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기술직 도전!
퇴직 5년 전부터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
50대, 계륵 같은 나이다. 일하기는 싫고 생계 때문에 은퇴할 만한 상황이 아니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먹으면 꽃놀이패다. 일을 더 할 수 있는 나이면서 은퇴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50대가 되면 모든 게 하향 곡선이다. 존재감, 학습 능력, 건강, 재정 능력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가정에선 반려견 다음의 맨 끝 서열로 밀리고,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친구들과도 소원해진다. 특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믿었던 건강마저 흔들리면서 갈 때까지 간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바로 인생 2막이 답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게 권태와 무료함이라고 한다. 권태는 반복되는 일상이거나, 하는 일에 의미가 없거나, 하루하루가 재미없거나, 오늘은 또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삶이다. 은퇴 후 권태와 무료함 속에서 허덕이지 않기 위해, 퇴직 전 뭐라도 했어야 한다고 매일 후회 속에 보내지 않기 위해 나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웠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내 인생 2막에서도 일을 통해 적절한 만큼의 돈을 벌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내 몫을 해내고 싶었다.
필자는 2016년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하며 주경야독하다 드디어 2021년 2월, 33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했다. 남들은 실업급여를 타먹으라고 했지만 나에겐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업급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5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 조경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2년의 세월이 후딱 갔다. 이제 비로소 인생 2막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일하면서 좋은 점은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고, 잠자리 또한 편안하다는 것이다.
2015년 10월, 5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고정된 월급을 받던 정규직 월급쟁이에서 매년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엄동설한에 잠옷 바람으로 문밖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을 대략 5년 정도로 잡았다. 그 5년 동안 무엇을 배워 어떻게 먹고살까를 고민했다.
먼저 투자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려했다. 가장 폼 나는 직업이다. 하지만 33년 동안 금융투자업에 종사하며 약간의 단맛과 상당량의 쓴맛을 직접 깨달은 바, 나는 전업투자자로서 그렇게 탁월한 재능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음은 사업을 일으켜 먹고사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빈 상가가 속출하고 여기저기 자영업자들이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며, 이 역시 접게 되었다.
먹고사는 마지막 방법은 노동을 파는 일만 남는다. 노동에도 나름 서열이 있다. 머리를 쓰는 사무직과 근육을 쓰는 기능직이다. 이른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다. 머리로 먹고사는 직업이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나름 폼 나 보여도 스트레스는 기능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적과 진급을 위해 과도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경쟁 또한 뜨겁다. 반면 근육을 쓰는 직업은 일하는 공간이 척박하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은 물론이고 때론 몸이 축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 머리를 쓰는 직업에서 일해온 나였다. 몸의 편안함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차라리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래서 기능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5년 동안 배운 기능을 나열해 보자면 도배, 굴삭기, 지게차, 대형 면허, 타일, 동부기술교육원 건축 인테리어과 졸업, 건물보수과 졸업, 전기공사과 졸업, 소방안전관리자, 미장, 조경 등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기능을 그리 많이 배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각각 기능의 장단점과 한계 등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내게 맞는 직종을 택할 수 있었다. 지면상 모든 기능을 소개할 수 없어 아래의 여섯 가지 기능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무료 교육과정과 친구 찬스,
모든 기회를 활용해 배워라
서울 강동구 명일역에 위치한 동부기술교육원. 이곳에서 건축인테리어과, 건물보수과, 전기공사과를 차례로 졸업했다.<사진:필자 제공>
서울동부기술교육원 3과 서울동부기술교육원에서 2016년 8월 건축인테리어과, 2018년 2월 건물보수과, 2018년 8월에 전기공사과를 차례로 졸업했다. 서울동부기술교육원은 강동구 명일역에 있고 전액 무료다. 서울에 주소를 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 경쟁률은 대략 3 대 1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야간은 주로 직장인이 수강한다. 6시30분에 수업이 시작되고 9시40분에 끝난다. 6개월 과정인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도 있다.
건축인테리어과에서는 콘크리트 건축물 구조와 이론에 대해 배웠다. 한옥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목공 연장과 전동공구를 직접 다뤄보고 몇 가지 가구도 만들어봤다. 그때 만들었던 소형 테이블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이론 수업반, 실기반으로 진행된다.
