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제로라는 것은 저축 인센티브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저축이란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행위인데, 더 이상 이런 룰(Rule)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한 독설가의 표현을 빌자면, 현금이 쓰레기가 되는 세상이 된 것. 원론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현금을 들고 있으면 손해 보는 세상이 된 것은 자명한 듯하다.
자산시장 원리 중 하나는 현금 가치가 떨어지면, 자산 가치는 올라간다는 것이다. 최근 시장이 간혹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현금이 아닌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산이 올랐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식, 부동산, 금과 은 그리고 비트코인까지. 가파른 자산 상승과 반대로 소득은 정체나 감소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예로 보면, 고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 업종은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반면 대형 기술 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아마존, 구글, MS 등 대형 기술주의 주가는 엄청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자리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소득은 감소하고 있다. 과연 누가 부자가 되고 있는가? 당연히 이들 기업의 임직원과 주주들만 엄청난 보상을 받고 있다. 더욱이 대형 기술 기업들은 서비스 업종만큼 고용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자산 소유자와 소득이 줄어든 계층의 거리가 코로나19 사태 이전 보다 더 멀어지고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소득과 자산 가격의 간격이 가파르게 벌어졌고 이런 추세가 곧 멈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태가 끝나면 어쩌면 우리는 이전보다 심한 사회적 양극화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양극화는 다시 소비와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를까. 한국은 자영업 비중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에 큰 곤경에 빠져 있고, 설사 안정적인 기업체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급여 인상은 기대난망이다. 그런데 주식과 부동산은 빠르게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나이를 떠나 주식과 부동산에 매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소득 증가 가능성은 어두운데 자산 가격은 눈만 뜨고 나면 오르니, 어느 누가 투자에 뛰어들지 않겠는가. 소득이 막혀 있으니 자산에 베팅하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도 맞는다. 오히려 투기나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기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한 팬데믹과 같은 대형 이벤트는 안정성과 성장성에 질문을 던지는 시기이다. 기업에게는 혹독한 테스트 기간이기도 하다. 이들 앞에 놓인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계속 배당금을 지불할 수 있을까?' '신용 위험 없이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신용위험이 제기되는 산업이나 기업들이 이런 테스트 시기에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항공업이나 여행업처럼 신용 위험의 가능성이 제기되면 투자자들은 그 주식을 멀리한다. 안정적인 배당주라 하더라도 실적 부진으로 배당컷을 발표하면, 주가가 급락한다. 배당컷을 위험 신호로 투자자들이 해석하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보다 안정적이고 검증이 된 곳으로 돈이 모인다. 시쳇말로 되는 놈이 더 오른다. 안정성을 의심받는 투자처는 시장에서 냉대를 받는다.
반대로 성장의 꿈을 제공하는 곳은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다. 성장이 희소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이벤트는 이미 진행 중인 변화를 압축시켜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지식이나 기술이 확산되는 과정은 선형적이고 규칙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서서히 침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혹은 뜻하지 않는 이벤트가 등장하면서 그 활용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급속히 시장 전반으로 확산된다.
전쟁이나 대형 감염병 혹은 9·11 테러처럼 인류의 머리에 깊은 각인된 사건 등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급격히 바꾸어 놓는다. 예를 들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당시까지 발견 혹은 발명된 기술이나 제품을 압축적으로 테스트하는 시기였다. 비행기, 탱크, 공조기술 등은 전쟁 이후 인류의 삶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컬러TV, 자동차, 비행기,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은 전쟁이란 참혹한 시기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뤘다.
최근에는 코로나 19 이전에도 있었던 언택트, 바이오헬스케어, 전기자동차 등의 비즈니스가 팬데믹으로 그 침투 속도가 갑작스레 빨라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제조기업의 촉매 역할을 했다면, 코로나19는 언택트 등 비대면 비즈니스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