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3. 06. 13
요양시설 짓기보다
주거환경 바꿔 노인들의 행복지수 높인다
Global Senior Story ③ 독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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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 온 선진국의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기술과 조직,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Story 1. 미국: ‘스마트옷’ 입은 치매환자, 어디서 뭐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Story 2. 일본: 인생의 끝, 준비하지 않으면 ‘웰다잉’은 없다
Story 3. 독일: 요양시설 짓기보다 주거환경 바꿔 행복지수 높인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뮌헨은 시니어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일컫는 플레게하임(Pflegeheim)이 충분히 갖추어져 독일 내에서도 노인 복지 수준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뮌헨에서는 최근 노인을 대상으로 한 요양시설 확충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노인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한 새로운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업그레이드 된 주거시설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아무리 최신식 시설이 마련돼 있더라도 기꺼이 요양원에 들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자 하는 노인들이 몇이나 될까. 선뜻 자신이 익숙하게 살던 집과 가족을 떠나기는 그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몸이 아프고 쇠약해진 상태일지라도 자신이 줄곧 생활하던 주거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오랜 기간 행해진 노인 복지를 위한 방안들 중 하나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도시형 요양시설을 새롭게 바라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뮌헨에 거점을 둔 적록연정(grun-rote Koalition,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에 속한 시의회는 최근 요양원 등 노인 복지시설을 늘리는 방안보다는 노인 요양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기획과 특별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뮌헨 시민들 사이에서 노인 복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요구들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뮌헨의 깨어있는 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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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분홍리스트 일원인 뮌헨시 시의원 소피 랑마이어. 노인 삶의 질 개선과 자율성 보전,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그 가족을 위한 좋은 돌봄, 간병인의 근무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출처: 녹색당 분홍리스트 홈페이지)
뮌휀 시의원 소피 랑마이어(Sofie Langmeier)는 뮌헨시의 노인 복지에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녹색당 분홍리스트의 일원이기도 한 그녀는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이미 나이 든 세대에 속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현재 노인 문제 해결에 동참 중이다.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노인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녹색당 분홍 리스트(Grunen/Rosa Liste)는 뮌헨 시청과 시의회에 속해 있으면서 자발적인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시민연대로, 노인 문제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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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 볼트 도시개혁 연대 안느 휴브너 의장. 노인들이 빈곤과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활동 중이다. (출처: 사민당 볼트 도시개혁 연대 홈페이지)
또 다른 시민연대인 사민당 볼트 도시개혁 연대(SPDVolt Stadtratsfraktion) 의장을 맡고 있는 안느 휴브너(Anne Hubner) 역시 2020년 뮌헨시에서 도입한 ‘시니어 주거지 개혁’이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점을 비판하고 있다. 주거 양식 및 형태의 개혁을 시도한 이 프로젝트는 진정 노인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기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소통 없이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노인들의 주거문제에 접근해서는 노인 개개인의 복지는 결코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요양시설 확충 vs 주거환경 재조성
현재 뮌헨시는 복지제도 개혁에 대한 문제를 두고 두 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중 한 측인 뮌헨 시의회 정치인들은 복지시설 확충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노년의 삶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주거 형태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는 공공 수용시설 개선 문제를 떠나 개인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존중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거 형태를 마련하고 재조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시민들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된 지금의 복지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인의 안정과 취향까지 존중할 수 있는 세밀한 형태의 복지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뮌헨시의 사회 행정부처에서는 개별 요양시설의 수용 공간을 확충하는 계획을 이미 수립해 놓은 상태다. 이들은 오는 2030년까지 요양원 등의 시설에 1,000여 개의 노인 거주 공간을 확보하도록 하는 등 새로운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 요양시설의 현주소
요양시설 숫자나 수용 인원을 늘리는 것이 열악한 노인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책일까. 현재 독일에서는 요양시설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뮌헨의 경우 전체 요양시설의 3%에 해당하는 8,500여 개의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다. 또 300여 개 시설은 전문인력 부족으로 실질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다.

