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3
가만히 들여다봄,
여수
여수의 봄을 즐기는 방법 - 맛, 풍경,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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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맛있고 아름답고 유서 깊다.
시장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고, 항구 곳곳에 자리한 식당들은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
돌산대교와 검푸른 여수 바다가 빚어내는 야경은 여수가 이방인을 향해 건네는 선물.거문도의 동백은 환하게 피어 여행자를 반긴다.
風磬
가슴 저미는 여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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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들이 불을 밝힌 밤의 항구는 서정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여수는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저녁이면 여기저기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울려 퍼진다. 가장 아름다운 여수 밤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돌산공원이다. 차로 공원까지 오를 수 있다. 데이트족들의 성지다. 1984년 완공된 돌산대교는 길이가 450m에 달하는데 수면 위에서 20m 높이로 떠 있다. 불이 켜지는 시각은 오후 7시 쯤. 돌산대교를 밝히는 불은 시시각각 색깔이 변한다. 노란색이었다가 붉은색, 다시 초록색으로 바뀐다. 자봉도, 화태도, 월호도, 금오도, 금오도를 오가는 배들이 돌산대교 아래를 지나 여수항으로 들어간다.

돌산공원에서는 여수항이 내려다보인다. 10년 전 이맘때, 거문도에서 나와 저녁의 여수항을 어슬렁거렸던 것 같다. 술 취한 사내들의 왁자지껄한 고함 소리와 뱃고동 소리가 뒤엉켜 있는 곳. 등을 구부리고 낚시에 열중하는 사내들의 실루엣이 밤의 항구를 지키고 있는 곳. 항구의 어느 낡은 여관에서 소설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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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대교에 불이 밝혀진 모습. 소호동동다리, 거북선대교와 함께 야경의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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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동 벽화 골목에는 담장마다 예쁜 그림이 있어 사진 촬영하기에 좋다.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지금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늘처럼 아픈 소설이었고,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와 섞여 있어요”라는 주인공의 말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최근 여수에서 떠오르는 명소는 고소동 벽화마을이다. 여수엑스포를 개최하며 새롭게 단장한, 여수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비탈에 들어선 달동네 마을로 골목골목 화사한 벽화로 가득하다. 골목 길이가 1,004m에 달해 일명 ‘천사 골목’으로도 불린다. 여수의 역사와 문화, 전설 등을 소재로 한 그린 벽화도 있고, 허영만・백일섭 등 여수 출신 유명인을 재미있게 표현한 벽화도 있다.

안 먹으면 후회할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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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동에는 게장 거리가 있다. ‘게장백반’을 주문하면 돌게로 만든 양념게장과 간장게장, 된장게장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여수’ 하면 나도 모르게 입에 군침이 돈다. 뭘 먹을까부터 고민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를 꼽으라면 여수가 단연 앞자리에 놓일 것이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여수항 뒤편에 자리한 교동시장.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 횟집은 횟감을 고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길게 이어진 포장마차들은 하나둘 카바이트불을 밝힌다.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싸고 싱싱하다. 길게 이어진 붉은색 플라스틱 테이블이 낭만을 더한다.

여수 여행의 테마는 맛 기행으로 잡아도 좋다. 여수를 대표하는 맛은 장어다. 오동통한 바닷장어를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 먹는다. 두툼한 살집이 도시에서 먹는 장어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소금구이로도 먹고 양념구이로도 먹는데, 현지인들은 소금구이를 더 즐긴다. 장어를 뭉텅뭉텅 썰어 넣고 숙주나물과 함께 푹 끓인 장어탕은 국물 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데다 비린내가 없어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선어회도 맛보자. 선어회는 생선의 피를 뽑고 일정 시간 숙성시킨 생선이다. 여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선어회는 삼치. 하루 정도 숙성을 거친 뒤 살짝 얼려 회를 뜬 뒤 김에 사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입안에 맴도는 고소함과 기름지고 풍부한 식감이 활어회와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금풍생이는 여수를 비롯해 부산과 진도 정도의 남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선이다. 생긴 모양은 조기와 비슷하고, 크기는 어른 손바닥 만하다. 통째로 노릇하게 구운 후 고춧가루, 실파 등을 넣어 만든 간장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금풍생이의 별명은 ‘샛서방 고기’. 살이 연하고 고소해 남편이 아닌 샛서방에게만 몰래 갖다 줄 정도로 맛있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목포 사람들이 손님에게 홍어회를 대접하듯, 여수 사람들은 서대회를 대접한다. 서대는 청정 해역인 여수 여자만과 봇돌바다에서 자망으로 잡는 물고기로, 가자미와 비슷하게 생겼다. 1년 이상 발효시킨 막걸리로 만든 천연 식초를 사용해 비린내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밥에 슥슥 비벼 먹어도 맛있다.

