인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릇된 집단행동도 불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 그들이 어엿한 문화 권력을 가진 ‘팬덤’으로 불리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팬덤에 산업을 뜻하는 인더스트리Industry를 더한 ‘팬더스트리’ 말이 흔히 유행할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애정은 구매력으로, 집단행동은 여론과 숫자로 치환되었다. 이제 팬덤은 대중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
취향의 시대 도래
수십 년에 걸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무르익은 팬덤문화는 당연하게도 이들 나름의 규칙과 양식을 낳았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공연장이나 방송국에 가고 팬레터를 쓰는 초기 형태를 거쳐, 팬덤은 이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아래 모인 이들이 만든 작은 왕국에 가깝다. 그 안에서는 인종과 언어,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어차피 새로운 체계 위에 세워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새로운 세계 속 주인공에 집중한다. 각종 차트나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음반 공동구매,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투표 독려는 기본, 적극적인 공연 관람이나 팬 이벤트 참여, 응원봉을 비롯한 각종 MD 구매에도 거침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대상을 향한 애정, 오직 그뿐이기 때문이다.

‘팬덤’이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건 그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계화·조직화된 팬덤의 체질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시기 급속도로 진행된 대중문화 소비 패턴 변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21세기 대중문화 산업에는 ‘광장’과 ‘대중’이 사라졌다. 혹자는 이를 ‘취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도 말했다. 이름모르면 간첩인 국민 가수, 한 소절만 불러도 누구나 따라 부르는 국민 애창곡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중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선택하고 소비했다. 콘텐츠 소비 방식도 음반에서 스트리밍으로, 지상파에서 다양한 OTT로 전에 없이 다양해졌다. 전 인류를 각자의 방으로 강제 해산시켜버린 코로나19의 습격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했다.
팬덤 문화가 산업으로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자신이 애정하는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팬덤이었다. 이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문화 산업 소비 시대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은 그 자체로 창작자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만드는 속칭 ‘팬덤 화력’은 파편화된 시장 속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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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아미(ARMY)로 대표되는 K팝과 팬덤 사이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전 세계 문화 산업이 가장 선망하는 특별한 관계도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것이 BTS와 팬덤 아미ARMY를 앞세운 K팝과 팬덤 사이 끈끈한 유대관계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안팎으로 깨지며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온 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 안에서 운명 공동체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 나의 성취가 너의 성취가 되는 묘한 운명의 고리안에서 K팝과 팬덤은 전 세계 문화 산업이 가장 선망하는 특별한 관계도를 형성했다.

꿈만 같던 빌보드 1위에 오르고, 낯선 나라에서 상을 받은 뒤 BTS가 외치는 아미의 이름은 그저 정해진 식순에 의한 세리머니가 아닌 가수와 팬덤의 관계 방정식 그 자체였다.

이러한 흐름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순간, 팬더스트리가 움텄다. 지금껏 아는 사람만 알고 있던 팬덤 문화의 각종 역학이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재정의되고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팬덤을 한 곳으로 모아보고자 하는 의지의 실현, 팬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2018년 말 론칭한 SM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리슨’을 시작으로 하이브HYBE의 ‘위버스’, NC소프트의 ‘유니버스’ 등이 속속 이름을 알렸다. 해당 플랫폼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최소 100만 명에서 많게는 6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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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제트의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 안에서 아바타화된 블랙핑크 멤버들.
팬덤의 힘을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팬덤 플랫폼Platform 이외의 시장과도 꾸준히 손을 잡았다. 특히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공동체 형성에 특화된 팬덤의 특성을 활용한 메타버스와의 만남이 활발했다. 네이버 제트의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는 K팝과의 협업이 가장 활발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YG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진행한 그룹 블랙핑크의 제페토 버전 뮤직비디오 공개와 팬 사인회는 각각 조회 수 1억2,000만 회와 4,6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모으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2022년 JYP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신인 여성그룹 엔믹스도 데뷔를 앞두고 제페토와 아바타 협업을 진행했다.

펜데믹 이후 대중문화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NFT 시장 역시 케이팝 팬덤의 화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애정하는 대상과 관련된 무언가를 소유하는 데 있어 거침없는 팬덤의 속성에 주목한 탓이다.
객관적·정서적으로 설득돼야 성공
이제 팬덤은 단순히 음반을 사고 공연에 오는 이들을 지칭하지 않는다. 팬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파편화된 시대 창작자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든든한 동료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섬세하고 소중히 다뤄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팬덤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무엇도 불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만, 동시에 대상과 그 마음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보다 차갑게 돌아선다.

지난해 사업설명회를 통해 자사의 지적재산권IP과 NFT의 결합을 발표한 이후 ‘하이브 불매’, ‘보이콧 하이브’ 등의 SNS 해시태그 운동으로 역풍을 맞은 하이브와 팬덤 여론, 기술적 부분 모두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가수 선미의 NFT 프로젝트 ‘선미야 클럽’이 대표적이다.

애정하는 대상과 누구보다 밀접하게 연결된 만큼 이들을 객관적·정서적으로 설득시키지 못한 팬더스트리는 아무리 기막힌 아이디어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해당 산업의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사람’이라는 하이리스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팬덤, 나아가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구 없이 성공적인 팬더스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팬더스트리에 관심을 둔 모두가 명심해야 할건 팬덤은 끝없는 애정을 베푸는 동료임과 동시에 대상을 가장 잘 아는 냉철한 비판자라는 사실이다. 팬덤과 산업 모두가 이기는 게임 위에서만 성립 가능한 세계, 팬더스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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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BTS 굿즈 숍.
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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