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9
같이 하면
더 즐거운 시간
이근후 박사가 이야기하는 부부가 함께하는 여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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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0회 생일을 맞이하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다. 정년 퇴임을 하면 또 어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까?
누구에게나 생각해봄 직한 명제이다.
그 당시 나는 정년 퇴임을 하면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일하고 같이 여가를 보낸다. 무엇이든 함께 하면 더 즐겁다.
정년 퇴임 후 같이 일하기
우리 부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함께 교수로 정년 퇴임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결혼하기 이전에 마누라와 교제하면서 이런 제안을 했다. 밖에 나가서 직업을 갖지 않는다는 조건! 이런 조건은 우리 어머니가 내가 어릴 때부터 사회 활동을 하신다면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기에 내가 장가를 간다면 밖에 나가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약속받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나 개인적인 여러 문제 때문에 마누라가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내가 군 복무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전임강사로 처음 부임하면서 마누라와 의논을 했다. 우리 결혼 전에 약속한 대로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을 수 있는가. 마누라의 대답은 결혼 후 10년간 직장에 나가 일했기 때문에 지금 그만두기는 어렵단다. 그래서 다시 약속한 것이 서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 서로 돕기로 약속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내가 회갑 때 둘이 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논하다가 ‘사단법인 가족 아카데미아’를 발족했다.

가족 아카데미아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 봉사이다. 나는 의과대학 교수였기 때문에 의사는 일생 동안 환자에게 봉사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봉사 파트는 내가 맡았다. 사회학 교수로 일한 마누라는 교육 파트를 맡았다. 그 당시 부모 교육, 노인을 준비하는 교육, 상담원 심화 교육, 봉사 교육 등등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하는 파트를 맡았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 정년 퇴임 후 매일 함께 출근하고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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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박사(이화여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이동원 박사(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은퇴 후 가족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부부가 함께 봉사하고 여가 시간도 같이 보낸다.
여가 시간도 함께 보내기
나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는 그림 그리기, 붓글씨 쓰기를 취미 삼아 열심히 했다. 어느 정도 아마추어 수준은 된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등산이란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등산에 몰두하다 보니 그림 그리기나 붓글씨는 대학 시절을 끝으로 마감했다. 등산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경북학생산악연맹이라는 것을 친구들과 만들어 산행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 한국산악회의 쟁쟁한 산악인들이 6ㆍ25전쟁으로 대구에 피란을 왔다가 미처 귀영하지 못한 선배 산악인을 모시고 산행을 배웠다. 그러니 주말마다 1박 2일로 팔공산에 올랐다. 팔공산에 올라 선배님에게서 여러 가지 등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듣고 병풍바위에서는 자일을 끌고 암벽 타기도 배웠다. 이때 마누라도 간혹 함께 등반에 참여했다. 이 등반에 관한 취미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어 교수 생활을 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결혼해서 여가 선용은 등산으로 메웠다. 틈만 나면 아내와 함께 등산을 했다.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도 자녀와 함께 등반을 했다. 큰 아들이 첫돌을 맞았을 때 도봉산을 기념 등반했다. 아들이 걸을 수가 없으니 목말을 태워서 도봉산 정상을 왕복했는데 내려오다가 비를 만났다. 그래서 내가 아들을 품에 안고 군용 판초를 뒤집어쓰고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깜깜한 판초 안에서 내 품에 안긴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기억도 못 할 테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작한 가족 등반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모두 장성해서 함께 등반할 기회가 없지만, 소망 같아서는 손자손녀들과 함께 등반하고 싶은데 그들 또한 바쁘기가 나보다 더하다. 그러니 손자손녀들과는 함께 하지 못했다.