여수 어디에서나 식당 간판에 ‘게장백반’이 빠지지 않는다. 봉산동에는 아예 게장 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선 여수 앞바다에서 나는 돌게로 게장을 만든다. 양념게장을 먹을까, 간장게장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게장백반을 주문하면 고추장 양념을 듬뿍 넣은 양념게장과 채소를 가득 넣어 끓인 간장게장, 된장으로 맛을 낸 된장게장이 수북하게 담겨 나온다. 여수 게장백반이 왜 유명한지, 게장을 왜 ‘밥도둑’이라고 하는지 먹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歷史
이순신 장군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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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동의 진남관은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하던 누각 진해루가 있던 터에 지은 조선 시대 객사 건물이다. 화재로 소실되어 1718년에 다시 축조한 것으로 국보 30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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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은 금오산이 바다와 만나는 언덕에 세운 암자다. 좁은 바위틈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바다와 맞닿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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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목 몽돌밭 위로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
여수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수는 조선 선조 24년 전라도 수군절도사, 선조 26년 3도(충청, 전라, 경상) 수군통제영을 두면서 군사적 요충지가 됐다. 지금도 선소와 충무공 자당, 기거지 등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수 시내에 있는 진남관은 75칸의 대규모 객사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인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진해루 터에 다시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층 목조건물이기도 한데, 건물 면적 79m2에 기둥만 68개에 이른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어려 있는 곳이 또 있다. 돌산읍 굴전마을에 있는 무술목이다. ‘무술년 전적지’, ‘무서운 목’이라는 뜻을 지닌 해변이다. 1588년(무술년) 이순신 장군이 까막만에 침범해 온 왜선 60척을 수장시킨 데서 이름 붙었다. 이름과 달리 무술목은 참 예쁜 해변이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한없이 잔잔하고 드넓은 몽돌밭이 펼쳐져 있다. 해가 지고 밀물이 들기 시작하면 몽돌밭까지 파도가 밀려온다. 잘박잘박, 파도가 몽돌을 어루만지는 소리가 꿈결 같다.

여수 하면 향일암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1월 1일이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찾아든 엄청난 인파로 몸살을 앓는 곳.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남해 보리암, 서해 간월암과 함께 국내 3대 기도처로 꼽힌다.

향일암 입구에서 10여 분 다리품을 팔면 대웅전이다. 높이 150여m의 급경사 절벽을 발아래에 두고 망망대해인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멀리 세존도 등 다도해의 섬들과 돌산도의 푸른 숲, 해안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향일암 뒤쪽 바위굴로 다시 올라서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이다.

동백이 완성하는 여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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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을 마주하면 여수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거문도 트레킹 코스에서는 눈 닿는 곳마다 동백나무 천지다.
여수 여행의 마지막은 거문도. 여수의 봄을 완성하는 곳이다. 고도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 따끈하게 봄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섭씨 19도. 반팔 셔츠를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날씨다.

거문도에서는 봄 트레킹을 즐겨야 한다. 꽃과 바다를 보며 걷는 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덕촌마을 쪽으로 올라가 불탄봉~억새 군락지~기와집 몰랑~신선바위~보로봉~365계단~목넘어~거문도 등대로 이어지는 코스다. 약 7km 길이로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길 역시 어려울 것 없다. 운동화 차림에 물 한 병, 가벼운 간식만 챙기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숲에 들어서자 이내 어둑해졌다. 사철나무며 돈나무 등 진초록의 활엽수와 넝쿨식물들이 얽히고설키며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10여 분 정도 오르자 동백길이 시작된다. 숲은 온통 동백 천지. 제 목을 꺾어 떨어진 동백이 누군가 일부러 흩뿌려 놓은 것처럼 낭자하다. 거문도 동백은 전체 수종의 70%에 달하며,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2월 중순에 만개한다. 4월부터 지기 때문에 4월 말~5월 초면 거문도 등산로는 붉은 동백으로 뒤덮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를 겸 나무둥치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누굴까. 발치에 떨어진 동백 한 송이를 보고서야 어깨를 두드린 건 동백이었음을, 봄이 툭툭 내 어깨를 친 것이었음을 알았다. 발끝에 구르는, 제 목을 통째로 분지르며 주저없이 떨어져내린 동백의 처연함 혹은 결연함이란.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썼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시인 이문재는 “멀리로도 아니고 / 바람 없는 날, 툭 / 뿌리째로 곤두박질한다”라고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동백 숲 터널을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마른 억새 군락이 나타난다. 그리고 펼쳐지는 광대한 풍경. 굽이치며 나아가는 아찔한 기암절벽 양쪽으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펼쳐진다.

거문도 등대 방향으로 길을 잡아 불탄봉을 향해 걷는다. 능선을 따라 바다를 양옆으로 두고 나아가는, 이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트레킹 코스가 국내에는 없다.

거문도 트레킹 코스에서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기와집 몰랑이다.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기와집 몰랑’은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이 기와지붕 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기와집 몰랑을 지나 신선이 내려와 매일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와 아차바위를 지나면 길은 다시 동백 숲으로 이어지고 곧 ‘목넘어’에 닿는다. 목넘어에서 수월산 거문도 등대까지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산책 코스다. 자연석을 깐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이 길에도 동백꽃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최갑수 여행작가이자 시인. 여행을 위로라고 생각하며 길 위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저서로는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사랑보다도 더 사랑하는 말이 있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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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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