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4. 10. 16
고령자 재취업 새로운 실험,
‘모자이크형 취업’ 뜬다
Global Senior Story ③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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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온 선진국들의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책적, 문화적, 관계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들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Story 1. 독일: 독일 시니어들 온라인 소통 활발, SNS보다 정보성 웹사이트 선호
Story 2. 미국: 병원 가기 어려운 치매 환자에 재택 카운슬링·테라피 서비스가 큰 도움
Story 3. 일본: 고령자 재취업 새로운 실험, '모자이크형 취업' 뜬다
Story 4. 호주: 은퇴 연령 점점 높아져, 지금 20세는 70세까지 일할 수도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이 본격화하고 있는 요즘, 건강한 장년층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를 중심으로 은퇴 이후 사회 참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은퇴 후 재취업을 비롯한 사회 참여는 노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 하는 당사자에게도 고민거리지만,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가 커지고 있는 지역사회에도 당면 과제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같은 고민을 해왔고 액티브 시니어의 일자리, 지역사회 참여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 ‘모자이크형 취업モザイク型就労’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시니어 사회 참여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현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자이크형 일자리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전일제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을 쪼개 여러 명이 나눠서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의 내용이나 시간, 지역을 세세하게 나누고, 참여자들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 하고 싶은 일 또는 잘할 수 있는 일을 모자이크형 취업을 지원하는 플랫폼에 신청한다. 신청자 한 사람의 일은 모자이크 조각에 해당하지만, 그것들을 합치면 한 사람의 몫이 된다는 의미에서 ‘모자이크형 취업’이라고 부른다.
고령자 맞춤형 ‘모자이크형 취업’, 앱 하나로 신청 가능
모자이크형 취업은 고령자에게 무리 없는 취업이나 사회공헌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고안해 낸 아이디어다. 퇴직한 시니어는 하루 3~4시간 등 일하는 시간을 유연하게 하고 싶어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것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을 찾고 싶어 한다. 생계보다 사회에 도움이 된다거나, 건강을 유지하고,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다양한 이유로 일자리를 희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모자이크형 취업을 가능하게 하려면 한 사람분의 일을 세세하게 모자이크 조각으로 나누는 작업과 이 조각들을 여러 사람에게 할당해 한 사람의 완성된 일로 꿰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복잡한 작업을 실행하는 것이 ‘GBER’라는 일자리 매칭 플랫폼모바일 앱이다. GBER란 ‘Gathering Brisk Elderly in the Region(지역의 건강한 고령자를 모은다)’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한 것으로 말 그대로 지역 내 시니어 일자리 매칭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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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ER는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시니어의 유연한 근로 방식을 고민하던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히야마 아쓰시 특임교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히야마 교수는 2011년부터 퇴직 후 시니어들의 보람찬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ICT를 활용하는 연구를 시작했고, 5년 정도 연구개발 끝에 일하는 시간, 장소, 스킬의 관점에서 직업을 매칭해 시니어의 생활 스타일에 맞는 구직을 지원하는 GBER 시스템을 고안했다.

GBER 플랫폼은 분해된 1인분의 일을 취업 조건인 시간·장소·스킬 3가지 관점에서 복수의 시니어 노동력과 매칭한다. ‘달력’스케줄 항목에서 참여자는 예정된 비어 있는 시간에 맞춰 지역 활동을 찾을 수 있다. ‘맵’위치을 통해 참여자의 생활권 내에서 지역 활동을 찾을 수 있고, Q&A관심 분야·전문성 항목에서 간단한 질문에 답함으로써 자신의 흥미와 기술에 따른 지역 활동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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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하순 지바현 가시와시의 민가에서 시니어들이 나뭇가지 치기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대부분 원예 경험이 없는 화이트칼라 출신의 퇴직자다. ©도쿄대학 홈페이지
GBER를 활용한 최초의 모자이크형 취업 실증 실험은 2016년 4월 지바현 가시와시에서 진행됐다. 가시와시의 도쿄대 캠퍼스에는 ‘고령사회 종합연구기구’가 있어 시니어 커뮤니티나 기업 등과 함께 초고령사회에서 고령자가 살기 좋은 지역을 디자인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가시와시의 첫 GBER 프로젝트는 나뭇가지 치기 등 정원 가꾸기 작업. 30명 정도의 시니어 그룹 ‘가든 서포터’가 참여했다. 그룹 회원들은 2개월 후까지의 자신이 일하고 싶은 희망을 GBER 앱의 달력에 등록한다. 지역 주민의 작업 의뢰를 받으면 그룹 리더는 GBER에서 멤버의 스케줄을 일람하고 작업 일정을 짠다.

일정이 정해지면 GBER 시스템은 취업할 수 있는 후보를 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작업장의 지리적 관계, 출동 횟수나 스킬을 고려해 실제 출동할 멤버를 결정한다. 1회 출동에는 보통 10명 정도의 멤버가 모인다. 갑작스러운 예정변경 등으로 출동이 어려워진 멤버가 있어도 대체 멤버의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교체도 무리 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보통 혼자서 하는 가지치기 작업은 반나절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모자이크형 취업은 팀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1회 근무 시간은 3시간 정도면 된다고 한다.
다른 지자체로 뻗어나간 GBER 프로젝트, 한계도 있어
GBER를 활용한 가시와시의 정원 가꾸기 모자이크형 취업은 2022년 3월까지 약 6년간 6000여 명의 고령자가 참가하는 성과를 이뤘다. 가시와시의 ‘GBER 성공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다른 지자체들도 GBER를 활용한 시니어의 지역사회 참여 사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2019년 9월 구마모토현 나가스초 실버인재센터에서는 향토 산업인 감상어鑑賞魚 경매 보조 일자리를 GBER로 모집했고, 농작물 수확 지원, 고령자 생활 지원 사업등에서 GBER가 사용되고 있다. 2021년 3월 도쿄도 세타가야구, 2022년 초 후쿠이현과 도쿄도 하치오지시에서 지역의 고령자나 고령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GBER 플랫폼이 활용되고 있다.

가시와시에서 태어난 ‘GBER’는 원래 시니어들의 재취업 매칭을 상정한 지원 앱이었지만, 이제는 일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나 평생학습, 취미 동아리 등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GBER를 활용한 모자이크형 취업이 정착하는데는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일거리를 찾는 고령자의 요구나 수에 비해 지역사회에서 제공되는 일자리 수와 종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단말기에 익숙하지 못한 고령자들에게 모바일 앱 GBER 활용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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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ER를 고안한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히야마 아쓰시(檜山敦) 특임교수.©도쿄대학 홈페이지
또 고령자가 지역 내 사업자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실제 업무보다 업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참여를 주저한다는점도 문제다. 시니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이벤트 등을 통해 지역 내 활동이나 사업자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GBER 개발자 히마야 교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BER를 통해 건강한 퇴직자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을 떠받쳐 주는 시스템을 만들면, 소수의 젊은 세대가 다수의 시니어 세대를 지탱하는 인구 피라미드가 아니라 다수의 시니어가 소수의 젊은 세대를 떠받쳐 주는 안정된 인구 피라미드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글. 김웅철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저자·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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