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와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일시적이며, 조만간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다. 첫째, 정부가 성장률을 관리하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이머징 국가(신흥국)의 경제 도약 초기에는 효율적이지만, 경제 곳곳에 비효율이 누적돼 있을 것으로 봤다. 둘째, 그동안 중국 경제가 성장한 배경은 저렴한 인건비 때문인데, 이제는 인건비가 많이 올라 중국도 수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현실 속의 중국은 다르다. 스마트폰과 같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정보기술(IT) 디바이스 부문에서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자율주행, 청정에너지, 자동화 장비 등 중요한 성장 산업마다 중국은 경쟁력 있는 기업을 배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지표는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의 점유율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 제품이 얼마나 되느냐 만큼 그 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중국의 제조품 수출 글로벌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늘면서 2020년 22%로,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중국은 PPP(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갖고 있다. 물론 시장 규모가 크더라도 전국 시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인프라와 제도가 없다면, 기업 관점에서 무용하다. 사실 많은 이머징 국가는 분열된 내수 시장을 가지고 있다. 지방마다 언어나 문화가 다르고 운송 인프라가 빈약하거나 심지어는 주 경계를 넘을 때 세금을 물어야 하기도 한다.
인도는 주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오래전부터 시장이 분열됐다. 한때는 화물을 실은 트럭이 주 경계에서 관세 납부 때문에 며칠을 멈춰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2018년 세제 개혁을 거치고 나서야 주마다 다른 세제 문제가 해결됐다. 인구가 조만간 1억 명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는 인구 대국 베트남도 남부와 북부로 내수 시장이 양분돼 있다. 어떤 기업의 제품이 북부 하노이 소비자에게 잘 통하더라도 남부 호찌민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문화적인 차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양 지역을 잇는 운송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소비 시장이 오랫동안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의 투자를 거쳐 지금은 사실상 단일 시장화됐다. 의무 교육 확산을 통해 언어를 통일했고 세제나 관세를 단순화했으며, 전국을 잇는 물류 운송 인프라가 곳곳에 깔렸다. 이제는 어떤 기반의 기업이라도 경쟁력 있는 제품만 있다면 전국에 물건을 팔 수 있다. 이 거대한 단일 경쟁 시장의 출현이야말로 중국 기업들이 혁신하는 원동력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지만, 만약 경쟁에서 이겨 전국구 기업이 된다면 경제적 보상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중국 전역에 깔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항공망, 무선통신망은 중국 과잉 투자의 상징으로 불린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이 덕분에 전국구 기업, 초대형 기업이 쉽게 나온 배경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지방 정부가 국유기업을 소유하거나 육성하는 이유와 배경은 뭘까?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원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얘기다. 이보다는 숨어 있는 인센티브(유인책)가 중요하다. 그것은 공무원의 승진 관행과 관련돼 있다. 중국에서는 고위 공무원이 되려면 자신이 몸담은 시 단위 정부에서 (국유기업이든 민간기업이 됐든) 산업을 키우는 데 성과를 내야 한다. 심지어 공무원 보직과 국유기업 경영자 자리를 오가는 순환보직도 일반화 돼있다.
이런 관행은 장단점이 있다. 공무원이 산업 성장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니 미래 성장 산업 육성에 비교적 쉽게 성공한다는 건 장점이다. 중국에서는 공무원이 기업가보다 앞장서서 혁신을 부르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 단점이 따른다. 공무원이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다 보니 대규모 부정부패가 발생하기 쉽다. 한편 많은 사람의 인식과 달리 최근 중국 국유기업의 위상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상당수의 산업에서 국유기업들이 민간기업들로 대체됐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지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슈퍼마켓, 백화점 같은 소매체인, 운송·저장 같은 물류 부문도 국유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는 오래전 계획경제 시대 사고방식의 잔재인데, 모든 재화의 유통, 배분은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국유기업들이 사이노트랜스(Sinotrans), 중국우정(中国邮政集团) 등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알리바바, 징둥, ZTO, SF 익스프레스, YTO 등의 민간기업들이 리테일, 택배, 물류 전국 네트워크를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했다. 과거에는 용납할 수 없었던 상황인데, 지금은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최근 가장 흥미로운 공·사기업 간 주도권 이동 사례는 정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영역은 오랫동안 시노펙, 페트로차이나 등 2개의 국유기업 중심으로 과점화됐다.
하지만 2010년대 설비 투자 규제가 완화되자, 평소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왔던 민간기업들이 대형 정유 플랜트 투자를 감행했다. 저장 롱셍(rongsheng), 헝리 석유화학(Hengli) 등이 그들이다. 2019년 이후 가동에 들어간 이들 플랜트는 현재 국유기업들의 정유플랜트보다 높은 자본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유·석유화학(석화) 산업에서 민간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정유·석화 부문이 큰 한국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앤트파이낸셜그룹 사례와 같이 정부가 민간기업 활동에 비우호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사례도 분명히 있다. 사안별로는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시진핑(習近平) 정부 9년간 민간기업들이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대형 민간기업들, 이를테면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트댄스, 메이퇀, 핀둬둬, 빌리빌리 등이 제대로 성장한 것은 시진핑 집권 이후다. 상하이와 선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국유기업 비중은 2008년 80%에서 2020년 40% 밑으로까지 내려왔다. 해외에 상장한 민간기업들을 포함할 경우 국유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30%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최근 정부가 기업 길들이기 강도를 높이는 것은 자기방어적이다. 민간기업의 영향력이 단기간에 급증하자 정부가 당황해서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 경제 시스템에 시장 경쟁 관행이 자리 잡았다는 점, 인프라 등의 도움으로 내수시장이 통일돼 기업 성장에 따른 보상이 강하다는 것들이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 기업들로 성장하는 배후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