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1. 04. 13
투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가
안 통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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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말(言)의 유형이 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내가 해 봤더니’ ‘내가 경험해 보니’ 류의 것들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더 깊이 주의를 기울인다. 그 사람이 해 본 것이 무엇인지를 새겨 본다. 그가 해 봤다는 것이 무작위적 확률이 지배하는 영역에 있거나 그가 일을 한 시점과 현재 시점 간에 얼마나 시간적 간격이 있는가를 가늠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의 경험이 개별적인 것이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따져 본다.
특히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주식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번의 성공이 다음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어떤 일류 투자가도 매번 성공할 수 없다. 실제 세계가 이렇게 작동함에도 자신의 성공 경험을 침소봉대해 과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래의 성공을 장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필자가 만난 이런 사람들치고 10년, 20년 주식시장에서 오랜기간 동안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주식시장과 무작위적 확률
무작위적 확률이 지배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주식시장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시장은 술 취한 사람처럼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취한 사람의 갈짓자 걸음을 정확히 맞출 수 없듯 효율적 시장에서 예측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 가설의 옹호자들은 시장 전체를 사들이는 인덱스 투자 전략을 최상의 투자대안으로 삼는다. 반면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자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100%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는 대부분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간혹 비효율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투자자가 시장 초과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효율적 시장가설을 옹호하는 학자와 버핏이 합의하는 점은 시장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자연스레 과거 경험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는 사고와 연결된다. 그런데 인간은 과거에 자신이 발견한 패턴을 미래에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패턴 추구(pattern seeking) 행위’라고 한다. 과거 원시인을 생각해 보자. 어느 날 빨간색 열매를 먹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심한 배앓이를 했다면 다음에 어떻게 대응하는 합리적일까. 빨간색이란 패턴을 적용해 적색 열매를 피하는 게 생존에 유리한 행위가 아닐까. 설사 나중에 그 열매가 다른 종류의 열매로 판명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피하는 것이 보다 생존 확률을 높여줄 것이다. 진화학자들은 원시인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 패턴 추구 행위가 현대 인간들에게도 유전적으로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 대표적인 패턴 추구 행위의 사례가 기술적 분석이다. 기술적 분석은 주가 움직임의 패턴을 찾아 종목을 선별하고 매수·매도 시점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그런 패턴이 늘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험실 환경에서는 조건이 동일할 경우,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나의 이론이나 명제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수많은 인간 군상이 무작위적으로 경매 게임에 참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반복된 실험을 할 수 없다. 기술적 분석이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들어맞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기술적 분석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설적인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나 앤서니 볼턴과 같은 이들은 기본적 분석을 주로 하면서 보조 지표로 기술적 분석을 이용했다. 기술적 분석이 주가의 방향성이나 투자 심리를 살피는데 의미 있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고 여겼다. 핵심은 기술적 분석을 맹신하지 않고,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는 데 있다.

시간적 간극도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다. 인간에게는 시대 경험이라는 게 있다. 필자와 같은 586 세대들은 87년 민주화 운동이라는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창(窓) 역할을 한다. 산업화 세대는 모든 가치에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가 우선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지금의 북한보다도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 안팎의 국가를 키운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경험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는 듯하다. 필자가 증권시장에 입문했던 시기가 1997년 외환 위기였다.

당시 주식시장은 쑥대밭이 되었다. 필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외환위기의 참혹함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 일본 증시 참여자가 경제 규모에 비해 적은 이유 중 하나도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주식시장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투자자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문명의 이기에 대한 경험도 중요하다. 어린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썼던 세대와 스마트폰을 공상 만화에서 처음 봤던 세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행동한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이들이 같은 주식을 선호하고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기이한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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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 있어야 투자 성공 가능성 높아져
무작위적 확률과 시대적 간극을 생각할 때, 투자자에게 필요한 마인드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준비된 우연’이라는 개념이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르지만 시장이 오를 때, 정확히 말해 시장이 상승하는 우연적 현상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시장에 머물러 있거나 현금이 있어야 한다. 지식도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배짱도 있어야 한다. 어느 때 나에게 유리한 우연적 현상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 우연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된 우연’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유연함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에 상응해 삶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투자의 시각에서는 그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 내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IT(정보기술)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 관리하는 방법을 바꾸는 기업은 경쟁자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갈 것이 자명하다. 고령화 시대의 유망 투자처로 꼽히는 의료 분야도 바이오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재해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료기기 회사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과 연동돼 실시간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고 한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부모 만나고 공부도 잘해 쉽게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곤궁하더라도 누구에게나 한 두 번은 우연이 기회의 얼굴로 찾아올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유연성을 가지고 준비된 우연을 준비해야만 하는 이유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코노미스트
글.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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