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3. 03. 08
오래 내고, 늦게 받고, 보호막은 두텁게
초고령사회 일본, 연금 제도 개혁에 재시동
Global Senior Story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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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생활에 있어 가장 큰 걱정거리는 돈과 건강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 정부의 연금과 의료 관련 정책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급속한 고령화를 맞고 있는 독일과 일본은 연금 제도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 만나봤다. 미국 정부가 고령자 의료정책을 펼치는 데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Story 1. 독일,
연금 받는 나이 70세로 올리라고?


Story 2. 일본,
오래 내고, 늦게 받고, 보호막은 두텁게


Story 3. 미국,
건강 격차 줄이고, 요양원 품질 개선 나선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 일본이 공적연금 제도 개혁에 또다시 시동을 걸었다. 2004년 경제 상황에 맞춰 연금 수급액을 조정하는 ‘매크로 슬라이드 방식’ 대수술을 감행한 지 약 20년 만에 일본의 연금 제도가 다시 수술대에 오를 참이다.

연금 개혁 배경에는 가속화하는 ‘저출산 고령화’ 상황이 있다. 연금을 내는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연금을 받는 고령자 숫자는 날로 늘어나는 게 작금의 초고령사회 일본의 구조적 문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처지는 오히려 일본보다 나쁘다. 일본 연금 제도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이유다.

2022년 10월 25일, 일본 후생노동성(한국의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역할 담당) 산하 ‘연금부회(部會)’가 첫 회의를 열었다. 정부 관계자, 연금 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 연금 제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정부 위원회’ 같은 조직이다. 연금부회는 앞으로 2년간 논의를 통해 새로운 연금제도 개혁안을 도출, 이듬해인 2025년 중에 실행에 옮기겠다는 플랜을 제시했다.

개혁 논의 핵심은 2가지다. 첫째 국민연금 납부 기간을 지금보다 5년 늘리겠다는 것. 둘째는 후생연금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납부 기간을 늘려 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후생연금 적용 대상에 아르바이트 등 단기근로자를 더 많이 포함시키고,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 종사자도 후생연금 대상에 넣어 공적연금 보호막을 두텁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일본의 연금 수술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공적연금 구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일부 직역연금(공무원·사학연금 등)을 제외하고는 국민연금 1층 구조로 돼 있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2층 구조다. 1층에는 20~64세 전 국민 가입이 의무화돼 있는 국민연금(기초연금이라고도 한다)이 위치하고 2층에는 직장인, 공무원 등이 가입하는 후생(厚生)연금이 자리한다.

학생·주부·자영업자는 국민연금 대상자다. 이들은 1층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수령액을 받지만 직장인과 공무원은 공적연금+후생연금 2층의 공적연금을 받는 구조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만액(滿額) 기준 월 6만5000엔(약 62만5000원, 100엔당 960원 환율 적용)이고 보험료는 매달 1만6540엔을 낸다.

후생연금 평균 수령액은 평균 월 14만6145엔으로 국민연금의 2배가 넘는다. 보험료는 피보험자 소득의 18.3%(한국의 경우 9%)를 사업주와 피보험자(본인)가 절반씩 나눠 낸다. 직장인, 공무원의 후생연금 보험료에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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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납부 기간 5년 연장해 수급액 늘린다
이번에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1층에 위치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납부 기간을 현행 40년(20~59세)에서 45년(20~64세)으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 이번 연금 수술의 가장 큰 포인트다. 납부 기간이 5년 늘어나면 1인당 연간 100만 엔의 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 5년 더 내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수급액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하지만 벌써부터 일본 열도는 ‘연금 노이로제’가 재발하는 분위기다.

“이제 겨우 (연금 납입이) 끝났나 싶었는데 또 연장한다고요? 물가 인상으로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는 판에 연금까지 더 내야 한다니 걱정이네요(60세 주부).” “앞으로 받을 수령액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더 내라고요? 절대 납득할 수 없습니다(40대 자영업자).” “우리가 내는 돈으로 노인들이 연금 받고 있는데, 우리는 정작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닙니까. 정말 화가 납니다(20대 중반 대학생).” 일본의 한 방송국이 국민연금 납부 연장조치에 대한 거리의 반응을 들어본 결과,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다.

