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2. 11. 29
세계적인 신드롬
요즘 K-클래식
정명훈에서 임윤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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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젊은 음악가들의 노력과 도전이 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특히 클래식 분야가 돋보인다. 잇따른 수상 소식은 국내에서도 파란을 일으키며, 클래식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즘 K-클래식의 신드롬을 만나본다.
클래식 음악의 현재와 미래는 한국에 있다
K-컬처가 대세다. 마침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미국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K-드라마, K-팝의 인기는 한국인을 보는 시선을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눈을 돌려보면 K-클래식의 활약도 눈부시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콩쿠르마다 한국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22년에만 총 43개 대회 중 28개 대회에서 한국인 연주자 31명이 입상했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14명이,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7명, 비올라 콩쿠르에서 4명, 첼로 콩쿠르에서 6명이 각각 입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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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젊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노력과 도전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
우리나라 젊은 연주자들의 약진에 때맞춰 벨기에 출신 티에리 로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이 개봉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황수미, 피아니스트 문지영, 피아니스트 김윤지, 현악사중주단 에스메 콰르텟 등 한국 젊은 음악가들의 도전을 담았다. 2019년 7월부터 5개월 동안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자들의 삶을 필름에 담아낸 것이다. “한국 클래식 연주가들이 기술적으로만 뛰어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로로 감독은 “유럽에서는 한국인을 시칠리아 사람들에 비유한다. 풍부한 감정과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다혈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엄격한 한국식 훈육과 그것을 통해 예술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연주자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떨쳐내고 창의적으로 K-클래식을 발전시켜나가는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콩쿠르 입상 이후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한 연주자들의 노력, 독일 등 유럽에 살며 클래식 음악가로 활동하는 여정을 다루며 젊은 연주자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더불어 비전을 제시한다.
정경화와 정명훈에서 시작된 K-클래식의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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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은 전 세계에 한국의 클래식을 알렸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다. 정경화가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 후 데카에서 녹음한 일련의 작품이 호응을 얻었고,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에 입상한 이후 지휘자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그 벽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을 보고 따라 한 김연아 키즈처럼, 한국계 미국인 사라 장의 바이올린과 지금은 지휘자로 더 유명한 장한나의 첼로 연주를 본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쳤다.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건 2015년 조성진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우승하고 나서다. 이후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훈훈한 미풍은 거세게 몰아쳐 조성진 신드롬으로 옮겨붙었고, 클래식 음악이 주말 안방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KBS에서는 바르샤바에서 열린 우승 갈라 콘서트와 쇼팽 콩쿠르 본선 연주를 방송했다. 지상파 TV 화면에서 그의 표정과 호흡, 손가락 움직임이 생생하게 펼쳐졌고, SNS에는 조성진의 연주에 감동했다는 후기가 속속 올라왔다.

“모든 음표를 선명하고 깨끗하게 들리게 하는 부러운 능력의 소유자다. 분석을 멈추고 눈을 감고 그의 순수한 음악성에 빠져들었다”라는 로버트 게이너 등 외국 평론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은 발매된 지 한 달 만에 5만 장이 모두 팔려 추가로 5만 장을 더 찍으며 아이돌과 팝스타를 능가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클래식을 몰라도 조성진은 듣는다”는 팬층까지 생겨났다.

2015년 조성진에서 비롯한 열풍과 신드롬을 2022년 임윤찬이 이어받았다. 지난 6월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영상이 이 곡을 연주한 유튜브 영상 가운데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또 지난 8월 오후 해발 700m 평창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린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 첫날, 협연자로 참가한 임윤찬을 보러 이 작은 마을에 인파가 몰렸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외지인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한 주최 측은 무료지만 입장권 발매를 결정하고, 7월 신청 사연을 받아 8월 초 개별 통보한 티켓 수보다 많은 3,500개의 좌석을 준비했다. 이날 청중 수는5,000여 명으로 추산되었다. 주차할 장소가 부족하고 뙤약볕을 피할 데가 없었음에도 묵묵히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임윤찬 신드롬’의 위력을 실감했다.
QR코드 찍고, K-클래식을 입체적으로 경험해보세요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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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 11(Piano Concerto in E minor, Op. 11 – Final Stage of the Chopin Competition 2015)’
유튜브 역대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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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 2022 Cliburn Competition)’
세계를 사로잡는 K-클래식 성공의 힘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K-클래식이 힘을 발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은 우리나라 특유의 훈육과 아티스트들의 재능을 그 요인으로 꼽는다. 그는 “가정과 학교의 엄격한 훈육은 서양의 교육과 거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재주있는 애들이 기초를 닦고 컨트롤 안에서 성장한다. 그러한 훈육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일본, 중국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재능은 각종 콩쿠르의 수상자 내역만 훑어 봐도 알 수 있다. “예전부터 한국인이 유대인을 제치고 현악 1등이 될 거라고 외국 교수들이 얘기했죠. 성악도 마찬가지고,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재능 있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어요.”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인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끼, 재주, 재능이 있다. 경제 발전에 따라 경제력이 상승하고, 피아노를 직접 제조하며 악기 보급이 잘됐다”라고 설명하면서 “지금 연주력을 기르는 교육제도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기여한 바가 크다. 대학교수는 영재를 기를 수 없거나 규제가 많았다. 거기서 자유로운 한예종이 재능 있는 학생을 발굴하고 가르칠 수 있게 한 제도가 힘이 됐다”고 말했다.
관심과 애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음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아티스트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의 지원이 더욱 다양하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대도 늘어나고 전공생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음악적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으려면 재정적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럴 때 기업과 메세나의 중요성이 커진다. 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에 혜택을 줘서 선순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더불어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한국 클래식 음악인의 선전은 서구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클래식은 낯설고 어려우며 진입 장벽이 높은 예술이다. 앞으로 K-클래식의 공연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순수예술은 수익을 내기 힘들다. 클래식이나 순수음악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현대인의 정신문화를 순화시키는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정부 시책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보호해야 한다. 현재 두각을 나타내는 K-클래식의 인재들이 비단 나라를 빛내는 일회성 수상에 그치지 않고 자리를 잘 잡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두터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요컨대 K-클래식이 잘 가꿔진 정원을 넘어 천혜의 자연환경 속 울창한 삼림이 되는 것이다. 실력 있는 연주자층이 더욱 두터워지고, 그들이 좋은 곡을 연주하는 무대가 많아지면 한껏 귀가 높아진 우리나라 음악 팬들도 그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번성할 것이다.

K-클래식이란 용어 또한 인지도가 높지 않다. 해외에서는 K-클래식 하면 커피 머신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디빌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K-클래식이란 용어는 여전히 생소하다. K-클래식이란 용어 하나로 많은 연주자의 피와 땀을 편리하게 뭉뚱그리는 것을 경계하고, 세계로 도약하는 우리 연주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꽃들이 만발한 K-클래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계속 가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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