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나
1. 국민연금 개혁 흐름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고, 연금을 100% 수령할 수 있는 연금 납부기간(기여기간)을 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했다. 프랑스뿐이 아니다. 독일, 스웨덴을 비롯한 이웃 나라 일본까지 과거 전면적인 연금 개혁을 단행한 국가들에서도 연금 적자의 심각성을 근거로 또다시 연금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통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4차 발표 시점대비 2년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상이 발표되면서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저출산 고령화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과 65세 이상 인구의 노인 빈곤율이 40%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점 등 국민연금 의존도가 높은 상황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적연금은 더 많이 내거나, 적게 받거나, 늦게 받는 방향으로 개혁이 진행돼 왔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개혁 방향 역시 이와 같은 흐름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전망이다.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공적연금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노후소득 설계에 있어, 노후 생활비의 기본 토대가 되는 공적연금 의존도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적연금이 현실적인 대비책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 여러 선진국에서도 사적연금을 자동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함으로써 국민연금을 보완할 노후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또한 정부가 사적연금에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공적연금 납입액의 일부를 사적연금으로 환입하는 제도를 운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사적 연금계좌(퇴직연금 + 연금계좌)에 세제혜택을 주고 있으며,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공적연금의 개혁 흐름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적연금 비중 강화가 이제 불가피해졌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라면, 제도와 금융상품들을 활용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적연금을 늘리고 연금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절세혜택이 큰 금융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다. 연금은 장기간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적은 세금이라도 아끼면 장기간 누적되어 큰 성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연금자산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며 운용을 할 필요가 있다. 연금자산의 수익률이 점점 더 노후자산 마련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사적연금 자산을 축적해, 공적연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선진국들에서 실시된 크고 작은 연금 개혁이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인구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다가온 미래다. 공적연금 개혁을 불가피한 현실로 판단해 사적연금 활용에서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을 택할 필요가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대비해야 한다. 출발선에 서자.
국민연금은 1988년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4년 후인 1992년에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2003년~2007년에는 1인 이상 근로자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사업장 전체에 국민연금제도가 적용됐다. 사업장 가입자뿐만 아니라 1995년엔 농어촌지역, 1999년엔 도시지역 가입자까지 범위가 확대되면서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포괄하는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자리 잡았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1988년 443만 명에서 2021년 2234만 명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84.6%(2021년 기준)가 공적연금제도에 가입하고 있는데, 국민연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연금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후소득 준비 수단이 되고 있다.
제도를 도입할 당시부터 국민연금은 저부담, 고급여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처음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소득대체율은 70%였다. 즉, 국민연금에 40년 가입하면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7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이렇게 연금액은 큰 데 반해 보험료는 적었다. 가입자는 소득의 3%만 보험료로 납부하면 됐다. 이 중 절반은 사업자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그만큼 초창기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였다. 국민연금제도 도입 후 보험료율을 2차례(1993년 6%, 1998년 9%) 인상했지만 국민연금의 저부담, 고급여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199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 기금이 2033년에 소진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국민연금제도의 지속적인 수정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 유지기간을 늘리기 위해 1998년 1차 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연령은 60세에서 65세로 상향조정했다. 그 결과 제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에서 나타난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으로 기존 예측(2033년 소진) 대비 13년 연장됐다.
더 나아가 정부는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을 근거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5.85% 높이고, 급여의 소득대체율 수준을 60%에서 50%으로 내리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인 ‘안티 국민연금사태’와 같은 국민적 반발에 부닥쳐 해당 법안은 없던 일이됐다.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일어난 배경은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라는 취지를 내세워 국민연금이 노후소득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4년 ‘노후소득보장 사각지대 해소 대책위원회’를 설치해 해법을 모색했고, 2004년~2007년까지 국회 합의를 거쳐 제2차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했다. 기초노령연금제도와 크레딧(조건에 해당하면 보험료 보조) 제도를 도입해 노후소득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한편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소득대체율 60%에서 40%로 낮춰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겠다는게 골자다.
2차 국민연금 개혁안을 관철시키는 데 진통이 있었지만, 결국 법안은 통과되었고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로 정착됐다. 2차 개혁 결과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0년으로 종전 재정계산된 소진 시점(2047년)에 비해 13년 연장됐다(2008년 제2차 재정계산 결과).
국민연금제도 시행 후 20년 동안 2차례에 걸쳐 제도 개혁을 추진했지만, 기금 소진 시점은 재정계산 때마다 빨라지고 있다. 2018년 제4차 재정계산에서 산출된 국민연금 기금 소진시점은 2057년이었고, 2023년 제5차 재정계산에서는 2055년으로 또 앞당겨졌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노인부양비(18~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급속도록 증가하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인부양비는 2023년 27.1%에서 2081년까지 110.9%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국회 연금개혁위원회 및 민간자문위원회에서 여러 개혁 안건을 두고 논의 중이지만, 전문가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현행 보험료율 9%를 10년에 걸쳐 15% 수준까지 올리는 대신에 목표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안과 목표 소득대체율을 기존대로 유지(40%)하고 보험료율만 인상하는 안이 팽팽히맞서 있다.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 의하면 국민연금 기금을 고갈시키지 않는 필요 보험료율은 17~24%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보험료율을 인상하면,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가입자들의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결국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낮추거나 연금개시연령을 뒤로 늦추는 방식으로 개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불가피하게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은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공적연금의 기능 축소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도 공적연금이 축소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