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3. 06. 05
인생의 끝, 준비하지 않으면
‘웰다잉’은 없다
Global Senior Story ②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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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 온 선진국의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기술과 조직,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Story 1. 미국: ‘스마트옷’ 입은 치매환자, 어디서 뭐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Story 2. 일본: 인생의 끝, 준비하지 않으면 ‘웰다잉’은 없다
Story 3. 독일: 요양시설 짓기보다 주거환경 바꿔 행복지수 높인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노인 대국 일본에는 팔순(八旬)이 넘은 어르신이 1,230만 명이나 된다. 200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 17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보니 사망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22년 기준 연간 사망자 수가 14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다사(多死) 사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사망자가 많아지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2025년 한국도 ‘어르신’ 인구 비율이 20%를 돌파,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일본처럼 ‘죽음’이라는 인생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주체적 죽음을 위한 ‘종활’의 등장
일본에서는 웰다잉 대신에 ‘종활’(終活, 일본어 발음 ‘슈카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종활이란 마지막이라는 뜻의 ‘종(終)’에 활동의 ‘활(活)’을 조합해 만든 조어다. 위키피디아는 종활을 ‘인생의 끝을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로, 사람이 스스로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와 이와 관련한 삶의 총괄 활동’으로 정의한다.

종활이라는 말은 2009년 여름 주간아사히(週間朝日)가 ‘현대 종활(終活) 사정’이라는 연재기사를 게재하면서 대중에게 첫 등장한다. 연재 초기에는 주로 장례나 장묘에 관한 정보와 사전 준비 요령이 담겼다가 후반에는 죽음 준비를 넘어 현재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준비로 개념이 확장됐다.

2011년 3월, 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북대지진의 참사는 일본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에 종활카운슬러협회 등 다양한 단체가 출현했고, 이들 단체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종활 강좌가 생겨났다. 정부(경제산업성)도 ‘안심과 신뢰가 있는 라이프엔딩 스테이지 창출을 향해’(2011년)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웰다잉 관련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종활은 상속·재산정리·연명치료·간병·치매·유품정리까지 폭넓게 끌어안으면서 범위를 넓혔고, 2015년에는 관련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은 엔딩산업전(ENDEX·Ending Expo)이 성황리에 개최되면서(200개사 참여, 2만 명 방문),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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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X 2022 전시회에는 유골함, 영구차, 제단 장식품 등 다양한 장례식 관련 상품 서비스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참여했다. <ENDEX JAPAN>
종활 4대 부문: 여생설계, 생전정리, 장례·장묘준비, 엔딩노트
종활은 여생의 생활설계, 생전정리, 장례·장묘의 준비, 엔딩노트 작성 등 4대 부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생(餘生) 생활설계’는 종말기 거주형태, 즉 자택에서 보낼지 고령자 시설에서 보낼지 결정해 두고 준비하는 것이다. 간병·돌봄에 대한 희망, 연명 치료에 대한 의사표시를 분명히 해두는 것도 포함된다.

‘생전(生前)정리’재산이나 소지품 정리, 상속 재산 처분 등이 해당한다. 유언장 작성이 중요한 활동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유품 처리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장례식을 원하는지, 장례식에 누구를 부를 건지, 묘지와 묘석, 수의, 영정사진 등은 어떻게 할 건지는 종활의 대표 항목이다.

‘엔딩노트’종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기 때문에 법적 효력은 없지만 종활 계획서로서 중요한 활동이다. ▲본인의 정보 ▲가족·친척·친구 정보 ▲의료·간호에 관한 희망 ▲재산 정보 ▲장례·매장 희망 ▲기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한다.
생전계약, 축구공 유골함, 데스카페... 다양해진 종활 트렌드
종활의 확산은 일본 고령자들의 죽음 관련 라이프스타일을 바꿔가고 있다. ‘생전계약(生前契約)’이라는 게 있는데, 자신의 사후에 필요한 수속, 절차 등을 살아있을 때 미리 계약해 두는 것을 말한다. 독거노인이 생전에 장례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사후절차를 위탁하는 것이다. 장례뿐만 아니라 신원보증이나 재산 관리에서부터 안부 확인이나 간병과 같은 일상생활도 서포트해 준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2020년 4월부터 ‘1인 신탁’이라는 생전계약 신탁상품을 선보였다. 돌봐줄 가족과 친인척이 없는 독신자를 대상으로, 생전에는 주로 안부 확인, 사후에는 엔딩노트에 기재된 희망에 따라 서비스한다. 수탁금액은 300만 엔 이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령자가 주요 고객이다.
유통그룹 ‘이온’은 2016년부터 ‘이온라이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온 센터가 가족을 대신해 신원보증인이나 긴급 연락처 응대를 맡고, 긴급 입원 시 절차를 대행해 준다.
종활 사이트 가마쿠라신쇼(鎌倉親書)의 ‘좋은 생전계약 서비스’는 기본요금 25만 엔 정도의 저가형 서비스로 보험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의 반납과 사망신고, 납세나 연금 신고, 부고 연락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고인이 사랑했던 풍경사진을 코팅한 관,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던 고인을 기려 만든 축구공 유골함, 고인이 좋아했던 보석으로 수놓은 서양식 여성 수의(壽衣), ‘에필로그 드레스’도 인기다. 에필로그 드레스는 1,500만~2,000만 원이 넘는것도 있다.

타워형 납골당의 등장도 종활이 낳은 비즈니스다. 이 납골당은 주차빌딩처럼 번호나 카드를 대면 타워에 비치된 납골이 참배 부스로 자동 이동 되면서 참배를 하는 방식이다. 핵가족화로 가족묘가 사라지고, 후대에 조상 묘지 관리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납골 빌딩’을 출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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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활 관련 강연 중인 종활카운슬러협회 무토오 요리코 협회장.
<종활카운슬러협회>
일본에서는 같은 장소에 납골묘를 마련한 고령자끼리 교류하는 사람을 ‘묘 친구(墓友)’로 부르는데, 저세상을 함께 준비하는 동창생쯤 된다. 묘 친구들은 매년 벚꽃이 필 즈음 한자리에 모여 시를 낭송하거나 애도식을 갖고 먼저 간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다.
카페에서 커피나 다과를 즐기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스 카페(Death Cafe)도 있다. ‘죽음 준비 교육장’인 셈인데, 이 같은 죽음 커뮤니티가 2011년 동북대지진 이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지자체의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
다사사회가 본격화하면서 간병과 함께 임종(죽음)도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초 요코스카(横須賀)시에서는 고독사한 노인이 남긴 쓸쓸한 ‘생전 편지’가 공개되면서 충격을 줬다. 시는 그해 7월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후 절차를 지원하는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을 시작했다. 시청에 담당창구를 두고 고령자의 희망에 따라 장례업체와 생전계약을 체결하도록 중개해 준다. 비용은 20만 6,000엔 정도. 시는 장례업체에 일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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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스카시의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 팸플릿 표지
<혼자 살아서 장례나 봉안(납골) 등이 걱정되는 분에게>. <요코스카시 시청>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야마토시(大和市)는 1인 세대 종활을 지원하는 전용 창구를 설치하고 종활 컨시어지(집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종활 컨시어지는 장례·납골 이외의 방 정리나 유품정리, 상속 재산 처분 등 다양한 상담을 한다.

일본 종활의 등장 배경인 가족 관계의 소원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독거 고령자의 증가 등은 한국의 현재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에서 웰다잉을 통한 주체적인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데, 일본의 종활이 참고 사례가 될 만하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김웅철 매일경제TV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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