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5. 02. 05
전용 플랫폼, 대출상품 만들어
빈집 문제 해결한
Global Senior Story ②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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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온 선진국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책적·문화적·관계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Story 1. 미국: 의료 서비스부터 자아실현까지 커뮤니티서 노후의 삶 풍요롭다
Story 2. 일본: 전용 플랫폼, 대출상품 만들어 빈집 문제 해결한다
Story 3. 독일: 시니어와 젊은이가 어울려 미술관·박물관에 간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일본에서 고령화와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사회문제 중 하나는 ‘빈집’이다. 1인 가구 고령자 사망 또는 상급도시 이주 등의 사유로 거주자 없이 방치되고 있는 빈집이 늘고 해당 도시는 유령도시화가 가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빈집 문제 해결 위해 ‘거래 활성화’ 집중
일본 나라현奈良県 이코마시生駒市는 지난 1961년 뉴타운 개발이 한창일 때 만들어진 신도시였으나 60년이 지난 지금은 고령화와 함께 급증하는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던 이코마시는 2018년 기발한 처방을 내놓는다.

시는 그동안의 빈집 실태 조사에서 집주인들이 구매자와 부동산 업체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집주인들은 빈집을 매각하거나 임대하고 싶지만 어떻게 구매자를 찾아야 하고 어떤 거래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이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가 직접 빈집 유통 중개자로 나서면 어떨까?’ 이런 고민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코마 빈집 유통 촉진 플랫폼’이다. 빈집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시와 전문가들이 뭉쳤다. 부동산 관련 7개 업종에서 8개 단체가 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빈집 유통 특별팀이 구성됐다. 7개 전문 업종은 공인중개사, 건축사, 법무사, 은행, NPO법인지역밀착형 사회적기업, 감정평가사, 시공사건설사 등이다. 시는 플랫폼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국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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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빈집 하나하나에 대해 ‘진료 기록 카드’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환자의 건강상 문제를 파악해 기록하듯이 각 빈집 물건의 유통에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꼼꼼히 진단하고 기록한다. 진단에 따라 각 물건의 유통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이 마련되고, 처방 후 중고 주택시장에 상품을 내놓는다. 이런 진단과 처방을 거친 빈집들은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했다.

‘이코마 플랫폼’ 운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플랫폼 사무국인 시는 지역 내 빈집 소유자의 매각·임대에 대한 동의 취득이나 의향 확인 등을 담당하고, 이를 기초로 매월 개최하는 ‘빈집 유통 촉진 검토회의’에 빈집 물건 정보를 제공한다. 검토회의에서는 해당 물건의 유통 저해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전문가가 배정된다. 예를 들어 빈집 물건이 상속 등기가 되어 있지 않아 당장 매매가 불가한 경우에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와 법무사가 지정되고, 노후 물건의 경우 공인중개사와 건축사가 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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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된 전문가들은 빈집의 상황이나 소유자의 의향에 맞춰 구체적인 진단과 대응을 지원한다. 지원 내용은 물건의 거래 중개뿐만 아니라 물건의 철거 제안, 옹벽에 관한 조언 등 방재 및 안전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각 물건의 진단에 따라 전문 진단팀은 최적의 맞춤형 진료와 처방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의 성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2018년 5월 플랫폼이 가동된 후 2023년 말 기준 취급 건수 143건, 계약 성사 건수는 취급 건수의 절반이 넘는 76건에 달했다. 거래 이외에도 상속 등기, 내진 진단 등을 포함한 플랫폼의 전체 업무 실적도 103건72%으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 결과, 2016년 1444동이었던 이코마시의 빈집은 2023년 1306동으로 줄었다2024년 일본 고령사회백서.

