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 흩어진 직원들이 가상 공간에 모여 회의하고, 외국에 있는 미술관을 집 안에서 둘러보는 세상.
팬데믹 시기를 맞은 우리에게 ‘언택트untact’는 일상의 가장 큰 변화였다. 이를 ‘온택트ontact’로 바꾸려는 노력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세계를 삶 곳곳에 더욱 깊숙이 들여놓았다. 코로나19 시대의 미술관과 브랜드는 어떤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을까.
AR와 VR는 꾸준히 기술 발전을 이루며 관심받아온 분야이지만, 최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AR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약자로, 현실 세계에 가상의 그래픽 이미지나 정보를 적용하는 기술이다.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끈 ‘포켓몬 고Go’가 바로 증강현실을 활용한 게임이다. 휴대폰의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현실 공간에 포켓몬이 등장해 진짜 게임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운전하고 있는 화면에 주행 정보를 제시하는 내비게이션, 우리 집 거실에 어떤 가구가 어울릴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이케아Ikea의 애플리케이션 모두 증강현실이다.
VR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뜻하며, 말 그대로 기술을 이용해 가상으로 만든 공간을 뜻한다. 영화 <인셉션>(2010)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주인공들이 기계를 통해 또 다른 세계에 접속하듯 우리는 머리에 쓰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게임이나 콘서트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한정된 이야기 같지만, 이제 사회 각 분야에 점점 적용되는 추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상 아바타 월드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운동을 펼쳤고, 현대자동차는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을 가상공간에 불러들여 신차 디자인 품평회를 진행했다.
뉴 뮤지엄과 애플이 발표한 증강현실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작품 ‘This is IT’.
예술과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미술 감상법을 끌어내기도 한다. AR와 VR 기술을 활용한 ‘실감 미디어’ 콘텐츠 분야의 선구자인 디스트릭트D’strict의 경우가 그중 하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아트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그룹, 에이스트릭트A’strict를 통해 작년 국제갤러리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제주도에 아르떼뮤지엄을 오픈하면서 오감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미디어 아트 전문 미술관을 선보였다. 코로나19로 답답했던 사람들은 장엄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파도의 철썩임, 살랑이는 꽃의 움직임에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경험 경제를 살고 있다. 가상 세계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낮춘다. 실감 콘텐츠가 실제를 대체할 만큼의 유효한 경험을 제공한다면 예술사에서 사진이 출현한 것만큼이나 새로운 도구의 발견일 것이다.”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는 앞으로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예술 분야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도 증강현실을 활용한 작품과 전시는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올해 초 코엑스 아티움에서 열린 서울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정중동 동중동靜中動 動中動’은 우리나라 전통 공예를 가상 세계로 재해석했다. 관객이 여덟 가지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그릇, 도자기, 소반 등 전통 오브제들이 눈앞에 있는 듯 실감나게 눈앞에 펼쳐졌다.
한편 예술품은 실제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작품을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규모와 재료의 질감, 특유의 오라를 온라인상에서는 아직 제대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년 6월 열리는 아트바젤은 행사 진행을 연기했다가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열리더라도 오히려 이 행사의 명성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만 들으면 미술 시장이 위태로워진 것은 아닐까 싶지만 뜻밖의 변화가 있었다. 온라인 아트 페어, 경매를 통해 새로운 예술품 구매층이 등장한 것이다. 예전에는 해외에 직접 나가거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해외 아트 페어를 누구나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됐고, 금액대 또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술품 거래의 문턱이 낮아지자 ‘아트테크’에 뛰어드는 2030 세대의 비중이 늘었다. 국내의 경우 작년 한 해 미술 투자자는 20% 넘게 증가했다. 온라인 옥션은 거래액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오프라인 경매의 대안이 아닌, 그 자체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동 K-팝 광장 외벽에 선보인 전통문화 미디어 아트 ‘정중동 동중동’. 전통적 이미지를 표현한 오브제에 현대적 미디어 아트 기술을 더한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한 해 대부분의 패션위크는 온라인을 택했다. 패션계 인사들의 특권이던 패션위크를 누구나 집에서 생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샤넬은 작년 ‘20/21 샤넬 크루즈 컬렉션’부터 온라인 패션쇼를 선보였고, 구찌는 360도 회전 카메라를 통해 원형 무대 속 쇼를 공개한 ‘2020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3월 말 열린 서울패션위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행사를 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문화비축기지 등 서울의 여러 명소를 런웨이 삼아 열린 이번 행사는 세계곳곳에 한국의 패션과 문화, 명소를 알릴 기회가 됐다. 보통 패션위크는 6개월 이후의 트렌드를 미리 선보이는데,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쇼핑이 가능하고 패션쇼를볼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사고방식은 ‘올드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상이 바뀌면서 패션계 또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돌체앤가바나는 자유로운 형식의 버추얼 포맷으로 상품을 둘러보는 부티크를 구현했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패션업계가 타격을 입었다고 하지만, 명품 패션 분야의 매출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 예전에는 명품관에 직접 방문해 실제 제품을 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온라인을 통해 주문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이에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펜디, 투미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세계 각국의 부티크를 가상 투어할 수 있는 ‘버추얼 부티크’, ‘버추얼 스토어’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돌체앤가바나는 파리 생토노레, 미국 마이애미, 서울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등 세계 각지의 부티크를 VR를 통해 구현했다. 매장을 360도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상품을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장 주변의 거리 풍경을 함께 담아내 잠시나마 그곳에 방문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 구찌가 선택한 것은 요즘 가장 화두인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 체험하는 가상현실 세계를 뜻한다. 네이버제트가 만든 AR 기반 아바타 앱 ‘제페토’는 전 세계 2억 명이 이용하는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이곳에서 아바타를 만들 때 수천 가지의 옵션을 세부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데, 여기서 구찌의 가방과 옷을 내 아바타에 입힐 수 있다. 구찌의 매장을 재현한 가상 세계인 ‘월드’를 돌아보며 다른 디자인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아이템은 유료다. 이곳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여러 체험을 즐기는 MZ세대에는 충분히 유효한 세계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앞당긴 증강·가상현실은 예술과 패션 그리고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됐다. 앞으로 기술의 발전은 좀 더 견고한 가상 환경을 만들 것이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폭도 그만큼 넓어지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패러다임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투미는 온택트 시대에 맞춰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버추얼 스토어를 론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