전기공사과는 이론 수업 비중이 높다. 전기기능사 시험을 보려면 수업을 대충 들어선 안 된다. 처음 몇 주간은 무척 힘든 시간이다. 사인, 코사인, 탄젠트 등 삼각함수가 나온다. 전기기능사 시험은 학기 중 한 번이라 방심하면 졸업할 때 자격증을 못 딸 위험이 높다. 필기에 붙었다고 하더라도 실기가 또 있다. 실기 또한 만만치 않다. 나도 교육원을 수료한 후 사설 학원에서 실기반을 몇 번 듣고 합격했다.
앞선 두 개의 학과보다 건물보수과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두 분의 교수님이 조화를 이루어 잘 이끌어주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분은 목공, 도장, 방수를 담당하시는데 위트가 있고 재미있는 분이다. 다른 한 분은 조적, 미장, 타일을 담당하시는데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수업을 진행하신다. 조적실습 시간에 만들어봤던 아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모르타르(모래+시멘트+물) 공급부터 시작하는 바닥 미장. 10~12시간 정도 작업해 여름엔 오후 5~6시, 가을과 겨울엔 밤 9~10시에 끝났다.<사진:필자 제공>
미장 친구 중에 아파트 바닥 미장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마침 동부기술교육원에서 미장을 배웠으니 그 친구를 통해 현장 경험을 해봤다. 벽 미장과 달리 바닥 미장은 허리를 구부리고 하는 것이라서 더욱 힘들다. 몇 번 영혼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친구 말마따나 뱃일 다음으로 힘든 게 미장이었다. 그래서 빡세게 25일 정도 일하면 개인당 1,000만 원을 가져가기도 한다.
미장 실습은 2017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년 4개월 정도 무급으로 주말마다 따라다니다 그만두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해서는 몸만 피곤하고 기능이 생각만큼 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 또한 민폐이기도 했다.
조경 선릉역에 친구 직장이 있어 자주 갔다. 점심시간에 선릉을 산책하다 선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 근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집 가까이에 헌릉이 있어 아내와 산책을 해보고 선릉보다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었다.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선왕릉과 고궁 관리 채용공고에 응시하기 위해 조경을 공부했다.
필기는 독학으로 했고 실기는 학원을 다녔다. 실기는 제도였는데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국비지원이 되는 곳도 있고 안 되는 곳도 있다. 조경이 나무와 숲을 관리하는 일이라 좋을 것 같지만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거름 주고, 잔디 깎고, 전정(가지치기)하는 일이 모두 땡볕에서 하는 일이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낭만 하나로 시작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고 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다.
퇴직 후의 계획은 미리미리 세워두는 것이 좋다. ‘닥치면 하지’라는 생각은 항상 후회를 동반한다. 계획한 일은 가급적 일찍, 회사일이 바쁘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무조건 몸으로 부딪쳐봐야 한다. 고생할 각오가 필요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그렇지만 대충 하겠다거나 일단 맛이나 보겠다고 시작하면 답이 없다. 자신이 몸담은 직업과 관련이 없는 생소한 분야의 일이라 해도 5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치면 어느 정도 손에 익힐 수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워크넷, 시설잡 등에 접속해 구직에 대한 정보 등을 미리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금까지 기능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과 발자취를 회상해 봤다. 회사 퇴직 후의 경과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은퇴 전 습득했던 기술 및 자격을 살려 시설관리직을 비교적 오랫동안 맡을 수 있었고, 5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 조경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첫 직장 월급이 220만 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330만 원으로 인상됐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적당히 힘든 일에 적당한 급여다.
지금의 나를 평가해 보면 생활은 궁핍하지 않고, 생각은 어지럽지 않고, 마음은 심란하지 않다. 잠자리는 편안하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폼 나는 명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 버리고 또 무엇이 내 2막을 열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다 보면 조금씩 넉넉함의 밀물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퇴직 전에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눈높이를 더 낮췄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지 않아 좋다. 최선을 다한 인생 전반, 그리고 퇴직 준비 5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