시 측은 플랫폼의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빈집 소유자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어 빈집 거래는 더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플랫폼이 빈집 유통에만 머물지 않고, 빈집을 고쳐 민간의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으로 리모델링하는 등 빈집 활용을 통한 지역 과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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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시는 그동안의 빈집 실태 조사에서 집주인들이 구매자와 부동산 업체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집주인들은 빈집을 매각하거나 임대하고 싶지만 어떻게 구매자를 찾아야 하고 어떤 거래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이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가 직접 빈집 유통 중개자로 나서면 어떨까?’ 이런 고민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코마 빈집 유통 촉진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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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 안 되는 빈집 거래 위한 전용 대출상품 출시
그간 빈집 거래가 부진했던 요인으로 빈집 유통과 관련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지목돼 왔다. 빈집 구매 희망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빈집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 등이 적용되지 않아 구매를 단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빈집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노후 주택이나 목조 가옥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이 나오지 않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빈집 전용 대출상품 ‘아키카쓰 론アキカツ Loan’이다. 아키카쓰란 ‘빈집 활용’이라는 뜻으로, 이 대출을 활용해 빈집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아키카쓰 론은 빈집 소유주와 구매 희망자를 연결해주는 매칭 플랫폼 ‘아키카쓰 내비Navi’와 개인 융자보증 회사 ‘오리엔트 코퍼레이션Orient Corporation·오리코’이 손잡고 2023년 3월 내놓은 빈집 전용 대출상품이다. 빈집의 구매 자금뿐만 아니라 구매 후 리모델링 자금, 해체 자금 등 빈집 관련 다양한 자금 수요에 대응하는 활용성 높은 무담보 소비성 대출이다.

지역 금융회사가 대출을 제공하고 오리코가 보증하는 방식이다. 이용 상한액은 1000만 엔, 대출기간은 15년이다. 아키카쓰 내비는 사이트에서 대출 시뮬레이션(매월 지불액 확인 등)이나 신청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대출 절차를 편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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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카쓰 론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상품 판매를 시작한 2023년 6월 이후 3개월간 200건 이상 대출 신청이 있었고, 취급 지역 금융회사도 초기 20개에서 25개로 늘어났다. 지역의 대출 취급 금융회사 확대로 고객이 전국 각지의 금융회사를 선택해 아키카쓰 론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빈집 유통이 활성화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기대했다.
가파른 빈집 증가 문제 해결 위해 특별법 제정
인구 감소와 고령화 가속에 따라 일본의 빈집 증가세는 가파르다. 일본 총무성이 올해 4월 발표한 ‘2023년 주택·토지 통계조사’에 따르면 총 빈집 수는 900만 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빈집 비율도 13.8%로 사상 최고로, 1993년부터 30년간 2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023년 10월 1일 기준).

일본 정부는 빈집 중에서도 임대나 매각 예정이 없는 소유자 불명의 ‘방치 빈집’이 급증하는데 따른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 방치 빈집은 385만 호로 전년보다 37만 호나 늘었다. 악성 빈집의 증가는 붕괴 우려나 지역 환경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재해가 발생했을 때 복구 작업에도 방해가 될 수 있어 정부나 지자체는 법이나 조례 제정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빈집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조치로 2015년 방치된 빈집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빈집 대책 특별조치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그동안 주택용지에는 과세표준을 최대 6분의 1까지 줄이는 특례를 적용했지만, 붕괴 위험성이나 위생상 유해성이 있다고 지자체가 판단한 ‘악성 빈집’은 우대 조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6배에 달하는 세금 압박을 통해 빈집 소유자들이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23년 말 빈집 대책 특별조치법을 개정해 빈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도 징벌적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창문이나 벽의 일부가 부서져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관리 부실 빈집’에 대해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택용지 특례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통의 빈집이 악성 빈집으로 악화하기 전에 빈집 활용이나 철거를 재촉하겠다는 의도다. 개정법에는 또 ‘빈집 활용 촉진 구역’을 설정해 빈집의 용도 변경이나 재건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에는 저층 주택 전용 지역 빈집을 점포나 카페로 용도를 변경하는 게 어려웠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빈집 활용의 폭을 넓힌 것이다. 일본 정부는 빈집의 다양한 활용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 김웅철(지방자치TV 대표·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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