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12
기록으로
연결하다
기록의 역사와 변천사, 기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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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곧 연결이며, 아무리 사소한 기록이라도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기록을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이어왔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동굴벽화에서 기록물 보편화까지
인간은 오래전부터 경험을 기록해왔다. 우리는 다양한 유물을 통해 구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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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의 삶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1994년에 발견됐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협곡 한편에 그려진
동굴벽화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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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만 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벽화는 석기시대 인류도 현대인과 비슷한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프랑스 쇼베 동굴벽화’라 명명했는데, 매머드・사자・코뿔소・사슴 등 당시의 동물을 묘사한 그림 수백 점과 사냥 장면, 화산 폭발 장면 등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3만6000년 전 이 지역에서 있었던 사건과 구석기인의 일상을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선조들이 본격적인 기록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4000년 전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던 수메르인은 점토에 자신들이 고안한 쐐기문자를 새긴 뒤 햇볕에 말리거나 굽는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파피루스라는 일종의 종이와 양의 가죽을 이용한 양피지를 만들어 각자의 화풍과 문자로 역사와 지식을 기록해 후세에 전했다. 또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부터 대나무를 잘라 만든 죽간竹簡을 활용했고, 기원전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 인류 최초로 종이를 발명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기록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는데, 기록을 복제하고 퍼뜨릴 수 있는 인쇄술의 발달이 더뎠기 때문이다. 권력층이 기득권 강화를 목적으로 지식과 역사를 담은 기록물을 오랫동안 독점했다는 점도 기록물 보편화를 늦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전은 대중에게 점점 더 많은 기록물을 안겼고, 19세기 말 이후에는 누구나 활자 인쇄물을 접하는 것을 넘어 직접 종이에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손을 넘어 기기를 통한 기록으로
19세기 이전의 기록물은 인간이 직접 손으로 쓰거나 그림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평면에 담아낼 수 있는 기술이 1839년에 발명됐으니, 바로 사진이다. 사진은 예술 영역에서의 회화적 사진과 있는 그대로를 찍는 사실주의적 사진으로 나뉘어 발전했지만, 그 자체로 인류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기에 의한 기록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사진은 한 발 더 나아가 영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움직이는 사람 혹은 사물을 수십개의 프레임으로 나눠 찍은 뒤 이를 빠르게 돌리면 움직이는 화면을 얻는데, 이를 통해 한층 더 세세하고 직관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였지만 여기에 소리를 덧입혔고, 흑백이 총천연색 컬러로 바뀌었다. 영상 촬영기도 점점 소형화・고도화・대중화되어 지금은 전문 기술 없이도 누구나 영상을 찍고 편집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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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기록하는 역사상 최초의 발명품은
에디슨의 축음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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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책이 있는 옥스퍼드 보들레이안 도서관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다.
실체가 없는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3분 이하로 저장할 수 있는 SPStandard Playing, 23분 저장이 가능한 LPLong Playing, 74분까지 저장할 수 있고 크기도 작은 CD로 저장 기기가 발전했다. 지금은 아예 파일 형태로 휴대기기에 음악과 녹음물을 저장해 수시로 듣고 복사까지 한다. 녹음기도 점점 소형화되다가 스마트폰 기능의 하나로 빠르게 통합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터치 한 번으로 통화와 대화를 별다른 제약 없이 녹음할 수 있다.

기기에 의한 기록은 기록물 보편화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이전까지의 기록과 달리 다량의 복제와 활용이 용이했고, 한층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풍경・소리・영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된 대중은 자신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거나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 불특정 다수에게 주제에 걸맞은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팟캐스트, 특이한 경험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두루 담아내는 유튜브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이 같은 움직임은 통신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블로그・SNS 등으로 사람 간 연결성이 강화됨에 따라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기록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록으로 한결 행복해지는 삶
이쯤에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폭넓게 생산되고 퍼져나가는 개개인의 기록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개인적 영역에서 살펴보자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름대로의 메시지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단지 예전의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행위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수십 년 전에 썼던 낡은 일기장을 발견하고 몇 시간을 보낸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예전의 나’에게 끌리는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과거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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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를 연결하는 소셜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개인의 기록은 콘텐츠화되어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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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좀 더 넓히면 개개인의 기록은 사회적 가치도 지닌다. 우리의 기록이 한데 모이면
그 시대의 행동 양식이 보이고, 앞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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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대중이 원하는 여론을 형성해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더불어 후대에 ‘이 시대에는 이렇게 살았구나’라는 힌트와 교훈을 전할 수도 있다.

기록이 모이면 예상치 못한 부가가치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유튜브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막대한 콘텐츠 수익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에 일상 이야기나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이를 엮어 책으로 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해 기록물을 ‘꾸준히’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면 어떤 정보든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지식과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록을 꾸준히 남기고 싶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 감히 조언을 드린다. 기록이라는 단어에 눌리지 말자.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처럼 누군가가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 무언가를 기록하며 삶의 만족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 와중에 운 좋게 내 기록으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당장 오늘부터 내 생각과 일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해보자. 그 안에서 의외의 행복을 발견할 확률이 꽤 높으니.
글. 강진우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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