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순간마다 인간을 움직인 건 이성보다는 욕망이었다. 취향은 경험이 되고, 경험으로써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해간다. 행동경제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연구를 통해 소유보다는 경험 소비가 행복 지수를 높인다고 밝혔다. 일상을 되찾고 본격적으로 맞이하는 휴가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전 세계 축제들이 대기 중이다. 우리의 행복 지수를 높여줄 취향 저격 세계 여름 축제들을 만나보자.
건축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5월 20일~11월 26일
비엔날레 개최의 시작은 봄이었지만 여름의 베니스Venice와 함께 건축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지금 참여해도 늦지 않다. 이탈리아 베니스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물의 도시’다. 베니스는 섬 자체가 수백 년간 많은 이의 손길로 탄생한 건축물 자체다.
오랜 세월 조성한 간척지인 베니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건축과 닮아 있다. 120개 작은 섬과 모세혈관처럼 이어진 180개 운하, 410개가 넘는 다리로 연결된 작품이랄까. 수상 버스를 타고 ‘정원’이라는 뜻의 자르디니Giardini에 내리면 온통 초록빛이 펼쳐진다. 매년 여기서 비엔날레를 시작한다.
128년 전통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오늘날 열리는 비엔날레의 시초로, 격년마다 열린다. 3대 비엔날레인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가 각각 1951년과 1973년에 시작한 걸 보면 역사와 권위는 따라 올 수 없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미술전으로 시작해 1980년 건축전으로 넓혀갔다.
국제건축전 한국관에서는 ‘2086: 우리는 어떻게’라는 주제로 우리의 미래를 ‘선택’의 문제로 풀어냈다.
1,000년 넘는 세월을 이어온 베니스는 이상기후 속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일로 범람 위기를 겪고 우기에는 가뭄이 빈번했다. 세계문화유산의 운하가 바닥을 드러내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올해 비엔날레에 특히 관심이 쏠렸다. 18회를 맞는 국제건축전이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이란 주제로 11월 26일까지 6개월간 열리기 때문. 매년 5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 최대 규모 건축 축제다. 건축물은 인류 성장을 기록하는 결과물이기에 세계 건축가들이 도시계획에 대한 혜안을 이곳에서 찾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공화제 이전 황제 부부 움베르토 1세Umberto I와 마르게리타Margherita 왕비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미술전에서 유래했다. 1931년 베니스시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로 격상됐으며, 2년마다 전시를 여는 건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가 제안했다. 비엔날레 초기는 전시품 판매 위주의 상업용 행사였지만 1회부터 22만 명이 몰려 성공을 거뒀고, 작품의 절반 이상이 거래됐다. 1968년 이후 비상업적 축제로 거듭났다.
국제건축전은 2개 전시장으로 나뉜다. 카스텔로 공원 내 ‘자르디니’의 국가관과 ‘아르세날레’라는 국제관이다. 아르세날레는 국영 조선소이자 옛 무기고였다. 자르디니에 국가관이 없는 나라들은 아르세날레에 연다. 비엔날레는 국가관 경쟁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여하기에 ‘예술 올림픽’이라고도 부른다. 전시장 두 곳의 거리는 산책하며 거닐기에 충분하며, 바닷가와 이동 동선을 따라 카페와 레스토랑 또한 즐비하다.
연극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7월 5일~7월 25일
영화인의 꿈의 무대가 칸영화제라면, 연극인에게는 아비뇽 페스티벌이 그것일 것이다. 파리에서 690km 떨어진 프랑스 남부 소도시 아비뇽Avignon은 고속열차 테제베TGV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1년 내내 태양의 풍요가 넘쳐흐르는 아비뇽은 프랑스에서 가장 정열적인 도시 중 하나다. 여름이 절정인 7월이면 도시 전체가 천장 없는 극장으로 대변신한다. 인구 10만 명 남짓한 도시에 세계 각국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교황의 도시’를 넘어 ‘축제의 도시’가 되는 순간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지중해 햇볕과 함께 3주간 공연으로 달아오른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부터 이어져왔다. 프랑스 연극 거장 장 빌라르Jean Vilar가 옛 교황청 안마당에서 작품 세 편을 무대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문화 민주화를 꿈꾸며 ‘모두를 위한 공연Théâtre Pour Tous’을 만들어갔다. 당시 파리에만 집중된 예술 생태계를 넓히고자 한 것이다. 아비뇽 예술 주간Une Semaine D'art en Avignon으로 부르던 일주일간 행사는 오늘날 세계적 연극 축제가 됐다.
2022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친 마르코스 모라우의 <소노마>
연극 프로그램은 크게 공식 선정 부문In과 자유 참가부문Off으로 나뉜다. 주 공연장은 옛 교황청, 성당 등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비뇽 역사 지구가 배경이다. 축제 일등 공신은 자유 참가 부문 공연이다. 광장, 거리, 창고 등 장소 사용 허가만 받으면 누구라도 작품을 펼칠 수 있다. 길거리 공연 포스터들은 접착제 대신 실로 엮어 걸려 있다. 매일 밤 별빛 아래서 펼쳐지는 새로운 작품은 보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변변한 공연 시설 하나 없던 예술 불모지가 세계 최고 연극의 장으로 거듭난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면 7월엔 이곳으로 향할 것.
공연 예술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8월 8일~8월 17일
1947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양대 공연 축제로 일컫는 영국 에든버러 축제는 매년 8월에 클래식, 오페라, 연극, 춤 등 다양한 분야의 공연 예술 작품이 에든버러Edinburgh 시내 곳곳에서 펼쳐져 도시 전체가 예술적 분위기로 물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나라의 문화 부흥을 이끌고자 시작한 축제는 공연 예술 축제인 만큼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를 비롯해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 에든버러 멜라가 함께 열린다.
에든버러 축제는 모두에게 열린 화해와 균형의 축제로 유명하다.
특히 올해 에든버러 축제에는 48개국 2,0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가해 295개 공연을 펼치는 가운데 한국 공연을 집중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 ‘포커스 온 코리아’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특집은 클래식 공연을 필두로 우리나라 전통 예술인 창극까지 아우른다. 노부스 콰르텟,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 KBS교향악단과 첼리스트 한재민,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가 차례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미식
뉴욕 레스토랑 위크
7월 24일~8월 20일
미국 뉴욕에 도착하면 드높은 마천루 빌딩 숲에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잠시, 긴장을 풀게 하는 건 뉴욕레스토랑 위크다. 1년에 두 번, 1월과 7월에 겨울과 여름 버전으로 개최하는 이 행사는 뉴요커뿐 아니라 세계 각지 미식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약 3주간 뉴욕을 대표하는 600여 개 레스토랑에서 세 가지 코스의 정찬요리를 제공한다. 저녁은 좀 더 비싸다. 보통 1인당 30달러 정도다. 100년 넘은 레스토랑은 물론, 100달러를 호가 하는 미쉐린 스타 파인다이닝을 모두 가성비 넘치는 정찰가격에 맛볼 수 있다.
뉴욕 레스토랑 위크 관련 정보는 <자갓 서베이> 등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이 행사는 1992년 점심 프로모션 행사로 시작됐다. 세계적 미식 가이드북 <자갓Zagat>의 창립자 팀 자갓Tim Zagat과 레스토랑 경영자 조 바움Joe Baum은 전당대회 기간에 맞춰 대의원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당시 19.92달러에 점심을 제공했다. 일주일간 진행했는데 결과는 대성공. 해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레스토랑이 참여했다. 9‧11 테러 직후 위축된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0년부터는 동계 레스토랑 위크도 시작했다. 단, 주말은 제외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