휴브너 의장은 지금이 독일 요양원과 각종 시설들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해가 갈수록 독일은 요양시설에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시니어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점은 미국, 한국 등 여러 국가들이 보여주는 트렌드와는 다소 상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용시설 형태의 요양기관들이 독일에서 기껏해야 10~15년 정도까지밖에 존속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이용자들이 입원 방식 요양시설을 평균 반 년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고, 점점 많은 시민이 요양시설이 아닌 다른 형태의 돌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선책 전락한 요양원 대체 주거 프로젝트 구상
“오직 치매환자만이 요양원에 오래 머물러 있다.”
요양시설이 다양한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음에도 독일 사람들은 노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장소로서 요양원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경향이 늘고 있다. 사람들은 치매와 중증질환처럼 요양보호사나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요양시설을 찾고 있으며, 다른 수단과 방법이 존재한다면 굳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추세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의 취향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유럽인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재 뮌헨시에서 재정비가 시급한 요양시설을 꼽아보면 그 수가 많지는 않다. 그렇기에 요양시설들을 재정비한다는 행정부처의 정책들은 노인들의 거주환경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시급한 것은 노인 요양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해결하는 일이다.

뮌헨 시의회 소속 정치인들은 도심 행정구역을 노인 복지와 관련해서 활용하는 방안에 있어서 플레게하임을 재정비하거나 새로 수립하려는 앞으로의 계획을 바꾸고, 노인 개개인의 주거환경에 초점을 둔 주거 프로젝트인 본프로엑트(Wohnprojekt)를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주로 사민당과 녹색당의 요구다.

이는 ‘요양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이전까지의 정책 방향을 ‘사는 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노년기를 수용기관에 의탁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금까지의 복지제도는 큰 범주 안에서 간호와 요양을 받아야 하는 불특정한 개인을 공공의 활동 영역 속에 가두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서 노인 각자의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지 세밀하게 측정할 필요가 있다.
라이프치히의 모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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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에서는 요양시설보다 자신이 거주하는 집과 익숙한 동네에 머물고자 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양시설 확충보다는 노인 거주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우선 사민당과 녹색당은 뮌헨시를 상대로 도시정비사업 일환으로 새로운 노인 요양소를 짓는 일을 그만둘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뮌헨시는 그동안 새롭게 정비하는 신도시 구역들에 특별히 새 요양원을 지어 시민들의 편의와 복지를 도모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요양시설은 이미 그 수가 충분한 까닭에 이를 더 늘릴 필요는 없다. 더구나 요양시설에 들어가 살기를 원하는 시니어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도시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사민당과 녹색당에서는 새 요양원을 지을 자금을 임대주택조차 보유하기 어려운 생활환경에 놓인 노인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방식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독일 동부에 위치한 라이프치히는 요양시설에 의존하기보다 시민 개개인이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노년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하고 세심한 방책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주지 돌봄, 즉 크바티어플레게(Quartierpflege)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통해 라이프치히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시니어들과 개별적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시니어들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시민들로 이루어진 이러한 봉사단체는 지역 내 거주민들의 실태를 자세하게 조사하는가하면 주민과 행정기관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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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돌봄,
즉 크바티어플레게(Quartierpflege)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통해
라이프치히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시니어들과 개별적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시니어들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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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로 노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중심으로 최대한의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노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생활환경을 떠나지 않고도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도시 행정처와 협상할 수 있다. 주거지 개조와 개선, 이웃과의 친밀한 교류, 의료와 간호를 받을 수 있는 개별적인 서비스 신청, 응급 상황에 대비한 설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책 차원에서 든든한 후원을 받는 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시민들은 안전한 공동체 속에서 깊은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노인들이 쉽게 처할 수 있는 불안정한 삶의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김수민 독일 베를린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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