일본 정부가 이런 불만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현행 연금 제도를 수술대에 올리려고 한 데는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다. 저출산 고령화 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과거의 플랜’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정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들여다보자. 일본의 고령화 양상은 유럽의 고령 선진국이 겪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고령자 인구 증가와 현역 세대 감소가 동시에, 그것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0만 명(고령화율 약 28%, 고령화율: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불린다)에 달한다. 고령인구가 20년 후에는 300만 명 늘어 약 4000만 명으로 확대된다. 반면 이른바 ‘현역 세대’로 불리는 생산연령 인구(15~64세)는 2020년 7450만 명에서 20년간 무려 20%(1500만 명) 줄어든다. 현재 현역 세대가 부양하는 고령자 인구는 2.1 대 1명. 2040년에는 1.4까지 감소해 현역 세대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연금재정 안정화와 관련해서는 2022년 4월에도 주목할 만한 조치가 단행됐다. 수급 개시 상한 연령을 5살이나 올렸다. 기존에는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70세까지 미룰 수 있었는데 이를 75세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도 변경 내막에는 일하는 고령자는 가급적 연금수령 시기를 늦출 수 있도록 여지를 확대, 이를 통해 연금재정에 부담을 덜어보자는 것으로 읽힌다.

일본 당국은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연기한 데 따른 혜택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연금 평균이 월 14만6145엔일 경우, 연금개시 연령을 65세에서 5년 연장해 70세부터 수령하면 42%가 증가한 20만7500엔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에 시행된 75세까지 미루면 65세 수령액보다 84% 증가한 26만8900엔이나 된다고 홍보한다. 반면 60세로 수령 시기를 앞당기면 월 11만1000엔으로, 수령금액이 24% 감소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연금 내는 시기를 늘려 연금 재정을 키우고, 연금 받는 시기는 미뤄 연금 곳간의 수급 밸런스를 안정화하려는 조치가 초고령사회가 본격화한 일본의 불가피한 연금 선택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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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연금 적용 대상 확대해 연금 사각지대 줄인다
국민연금 납부 기간 연장과 함께 ‘10·25 연금 수술 회의’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후생연금 적용 대상 확대다. 현재 일본의 후생연금은 종업원을 고용하는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 법인 사업소와 국가 지방공공단체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상시 5명 이상 종업원을 두고 있는 개인사업자도 의무가입 대상이다. 하지만 개인사업자 가운데 숙박, 음식점, 미용원 등 서비스업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비정규직 단기근로자(주 20시간 미만)의 경우는 그동안 5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할 경우에만 후생연금 가입 대상이었지만, 2022년 10월부터는 101명 이상의 직장에서 일할 경우로 가입 문턱을 낮췄다. 100명 이하 법인의 단기근로자는 해당 기업에서 후생연금을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후생연금 적용 대상이 이번 개혁회의에서 수술대에 오른다. 먼저 법인의 비정규직 단기근로자의 경우 2024년부터는 51명 이상 직장에서는 모두 후생연금에 가입해야 하고, 앞으로 아예 기업 규모 요건·제한을 철폐해 나간다는 게 일본 정부의 생각이다. 또 현재 가입 면제 대상인 숙박업·음식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종업원을 후생연금 가입 대상에 넣는 것도 연금개혁회의는 검토 과제로 포함했다. 연금 사각지대를 없애 나감으로써 공적연금 보호층을 두텁게 쌓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과 서비스업 대상자들이 연금에서도 불리한 처우를 받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금 사각지대를 줄여나감으로써 추후 연금 재정이 담당해야 할 부담을 사전에 피보험자와 사업주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고 꼬집는다. 결국 연금 곳간을 최대한 채워 놓겠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의 사각지대 해소 방안의 허들은 만만치 않다. 후생연금은 보험료(급료의 18.3%)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 재정 여력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영세 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을 입은 여행업이나 음식점 등 서비스업 사업자에게 후생연금의 부담을 지우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다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생연금 대상이 되는 단기근로자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피보험자들도 10%에 달하는 연금보험료의 원천징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물가의 지속적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험료 납부에 대한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언론이 이번 연금개혁 검토를 계기로 시산해 본 결과, ‘시급 1만 원, 1일 5시간, 월 20일’을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월 급료는 약 10만 엔. 이 직원이 후생연금에 가입할 경우 보험료(본인 절반 부담분)는 8967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은 전 세계 고령화의 교과서라고 한다. 특히 공적연금이나 보험 등 사회 제도가 비슷한 한국에 일본은 훌륭한 참고서다. 연금 수술에 나선 일본의 배경, 특히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이 한 수 위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계출산율 0.8(일본 1.3)을 밑돌고, 고령화 속도도 일본을 앞선다. 2045년에는 고령화율도 일본을 추월해 세계 1위에 등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의 연금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또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김웅철 매일경제TV 국장·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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