나는 젊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주말마다 등반을 할 때니까 등반에 아주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매주 등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어떡하나? 그래서 생각해낸 내 상상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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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때는 정상을 바라보고 오르고 중년 이후에는
산허리를 도는 트레킹을 하다가 노년이 되면 둘레길ㆍ올레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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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나마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되면 어떡하나? 그때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산악 비디오를 틀어놓고 눈으로 산을 오르는 것이다. 걷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젊을 때 익숙하게 오르던 산을 그림으로 보는 것은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흔들의자에도 앉아 있을 처지가 못 된다면 어떡할까?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빔을 쏘면 그 또한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말이 씨앗이 되는 것일까? 나이 들고 보니 내가 젊을 때 상상한 그 순서대로 가는 것 같다. 나는 산이 좋다.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면 나는 단연 이 등산을 말하고 싶다. 학교 다닐 때도 물론이지만 부부가 되어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함께 등산했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 한 취미로는 손색이 없다.
부부가 함께 하는 여가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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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서로 즐거운 것을 하는 것이기에 부부가 함께 즐긴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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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같은 취미를 한 가지 갖고 여가를 보내는 것은 대단히 큰 장점이다. 그러니 이혼하는 부부를 보면 성격이 맞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는 부부가 많은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도 하나 있었다면 성격 운운하면서 이혼할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사실 부부라고 하는 것은 각자 다른 가정과 문화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과 행동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중 서로 맞는 어떤 점을 공유하면서 결혼을 한다. 그 가운데 취미를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여간한 행운이 아니다. 나는 부부가 되면서 천막을 지고 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럴 정도였으니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여가가 생기면 산행 이외에는 달리 무엇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부부가 함께 하는 등산의 이점을 몇 가지 꼽자면 첫째는 부부가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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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서로 도울 수가 있는데, 밀고 당겨주고 부부가 합심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등반을 통해 평소에 알지 못한 서로의 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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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산이 우리 부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겠지만, 부부가 함께 해야 할 무엇인가를 공통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신기한 힘이 있다. 네 번째로는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지속적인 운동이 된다. 어떤 취미든 우리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그 활력소를 산에서 찾았을 뿐이다.

내가 해보지 못한 취미이긴 하지만 평생 해보고 싶은 취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부가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하려고 들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문화교실도 있고 노래방 등 배우고 노래할 공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이유는 둘 다 음치이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산행이 있으니 노래가 부러울 뿐 아주 절박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흘렸다. 다른 하나는 사교춤이다.

부부가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참 부럽고 좋은 취미일 것 같다. 대학교 동기회가 열리면 한 커플이 나와서 춤을 추는 시범을 보인다. 동기회 날이 되면 자진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나와서 춤을 춰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부부가 나와서 여러 가지 춤을 우리에게 선사해주는데, 보기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내 제자 부부도 서로 함께 하는 취미를 만들어보자고 의논한 결과 사교춤을 배우자고 했단다. 지금은 배우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그 제자 부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말이면 이제 함께 춤을 추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갈등도 생기고 걱정거리도 생기지만, 함께 춤을 추고 나면 다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정신과 치료에서 춤 치료라는 장르가 있다. 춤을 통해서 춤을 치료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그러니 이 제자 부부는 스스로 자신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부럽다. 비록 나는 해보지 못했지만 만일 독자들이 나에게 어떤 취미가 좋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흔쾌히 이 노래와 춤을 권하고 싶다(나는 해보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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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는 89년부터 매년 함께 의료봉사에 문화탐방 등을 함께하는 네팔캠프를 열었다.
사진은 2005년에 네팔캠프가 열렸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전경.
배우자와 함께 하는 여가 추천
취미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많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일과 취미를 명백히 구분해야 할 기준이 있다. 일은 긴장해서 몰두해야 하는 것이고, 취미라는 것은 긴장하면서 즐기는 것은 아니다. 목적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이완이다. 이것만 잘 지킨다면 취미는 우리에게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취미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면 부부 생활을 더 즐겁고 돈독히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고는 하지만 하다가 보면 다투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취미는 아니지만 운전 같은 것을 하면 부부가 꼭 싸운다. 내 지인 중에도 잘 싸우는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마누라 잔소리 듣기도 힘든데 요즘은 내비게이션도 잔소리를 해요.” 부부가 너무 밀접하게 감정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전적으로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다. 나머지 부분을 자기감정대로 요구하다 보면 그것이 강요가 되고 싸움의 단초가 된다. 하지만 더 많은 순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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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를 통해
상대방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그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것은
부부 생활을 증진시키는 큰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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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부간에 같은 취미가 없다고 하는 독자가 있다면 없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한번 탐색을 해보면 작을지언정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작지만 소소한 취미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여생이 행복할 것이다.
이근후 정신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가족 아카데미아 대표. 저서로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어차피 살 거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등이 있다.
글.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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