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패션은 죽어가는 브랜드를 되살리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휠라FILA다. 1990년대에 나이키나 아디다스 못지않았던 위상이 무색하게도 ‘어딘가 촌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휠라는 2003년 파산 위기를 겪을 정도로 침체했다. 2007년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하고도 어려움이 계속됐으나 뉴트로 패션이 유행하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2016년 9671억원이던 매출이 2017년 2조5303억원으로 껑충 뛰며 1년 새 162%가 오른 것이다.
매출의 일등 공신은 1997년 출시했던 간판 운동화를 재현한 ‘디스럽터2’. 미국 <풋웨어 뉴스>의 ‘2018 올해의 신발’에 선정된 디스럽터2는 국내에서만 150만 켤레 이상 팔렸다. 이에 탄력을 받아 1999년 베스트셀러였던 러닝화를 재해석한 ‘보비어소러스99’를 출시하는 등 휠라의 고공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빈티지 마니아가 상당한 시계 브랜드는 뉴트로 열풍에 ‘복각’이란 카드를 내놨다. 복각은 원형을 모방해 다시 판각했다는 뜻으로, 생산이 중단된 옛 모델을 재현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1794년에 첫선을 보인 브레게의 회중시계 ‘No.5’, 1884년 제작한 ‘폴베버 포켓 워치’를 손목시계로 재현한 IWC의 ‘폴베버 150주년 헌정 에디션’, 1948년형 씨마스터를 재현한 오메가의 ‘씨마스터 1948 리미티드 에디션’ 등이 시계 마니아를 기쁘게 했다.
이 밖에 럭셔리 브랜드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빅 로고 패션, 흔히 ‘멜빵바지’로 불리는 오버올, 코듀로이 소재, 벙거지 모자, 하이웨이스트 청바지, 농구화 등은 뉴트로 패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중요한 것은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옛 모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뉴트로의 핵심이다.
패션 브랜드 휠라는 뉴트로 열풍을 타고 ‘디스럽터2’ 등 복고 스타일의 신발을 히트시키며 매출액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1794년 디자인을 복각한 브레게의 회중시계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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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가봐요: 을지로
을지로는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공업사와 철물점, 인쇄소만 있던 을지로에 독특한 카페와 바가 하나 둘 생겨난 것. 최근 3년 동안 문을 연 가게만 100여 곳이라니, 가히 ‘힙hip지로’라 부를 만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을지로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가 ‘나만 아는 아지트’를 표방해 건물마다 골목마다 꼭꼭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간판조차 없는 경우가 많고, 1층이 아닌 4~5층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SNS를 통해 목적지를 정해놓고 찾아가도 좋겠지만, 우연히 멋진 가게를 발굴하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자.
① 커피한약방
혜민서 자리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열다섯 가지 원두 중 하나를 고르면
보약을 달이듯 정성껏 커피를 내려준다.
서울 중구 삼일대로12길 16-6
② 호텔 수선화
인쇄소 건물 4층에 위치한 주얼리 디자이너 ‘파이서울’의 아틀리에이자
카페 겸 바. 주종도 다양하고 샌드위치도 판매한다.
서울 중구 충무로7길 17 4층
③ 평균율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도 평균율만 있다면 음악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말에서 이름 지은 근사한 LP 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와인 바로 운영한다.
서울 중구 충무로4길 3
④ 서점 다다
수~토요일, 오후 1~7시에만 문을 여는 작은 서점. 매번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인문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157 3층 가열 356호
⑤ 을지로 OF
을지로 노동자들이 살던 옥탑방 3개를 개조한 유료 전시 공간. 재기 발랄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오픈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15길 5-6
PLACE
옛 건물의 재활용: 강화도 조양방직
오래된 것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전국에서 ‘구도심’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옛 건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독특한 풍취를 자아내기 때문. 이 중 주목받는 곳 중 하나가 인천 강화도에 있는 ‘조양방직’이다.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국내 자본으로 세운 최초이자 최대 방직 회사였다. 그러나 방직 산업의 중심이 대구와 구미로 옮겨가면서 1958년 폐업했고, 내내 폐허로 방치되다 서울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가 미술관과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옛 골조를 그대로 살린 990m2(약 300평)의 넓은 공간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소장품으로 꾸며 압도적 분위기를 자랑한다. 재봉틀 테이블에서 마시는 커피도 일품이다.
조양방직인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
알고 가면 더 재밌는 정보
강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직물 생산지다. 특히 ‘소창’이라 불리는 평직으로 성글게 짠 면직물로 유명했는데, 옛날에 많이 쓰던 하얀 기저귀 천이 바로 소창이다. 소창 외에도 인견, 넥타이, 커튼 직물, 특수 면직물 등을 생산하는 각종 직물 사업이 꽃을 피워 한때 직물 공장 종사자만 4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강화 땅 1평 살 돈으로 김포 땅 3평을 사던 호시절 이야기다. 섬인데도 1930년대부터 전기가 들어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